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우리 브랜드만의 매력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면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개성은 어떻게 만들까요? 그리고 또 그것을 소비자에게 어떻게 차별화 되게 보이도록 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이 경우 브랜드가 명확한 '컨셉'을 가져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프레임'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경쟁사 대비한 개념을 함께 생각해야 하거든요.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 순간 모두 그를 사기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조지 레이코프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닉슨이 TV에 출연해서 난 사기꾼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사기꾼'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순간 시청자의 머릿속에는 그 단어가 강하게 자리 잡아 버리죠. 이 책의 제목도 마찬가지 개념입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코끼리를 떠올리게 되는 거죠.
프레임은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다른 것을 지워버리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흔히 '선거는 프레임이다'라는 말을 하죠. 선거에서 어떤 프레임이 작동하면 다른 요소들은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지난 대선만 생각해도 '공정' '부동산' 등의 프레임이 강하게 지배했죠.
이런 '프레임'을 잘 설명해주는 사진이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의 '허세'를 풍자하는 사진인데, 아마 많이 보셨을 것 같네요.
인스타그램의 프레임 안에 있는 것과, 밖에 있는 모습을 함께 보는 느낌은 확연히 다르죠. 이런 의도를 가진 행동을 '프레이밍'이라고 합니다. '프레이밍'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의 개념과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라는 개념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문제 해결적인 관점에서 프레이밍의 유명한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당신이 사무실 건물 하나를 소유하고 있는데 세입자들이 엘리베이터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구식이고 느려서 이용할 때마다 세입자들은 오래 기다려야 한다. 세입자 중 몇 사람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임대차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리프레이밍, 토마스 웨델 웨델스보그
아마 대부분 답을 유추하셨을 거라 생각되는데요. 답은 엘리베이터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닌, 엘리베이터에 거울을 설치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느리다는 것 대신 다른 것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죠.
위에서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프레이밍은 제품 개선하는 것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구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품 개선을 하지 말자는 말은 아닙니다)
MEGA MCG Coffee라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흔히 메가 커피라고 부르죠. 제가 다니던 회사 앞에서 이 브랜드가 처음 생겼을 때, 아래 사진과 같이 줄이 길게 서있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곳의 커피가 그렇게 맛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죠.
일반적으로 커피 프랜차이즈는 원두, 로스팅이나 좋은 분위기, 또는 베이커리 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습니다. 사진 속 메가 커피 로고 옆에 명확히 보이듯이, 표방하는 바는 'BIG SIZE 2 SHOT'입니다.
사실 저가 커피숍은 메가 커피 이전에도 꽤 있었습니다. 이디야가 대표적인 브랜드였구요. 하지만 이렇게 명확하게 자신들의 '가성비'를 내세운 곳은 없었죠. 덕분에 이디야는 포지셔닝이 어정쩡해졌습니다.
메가커피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바, 그 틈새를 명확히 파악한 겁니다. 좋은 원두나 분위기 등을 추구하는 시장도 존재하지만, 카페인 충전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장도 있음을 간파하고 프레이밍을 한 겁니다. 그리고 그 시장은 생각보다 꽤 컸구요.
또 다른 사레로 '월간칫솔'을 들 수 있겠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칫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칫솔모'일 겁니다. 미세모를 강조하는 곳도 있고, 구석구석 잘 닦이도록 인체공학적 설계를 했다는 곳도 있죠. 월간칫솔은 좀 다릅니다. '교체주기'를 강조하죠.
이 칫솔에는 사용기한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진에 나온 칫솔은 10월의 칫솔이네요. 가장 좋은 칫솔은 새 칫솔이라는 프레임을 제시하는 겁니다.
공감이 되시나요? 물론 그런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평소에도 칫솔의 위생에 민감하신 분이라면 이런 방법이?! 하면서 앞으로 월간칫솔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시겠죠.
메가 커피가 그렇듯, 월간 칫솔도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려는 프레이밍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 작은 틈을 만들고 들어가는 게 중요하죠.
앞서 스티브 잡스의 영상을 인용하면서 나이키는 신발을 파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죠. 우리 제품이 더 좋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새롭게 포지셔닝을 할 수 없습니다.
케빈 로버츠(사치 앤 사치 CEO)는 제품이 '일용품'의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시장에서 일상적으로 사는 제품에선 더 이상 브랜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죠. 압도적인 제품력을 가진 게 아니라면, 더구나 후발주자라면 제품력 만으로 승부하긴 쉽지 않습니다.
DollarShaveClub(DSC)이라는 회사는 아래의 영상 하나로 질레트가 장악하고 있던 면도기 시장을 흔들어 놨습니다. 아래의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실 새로운 내용은 없습니다. 이미 모두들 생각하고 있던 것(면도기가 왜 이렇게 비싸지?)을 주장했을 뿐입니다. 와비파커 같은 회사도 마찬가지구요.
우리는 흔히 브랜딩을 '프리미엄화' 즉 고급화, 고가화와 동일시합니다. 더 좋은 제품을 통해 신뢰를 얻어 더 비싸게 받고 팔아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TV 광고도 하고 그렇게 더 많이 팔 수 있고, 또 더 비싸게 파는 '선순환'이 이어지니까요. (그럴 것이 아니면 브랜딩은 뭐하러 해? 하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엔 우리만의 고객을 찾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고객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어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거나 상상 밖에 있는 고객들이죠.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이론이 '뱅뱅이론'입니다. 청바지 1위 브랜드는 리바이스도, 캘린클라인도 아닌 뱅뱅이라는 거죠.
아니, 도대체 내 주변엔 아무도 입지 않는데 누가 뱅뱅을 입는다는 거지? 할 수 있지만, 커피는 역시 스타벅스 지라고 생각하거나, 칫솔은 오랄비, 면도기는 질레트라고 생각하더라도 세상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그 시장을 열고 들어가는 데 성공한 브랜드들이 있는 거죠.
지금 우리 브랜드 카테고리의 핵심 경쟁 구도는 무엇인가요? 소비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것을 우리 브랜드 중심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경쟁자를 이기는 것보다, 시장의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시장 전체를 바꿀 필요도 없어요. 이를 통해 마니아가 생성되기 시작하면 시장 전체가 바뀌는 것은 순식간일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