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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Oct 30. 2024

불안하지만, 그냥 써보려고요.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과, 불안 직면하기


나는 불안이 높다. 성장기에 겪은 경험이 쌓여, 걱정쟁이가 됐다. 불안이 높으면 항상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있는데, 쉽게 말해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과 같은 상태가 평상시에도 지속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항상 어깨가 굳어있고, 에너지를 많이 쓴다. 이와 반대인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야만, 안전하고 편안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부교감신경이 담당하는 세 가지 주요한 역할은, 휴식, 소화, 다른 사람과의 연결이다. 이것을 읽자마자 나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려워하는 세 가지였기 때문이다.


정신과 진료가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는 이유는, 따뜻한 공감보다는 정확한 판단일 때가 많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갔을 때 공감을 바라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막연하게 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휴식도, 소화도, 인간관계도 어렵게 느낄까 고민하며 내 성격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뜯어보는 일은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밖에 없다. 반면, 정확한 지식을 활용해 '아하, 나는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군.'하고 깨닫는다면 자책할 필요가 없다. 정확한 인지가 이뤄지고 나면, 해결책 역시 뚜렷해진다.


그렇다면 부교감신경은 어떻게 활성화할 수 있을까? 정신아 상담심리사는 일상에서 실행할 수 있는 부교감신경 자극 방법 네 가지를 이렇게 소개한다. 첫째, 호흡을 안정시킬 것. 둘째, 가짜 하품하기. 셋째, 반려동물 쓰다듬기. 마지막 넷째, 평온을 주는 장소·사람·추억 리스트 작성하기. 작성 후 힘들 때 떠올리면, 시각화된 상상에 뇌가 속는다고 한다.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뇌 속이기' 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나는 안전하다고 뇌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부교감신경을 자극하다 보면, 해당 신경계가 활성화되어 더 쉽게 안정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말이 있다.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기준이 높아져서,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나 역시 스스로에게 이 칭호를 붙인 적이 있다. 일단 하면 너무 잘하려 들고, 그러다 보니 시작이 두렵고. 그래서 잘할 자신이 없으면 지레 겁먹고 기회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지금은 안다. 그건, 실패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들에게 새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실패 면역력이 낮은 사람들'. 한 번의 실패로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사람들. 새 이름을 붙이는 일은, 현재의 나를 체념하지 말고 나아가길 바라는 의미에서다. 비록 지금은 불안하지만, 자신을 직면하고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상한 음식이 들어있는 밀폐용기를 열어 내용물을 비워내고 씻기로 결심하는 일은 어렵다. 뽀각,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냉장고에 넣어두기만 하면 영영 모른척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영원히 열지 않고 통째로 버리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때도 있다. 회피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속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썩어버렸을 것 같다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마음을 버리고 새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언젠가는 뚜껑을 열어야만 한다. 자신을 직면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불안을 겪는 사람들은 회피 성향이 강해, 불안을 겪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다. 우선 직면하는 것이 괴로울 것이고, 직면하더라도 그런 자신에게 수치심을 느끼거나 타인을 믿지 못해 털어놓지 못한다. 어떻게든 글을 쓰더라도 글을 완성하거나 어딘가에 게재하는 행동을 회피하게 된다. 그래서 전문가의 서적은 있지만, 불안한 자신에 대해 털어놓은 수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적 통념 때문도 있을 것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일을 수치스럽게 느끼는 사회인만큼, 자신이 가진 심리적 어려움을 고백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나와 타인을 구하고 싶었다. 부끄러운 마음보다 그 마음이 더 컸다. 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우울을 겪게 된다. 여러 이유로 세로토닌이 결핍된 채, 불안하니 회피하고, 회피하니 불안해지는 악순환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회피는 자신을 성장하지 못하게 하고,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자해와도 같다.


우울이란 게 자칫 사소하게 여겨지지만 정말 무서운 거다. 우울은 실제로 사람을 죽게 만든다. 나조차도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문장에 둔감해져 버렸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아주 가까이에서 스스로를 죽이고 있다는 것은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니다. 2030 청년 세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특히 여성의 자살률이 높다. 게다가, 매년 더 증가하고 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 닿았을 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가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지 말자고 말하고 싶었다. 아프게 한 사람이 부끄러워야지, 왜 아픈 사람이 부끄러워야 하나? 그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내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이 이야기를 간절히 기다렸을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앞으로도 계속 떠들면서 살기로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제 막 무리를 지은 친구들이 각자의 비밀을 공유하자고 했다. 시험기간, 시립도서관 휴게실에서 둥그렇게 둘러앉아 하나둘씩 이야기를 꺼냈고, 눈물을 흘리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때 내 비밀이 너무 무거워서 차마 꺼내지 못했다. 친구들은 그런 내게 서운함을 표했지만, 나는 그 애들이 그걸 감당하지 못할 거란 걸 알았다. 내 글은 그때의 나를 위한 글이다. 그 순간, 차마 입을 열지 못했던 나. 이야기를 꺼내도 공감받지 못할 것을 알았던 나. 그때의 나와, 나를 닮은 얼굴들에게 내 글이 희망이 되길 바라며 계속 쓰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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