05-01 성 예로니모 수녀원
멀리서 구릉지 위로 솟아오른 도시의 윤곽이 보였다. 푸른 들판의 고지대에 세운 고색창연한 성곽과 탑들이 숨 막힐 듯 아름다웠다. 피렌체 남쪽으로 한 시간 거리인 산지미냐노(San Gimignano)는 ‘탑의 도시’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중세의 귀족 가문들이 경쟁적으로 지은 높은 탑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한때는 70개가 넘는 탑이 있었다고 한다. 유네스코는 이 도시의 역사 지구를 통째로 세계 유산으로 지정했다.
이 도시에 천 년 역사의 성 예로니모 수도원(*1)이 있다. 설립 연도가 1075년이니 올해로 꼭 950년이다. 오랜 역사에 비해 이 수도원의 현재 모습은 작고 소박하다. 도시의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낡고 허름한 외양이다. 한때 수십 명이 살았을 큰 수도원을 지금은 수녀승 세 분이 지키고 있다. 천 년을 이어온 기도의 촛불이 위태롭게 일렁이고 있다. 그 촛불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으로 숙박을 신청했다.
수도원은 도시를 둘러싼 성곽 안쪽에 있었다. 이 수도원은 일반 여행객도 묵어갈 수 있는 숙소를 운영한다. 수녀원 살림살이에 보태려는 자구책으로 보였다. 다만 식사를 제공할 수 없다고 미리 알려줬다. 그런 일을 담당할 만한 인력이 없는 탓이다. 성곽 안에 식당이나 카페가 많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작은 출입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메일로 인사드렸던 막달레나 수녀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온화하면서도 맑은 기품이 넘쳐나는 분이었다. 초면인데도 인자하신 어머니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도 생활을 오래 해 오신 분들에게는 뭔가 다른 기운이 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갈라 5,22-23) 그 막을 수 없는 기운이 언어의 벽을 넘어 향기로 피어났다.
파도바 출신인 수녀님은 젊은 날에 이 수도회에 들어와 평생을 기도하며 살아오셨다. 대수도원의 장상 수녀를 뜻하는 아빠티사(Abbatissa)를 지내고, 지금은 물러나 문지기 소임을 맡고 있다.
“수도원 문간에는 말을 받고 응답할 줄 아는 현명하고 또 나돌아 다니지 않을 성숙한 원로를 둘 것이다.” (RB 66,1)
베네딕토 규칙은 이처럼 문지기 수도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지기는 수도원의 얼굴과 같다. 나는 ‘성숙한 원로’ 문지기인 막달레나 수녀님의 안내로 방을 배정받고 기분 좋게 여장을 풀었다.
산지미냐노의 성곽 안에 있는 건축물은 모두 최소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중세의 유물들이다. 수도원 역시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겪어낸 모습이다. 숙소는 수도원 2층이지만, 수도자들의 공간과는 분리되어 있다. 삐걱거리는 침대와 딱딱한 나무 의자가 금욕과 고행의 수도 정신을 말해준다. 천장은 서까래 목재를 그대로 노출했고, 벽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화려한 호텔보다 편안함을 주었다. 수도 영성을 찾는 나그네는 마땅히 이런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
저녁기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다. 도심 거리를 걷기로 했다. 성곽은 남북으로 길쭉한 모양새인데, 남쪽 문에서 북쪽 문까지 대략 1km쯤 된다. 역사 지구를 관통하는 길을 따라 걸으면 이 도시의 주요 명소를 대부분 만나게 된다. 아주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비좁은 산꼭대기에 도시를 세우다 보니 골목이 매우 좁다. 수도원은 거의 북쪽 끝이다.
산지미냐노는 5세기 훈족의 침입 때 이 마을을 지켜낸 주교의 이름이기도 하다. 인구 만 명이 채 안 된다고 한다. 두오모로 부르는 산지미냐노 대성당 앞이 가장 큰 광장이다. 관광 인파로 활기가 넘친다. 대성당은 이미 문을 닫아서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두오모 바로 옆의 탑(Torre Grossa)에 올랐다. 1311년에 완공된 높이 54m의 탑으로, 도시와 들판을 한눈에 보여주는 시원한 전망을 제공한다.
광장 가까이에 유난히 길게 줄을 서 있는 가게가 보였다. ‘젤라테리아 돈돌리(Gelateria Dondoli)’라는 상호였다. 아주 유명한 아이스크림 집이라고 했다. 몇 개 사서 수녀님들께 드리고 싶었지만, 가는 동안에 다 녹을 것 같았다. 인정 없는 나그네는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저녁기도에는 세 분의 수녀님이 모두 참석했다. 세 분으로 성무일도가 제대로 될까 싶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평생을 기도로 살아오신 분들의 내공을 너무 얕잡아 봤다. 선창과 후창, 합창으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며 기도를 이어갔다. 작고 아늑한 성당 안에 높고 고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분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 환성과 함께 고운 가락 내어라.” (시편 33,3)
로베르타 수녀님이 오르간 연주를 곁들이며 1인 2역을 하셨다. 그레고리오 가락으로 바치는 풍성하고 충만한 기도였다. 이 오래된 도시, 이 가난한 수도원, 단 세 분의 수녀승이 지키는 작은 공동체, 그 소박한 성당에 찬미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그 안에 내가 있다! 뭉클한 감동이 가슴을 적셔왔다.
저녁기도(Vesperae)는 아침기도와 함께 하루 성무일도의 두 기둥을 이룬다. 교회는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이 두 기도만큼은 반드시 바치라고 권고한다. 또한 되도록 노래로 하여 다른 기도보다 더 성대하게 바치라고 했다. 아침기도가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찬미의 성격이라면, 저녁기도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며 드리는 감사의 기도이다.
수도원에서는 아침과 저녁기도에 각각 네 개의 시편과 한 개의 찬가(Canticum)를 노래한다. 저녁기도의 찬가는 보통 ‘마니피캇’으로 불리는 성모의 노래이다.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한 몸으로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부른 노래이다. (루가 1,46-55). 라틴어 성경에서 이 구절의 첫 단어가 '마니피캇(magnificat)'이다.
저녁기도는 특히 여러 작곡가의 사랑을 받았다. 모차르트는 두 곡의 저녁기도를 작곡했다. KV.321과 KV.339이다. 두 곡 모두 5개의 시편과 마니피캇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시편 117편을 노래한 ‘라우다테 도미눔(Laudate Dminum)’이 특히 아름답다. 소프라노가 시편을 노래하면, 이어서 합창으로 영광송을 바치고, 다 함께 ‘아멘’으로 마무리하는 구조이다. 나는 소프라노 신영옥이 노래한 KV.339의 라우다테 도미눔에 마음을 뺏겼다. 낮고 느리면서 그윽하게 젖어 드는 도입부를 신영옥만큼 우아하게 이끌어가는 성악가를 알지 못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노래는 두 번의 기도(Qui cantat, bis orat)”라고 했다. 모차르트의 저녁기도는 음악이면서 기도이다. 때로는 이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기도가 된다.
저녁기도가 끝나자, 막달레나 수녀님이 두 분 수녀님과 인사를 시켜 주었다. 로베르타 수녀님과 마리아 안젤라 수녀님이라고 했다. 이렇게 수도원의 모든 가족과 인사를 나눠보기는 처음이었다. 작은 공동체라서 가능했지만, 따뜻한 환대의 마음을 전달받았다. 아주 오래전에 이곳을 다녀가신 한국의 어느 수도회 신부를 기억하며 안부를 물으셨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간직해 온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이 수도원은 베네딕토회 19개 연합회 가운데 발롬브로사 연합회에 속한다. 이 연합회는 베네딕토회 수도승이었던 성 요한 괄베르토(S. Giovanni Gualberto)의 이상을 따른다. 그는 1038년에 피렌체 동쪽 발롬브로사(Vallombrosa)에 새 수도원을 세웠다. 베네딕토 규칙을 채택했지만, 그 엄격함을 크게 강화했다. 특히 베네딕토 성인이 강조했던 육체노동을 금지하고 순수한 관상만을 추구하도록 했다. 현재 이 연합회에는 10개 미만의 수도원이 속해 있다. 이 수도원들은 하루 일곱 번의 시간 전례를 준수한다. 즉 삼시경, 육시경, 구시경의 낮기도를 모두 바친다.
(*1) Monastero di San Girolamo
‘산 지롤라모(San Girolamo)’는 한국어 ‘성 예로니모’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