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쥐가 서울에서 독립하면, 2년마다 쫓겨 다니며 산답니다
성인이 된 후 자주 이사를 다녔다. 최단기록은 3개월. 대학교 기숙사의 일방적 통보에 추운 겨울 혼자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짐을 옮겼다. 최장기록은 2년. 단 2년 넘게 한 집에서 산 적이 없는 것이다. 짐을 싸고, 다시 푸는 과정은 점차 손에 익었지만, 이주가 반복되니 마음이 퍽퍽해지는 것을 느꼈다. 적응이 빠른 편인데도 그랬다. 뿌리내리지 못하고 굴러다니는 서부 영화 속 식물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나를 위한 모든 물건들이 버거운 짐이 됐다. 짐의 무게와 부피가 부담스러웠다.
첫 취직. 서울에서 얻은 첫 집은 유난히 비좁았다. 슈퍼 싱글 사이즈의 침대 하나, 컴퓨터가 겨우 올라가는 작은 책상과 의자를 놓으니 숨 막히게 꽉 들어찼다. 주방 공간엔 2구 인덕션이 덩그러니 꽂혀있었고 예상대로 주방과 생활공간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빨래라도 너는 날엔 도저히 여백이 남지 않아서, 출근길 지하철에 탄 사람처럼 '잠시만요, 지나갈게요.'하고 비집고 다녀야 하는 좁은 집이었다. 그렇게 널어둔 빨래가 도저히 뽀송하게 마르질 않는 집에서 딱 1년 살았다. 나는 곰팡이가 사람 마음에도 번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대출을 받아 약간 더 큰 집을 구했다. 집을 고르는 기준은 명확했다. 주방과 생활공간이 분리될 것, 빨래를 널고도 지나다닐 수 있을 것, 집에서 운동을 할 때 양팔을 쭉 뻗을 수 있을 것(이전 집에선 손끝에 벽이 닿곤 했다.). 여긴 너무 좁아요. 여긴 너무 대로변이라 시끄럽고 위험해 보여요. 여긴 너무 어둡고 습해요. 친절하던 중개인이 점차 뾰족해졌다. 그래도 타협할 수 없었다.
지하철 역과 멀어도 괜찮다고 여러 번 말씀드린 끝에, 언덕 위에 위치한 건물을 만났다. 한참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하고 골목에 있었지만 동네가 밝고 조용했고, 무엇보다 본 집 중 가장 넓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에 침대를 두고, 여기에 책상을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주방과 생활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창문도 화장실과 방에 시원하게 뚫려 있었고, 엘리베이터는 없지만 젊은데 이쯤이야 못 오르겠나 싶었다. 마음에 든 티가 났는지 중개인이 금방 나갈 집이라며 나를 재촉했다. 집주인은 뜬금없이 보증금을 천만 원 올려 불렀다. 그래도 그만한 집이 없을 것 같았다. 2년 월세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제 2년간은 내 집이었다.
살다 보니 이 집도 단점이 있었다. 수납공간이 부족했고, 언덕길을 한참 오르내려야 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가구를 사고파는 과정도 고단했다. 비가 무섭게 쏟아지던 어느 장마에는 창문에서 물이 줄줄 샜고, 한겨울엔 결로로 인한 곰팡이가 생겼다. 2년만 채우고 이사 나가자는 생각에 곰팡이를 가려두고, 빗물에 얼룩진 카펫도 외면했다. 그동안 늘 그래왔던 것처럼 곧 있으면 다 팔아버리고 처분해 버릴 임시 공간에 불과하니까, 잠깐만 참고 못 본척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년이 다 채워졌을 때쯤,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불안정한 재정 상태로 무리해서 이사할 수 없어, 딱 1년 계약을 연장했다. 그 1년도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정착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안쓰럽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평생 함께 살 누군가를 만나서 방이 두 개 달린 아파트를 전세로 구해 방 하나는 침실, 하나는 서재로 꾸미면 좋겠다며, 소박하지만 혼자 이루기는 다소 어려운 꿈을 꿨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이, 지금 이 시간이 모두 임시인 것처럼 모든 걸 미뤄둔 채 시간이 흘러가길 기다렸다.
'어차피 버릴 물건들'을 안고 살아가던 나는 어느 날 구체적인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일일드라마처럼 의사에게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은 아니다. 당시 나는 심한 무력감으로 인해 삶을 그만두고 싶은 강한 충동을 경험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겠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결국 이겨냈단 것이다. 그런데 그런 끔찍한 상태를 지나오고 보니,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게 삶이라면 더는 행복을 유예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걸 내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오밤중에 벌떡 일어나 책상에 앉아서 우리 집 도면을 그렸다. 이 가구는 버리고, 이 가구를 사서 이렇게 배치하고.
이 얘기를 오랜 친구에게 털어놓았더니, 친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구 역시 나와 함께 지방에서 자랐고, 직장을 구하면서 상경했다. 그의 첫 집은 나 못지않게 열악했다. 침대 둘 곳 없는 옥탑방 집에서 그는 정말 잠만 잤고, 카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몇 년간 타지살이로 고생하던 그도 점차 자리를 잡았고, 얼마 전에는 외국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나눈 수많은 대화로 친구의 마음에는 변화가 일렁였고 귀국한 후 그는 밥솥을 샀다고 했다. 왜 밥솥이었냐고 이유를 묻자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간답게 살고 싶었어."
행복한 때, 완벽한 때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행복하기로 결심하는 것뿐이다. 왜 인간은 죽음을 앞뒀을 때 비로소 후회하고 스스로가 진정 원했던 것을 깨닫는 걸까. 촉박하다고 느껴야만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 모두는 필연적인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매일 모든 순간 남이 아닌 나에게 귀 기울이며, 행복을 미루지 않아야 한다. 내일 내가 죽게 되었을 때, 오늘이 후회가 되지 않게끔 선택하는 사람은 오직 지금의 나뿐이다. 모든 순간은 감히 임시로 치부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나는 행복해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견뎌내는 공간, 임시에 그친 공간이 아닌 지금의 나를 위한 공간에서 현재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인테리어했던 방은 친구를 초대하기 좋은 방, 보여주기에 그럴듯한 미감을 갖춘 방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중심이었다. 이 공간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잠을 자기 좋은 방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이제라도 그것을 나에게 해주기로 했다.
책상을 샀다. 그렇게 비싼 책상도 아니다. 하지만 내일이 불안한 내게는 쉽지 않은 소비였다. 그래도 샀다. 나중 말고, 지금 당장 행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며칠간 정리하고 버리고 팔아가며 공간을 비웠다. 낑낑거리며 카펫을 걷어내 둘둘 말아 대형폐기물로 내놓았고, 처음엔 예쁘다 생각했지만 일을 하고 밥을 먹기엔 좁았던 원형 테이블을 싼 값에 처분했다. 그 빈자리를 쓸고 닦은 후, 새 책상을 맞이했다. 책상은 생각보다 컸다. 사이즈를 잘못 샀나? 살짝 고민도 됐다. 하지만 물건을 채워 넣고 나니 딱 좋았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축 / 책상 구입 / 하'를 써붙인 현수막을 걸고 싶을 만큼 좋았다.
그 책상에서 나는 글을 쓴다. 책상이 정돈되니 집에 있어도 잘 눕지 않는다. 늘 책상 앞에 앉아있으니 책도 더 읽고, 글도 더 쓰게 된다. 나는 나를 좋지 않은 환경에 방치해 두었구나. 충족되었을 때 결핍은 선명해진다. 내가 나를 잘 돌보고 있는지 돌이켜 볼 때면 어릴 때 즐겨보던 TV 프로그램 속 강아지들을 떠올린다. TV에는 자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간식을 잔뜩 줘서 비만이 된 강아지들이 나왔다. 글쎄, 과연 그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 역시 그랬다. 나를 위한 거라고 착각하며 나에게 건강에 좋지 못한 음식을, 좋지 못한 시간과 경험을 많이 먹였다. 이제는 진짜 사랑을 주고 싶다. 나를 위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된 만큼, 잔뜩 사랑해 주겠다. 지금의 나는 어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덧붙이는 말
이 글 역시 애정하는 부비프 수요글방 분들과 나누었던 글입니다. 그때는 책상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지 않았고, 글을 모두 읽은 후 사담으로 덧붙였어요. "저, 책상을 샀어요." 하고요. 따뜻한 글방 사람들은 이 글을 통해 저에게 책상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주었기에,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책상 얘기를 글에 꼭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줬죠.
2년마다 거처를 옮겨 다니는 삶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현재의 나를 위해 가구를 사는 일이 얼마나 망설여지는지 잘 아실 겁니다. '부담'을 가시화한다면, 좁은 방에 놓인 커다란 책상이나 침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요. 그러나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가 원하는 걸 해주기로 결심한다면, 어떤 책상은 부담이기보다 행복일 겁니다. 사람마다 모습은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책상이 행복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자신의 행복을 미루지 않고 지금 당장 누려주셨으면 합니다. 행복을 이룩할 완벽한 때도, 가져다줄 누군가도 없으니까요.(행복은 셀프!) 행복이란 거 생각보다 별 거 없는 것 같습니다. 아주 허술한 행복이라도 충분합니다. 그러니 행복하기로 결심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