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판단 능력이 좋아진 것인가, 달라진 것인가
이런 말이 있다. 결혼 이후에는 연애 때만큼 남편들이 잘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나도 결혼 전 남자친구였던 시절 '결혼하면 변할 거냐'하고 물어봤던 적이 있다. 전 남자친구는 결혼하면 더 잘해줄 거라며 위기를 모면(?)했다.
나는 그때 결혼의 복불복을 느꼈다. 아무리 사람 보는 눈을 키워 어느 정도 예방(?)은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결혼 이후 달라질 상대방의 모습까지 100% 예측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혼에도 어느 정도 운의 영역이 있음을 느꼈던 시점이었다.
다행히 결혼 이후 심각한 문제제기가 필요할 만큼의 남편의 행동이 큰 폭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런데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건 바로 리액션이었다.
내가 요리를 해주기 위해 부엌에 있을 때였다. 아직은 서툴기도 하고, 장비가 다 갖춰져 있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감자 깎는 칼이 따로 있지 않아, 과도로 채소 손질을 한다. 그런데 이때 아무래도 전용 칼보다는 잘 다듬어지지 않기에 채소를 놓치거나 할 때가 있다. 그럼 나도 깜짝 놀라 "오옥!" 하며 감탄사가 나온다. 부엌이다 보니 혹시 모를 다칠 위험도 있다. 그러면 남편도 놀라서 부엌으로 급히 달려와서는 다쳤냐며 물어보는 식이었다.
그럴 땐 나를 걱정해 주는 마음 덕분에도 금방 괜찮아질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달라졌다. 아직도 신혼이긴 하지만, 그래도 곧 만 1년이 되어간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고 있어서일까?
상황은 이렇다. 남편은 최근 밤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있다. 그 이유인즉슨 자격증 공부로 인해 퇴근 후 짧게라도 공부를 하고 오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뇌가 '각성' 상태로 잠에 청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보다 훨씬 잠에 드는 시간과 뒤척거림이 많아졌다. 그에 대한 처방은 '수면 안대'를 착용하는 것이다.
혹시나 하고 사보았는데, 효과가 엄청났다. 수면 안대는 눈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어 보다 빠른 잠이 올 수 있게 유도해 주는 아이템이다. 나에겐 효과가 미미했지만, 남편에겐 이 수면 안대 효과가 무척 뛰어났다. 따라서 남편이 잠을 잘 못 드는 날에는 수면 안대를 착용해 준다. 그리하여 수면 안대를 하나 빼러 갔는데, 여러 개가 쌓여있다가 하나가 빠지니 우수수하고 진열장 밖으로 몇 개가 투두둑 떨어진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오오옥!"하고 놀랐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저건 뭐 번거로운 일이 하나 더 추가되긴 하였지만, 주우면 해결되는 문제이니 곧 다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심 허전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 상황에서는 남편의 리액션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아무런 리액션도! 미동도 없었다. 남편은 그저 누운 채로 수면 안대를 오기를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눈도 떠보지 않았다. 이전과 너무 달라진 남편의 태도에 나는 연인과 부부 사이의 진리 불변의 그 말을 내뱉게 되었다.
변했어!
남편은 이내 엄청난 폭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항변을 하기 시작했다. 무척 큰 일이었으면 리액션이 더 길게 이어졌을 텐데, 그러면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리액션이 짧게 끝나기에 큰일이 아닐 것이라고 '상황 판단'을 하여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누구나 그 상대의 표정과 몸짓 등으로 기분을 파악할 수 있어진다. 따라서 나의 리액션에서 실제로 상황을 읽었을 수 있다.
내 입장에서는 사뭇 달라졌던 남편의 리액션으로 에피소드가 또 하나 생긴 신혼부부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