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다소 보수적인 금융권에서도 스토리에 관심을 보이죠.
토스의 '오늘의 머니 팁'은 구독자가 100만 명이 훌쩍 넘어갑니다. 토스는 '사소한 질문들'이라는 계간 콘텐츠도 발행해요. 토스가 운영하는 콘텐츠 채널인 '토스 피드'에서도 볼 수 있지만 독립서점에서 책으로 만날 수도 있죠.
왜 금융회사가 이런 일을 할까? 살펴보기 위해 '사소한 질문들' 22년 가을호 내용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돌아오니 집 바닥이 흥건하게 잠겨있었습니다. 천장 구석에서 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고요. 열 평 남짓의 반지하였지만 생애 첫 독립이었기에 아기자기하게 꾸몄던 공간이었어요. 물에 젖은 물건들을 보며 얼마나 속상했던지요. 설렘과 낭만에 가득 차 시작했던 독립이었지만 새벽 내내 물을 빼고 나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어떡하지.’
<사소한 질문들> 가을호, 생존과 낭만 사이
위의 글을 보니 대략 느낌이 오시나요? 최근에 '스토리텔러'나 '에디터'라는 타이틀을 가진 분들이 늘어났죠. 저도 글을 쓰다 보니 이런 분들과 일할 기회가 꽤 있습니다. 이분들 일의 핵심은 결국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우리 제품과 브랜드를 녹여내는 일이죠.
앞서 '공감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공감'을 높이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러나 에디터의 역할입니다.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연계해서 말이죠.
토스나 마켓 컬리 등이 자사의 제품을 녹여내는 콘텐츠를 직접 만든다면,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들도 있죠. '디 에디트(the-edit)'나 '29CM' 같은 곳이죠. 바로 스토리텔링을 통해서요.
디 에디트는 다양한 브랜드, 또는 제품을 왜 사야 하는지를 풀어냅니다. 이런 곳들을 보면 내가 뭘 사고(buy) 살아야 인싸가 될지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건 초기엔 에디터들의 취향이 명확히 묻어나는 곳이었다면 지금은 종합쇼핑몰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29CM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9CM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고정적인 마니아 층도 있죠. 브랜드들과의 콜라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가치를 비주얼로 전달하는 데에 강점이 있습니다.
사례 하나를 볼게요. '모도리'라는 브랜드에 소담쿡웨어라는 제품이 있습니다. 모도리는 미디어커머스 회사인 '블랭크'의 한 브랜드인데요. 모도리는 다양한 커뮤니티나 제품 리뷰 등을 통해 새롭게 개발 중인 쿡웨어(그중 프라이팬)의 핵심 가치를 '눌어붙지 않는 계란'이라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이것이 소담쿡웨어의 가치이고, 프레임이죠.
그리고 29CM와 콜라보를 통해 아래의 영상을 함께 만들게 됩니다.
이 영상을 보고 우리 집에도 소담쿡웨어 하나 들여놔야겠다는 생각이 드셨나요? 사실 요즘 프라이팬 중에 그렇게 요리가 눌어붙는 제품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영상에 나온 대로 소담쿡웨어를 쓰면 요리가 즐거워질 것만 같죠. 이런 공감대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입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에 대해서도 역시 오해가 적지 않습니다. 많이 보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광고주나 대행사 공히 조회수의 압박을 받기 때문이죠. 하지만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목적은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핵심 목적입니다. 그저 재미만 전달된다면 그 목적을 상실한 거죠.
이를 알아보기 위해 스토리텔링의 유형을 쪼개서 살펴보겠습니다.
스토리텔링의 유형
1. 스토리텔링 : 기승전결로 흘러가는 일반적인 스토리 진행 방식 (드라마, 영화 등)
2. 디지털 스토리텔링 : 캐릭터나 배경을 중심으로 인터랙티브 한 전개 (게임 등)
3. 브랜드 스토리텔링 : 브랜드의 탄생 스토리, 오너의 창업 스토리 등 (유튜브 브랜디드 콘텐츠)
4. 소셜 스토리텔링 : 캐릭터와 배경을 설정하고 짧은 소셜 콘텐츠로 상호 작용 (인스타그램, 쇼츠 등)
참고 : 브랜드 스토리텔링 (김태욱)
많은 경우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만들려다가 '스토리텔링'을 내놓곤 합니다. 쉽게 말해 브랜드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냥 이야기만 하게 되는 거죠.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재미있거나 공감 되게 만들기는 정말 어렵거든요.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스토리텔링 책들도 잘 읽어 보면 '브랜드 스토리텔링'이 아닌 '스토리텔링'에 대한 성공 법칙을 담은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홍보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만..) 그런 책을 보고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하게 되면 잘못된 접근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요즘 이런 일들을 잘하는 업체는 많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29CM'도 있고, '돌고래 유괴단' 같은 업체도 있고, '플레이리스트'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스토리보드를 리뷰할 때 이렇게 말하는 거죠.
글쎄요.. 우리 브랜드가 잘 녹아 있지 않은 것 같은데요.
참 쉽죠? 하지만 아주 작은 문제가 있어요. 돈이 많이 든다는 거죠. 제작비로만 따지면 웬만한 TV 광고만큼 또는 그보다 더 들 수도 있으니까요.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겐 남은 옵션이 있거든요. 바로 '소셜 스토리텔링'입니다. 우리가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면 감동을 주거나 재미있는 것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아닌 이상 우리의 본질적 목적은 즐거움을 주는 데 있지 않죠. 우리는 브랜딩을 해야 하니까요.
위에서 소셜 스토리텔링을 만들기 위한 요소가 '캐릭터'와 '배경'이라고 했습니다만, 좀 더 브랜드에 집중해서 본다면 캐릭터와 배경은 스토리를 풀어 나가기 위한 하나의 설정으로 묶어서 볼 수 있습니다. 덧붙여서 '취향'도 스토리텔링을 풀어나가는 요소가 될 수 있구요.
캐릭터(배경 포함)의 대표적인 예는 빙그레우스를 들 수 있겠네요. 빙그레 인스타그램은 빙그레우스와 그 왕국이 배경이 됩니다. GS25의 갓생기획도 있어요. GS25의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감정이입을 위해 만들어진 컨셉이죠.
이 외에도 곰표, SSG의 제이릴라나 진로의 두꺼비 등이 캐릭터화 된 케이스죠. 이미 자주 예를 들었던 오롤리도 마찬가지구요.
명확한 캐릭터와 배경은 우리가 풀어나가는 스토리에 일관성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브랜드 경험을 유도할 수 있죠. 대표적으로 곰표는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굿즈나 다양한 콜라보를 통해 엄청난 브랜딩&마케팅 효과를 거뒀고, 진로도 두껍상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죠.
취향에 좀 더 집중한 케이스로는 '다꾸TV'를 들 수 있습니다. 텐바이텐에서 만드는 콘텐츠죠. 다이어리 꾸미기라는 소비자들의 취향에 집중한 콘텐츠를 만듭니다. 이런 취향 관련 콘텐츠는 크리에이터와 콜라보를 하거나 엠버서더를 활용 경우가 많죠.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크리에이터의 Fan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하니까요.
내용이 딱딱해질까 봐 미리 이야기하진 않았습니다만..
브랜드들이 이렇게 스토리에 집중하는 이유는 결국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비자들은 매일 엄청난 정보를 소화하고 있죠. 그것도 동시에 여러 개를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인 콘텐츠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직 '맥락(Context)'으로만 기억에 남게 되죠.
스토리는 그런 맥락을 이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엄청난 '스토리'를 만들지 못한다면 '캐릭터'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띄엄띄엄 얻은 정보들이 캐릭터와 배경을 통해 하나로 통합되죠. 그리고 취향은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 되구요.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스토리텔링'이라는 단어가 주는 오해를 가지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 만든 드라마가 아니라, 브랜드의 매력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니까요.
P.S. 커버 이미지는 진로의 두껍 캐릭터를 활용한 배경화면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