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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제 Jan 10. 2024

잘 헤어지자.. 우리..

라는 개소리를 내 입으로 말할 줄은.. 세 번째..

이럴 거면서 연락은 왜 했던 건지, 보고 싶다, 생각나서 전화했다는 말은 왜 했던 건지, 이제까지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4개월밖에 안 됐으니 잘 모르는 게 맞을지도)라는 생각과 씁쓸한 마음이 밀려왔다.


예상도 하고 있었고 원래 헤어지자 하면 잡지 않는 나였기에..


"오늘 얼굴 보고 잘 헤어지자 우리, 그러고 깨끗이 돌아설게"


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멘트를 날리며 참으로 뿌듯(?)해 했다.


얼굴 보며 헤어져본 적이 없던 나는 일생일대 처음 겪는 이별방식을 경험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물건이라는 매개체 때문에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에 겨울 되면 그녀가 보고 싶다 했던 셔츠에, 니트차림에, 나름 깔끔하게 준비를 하고 갔다. 마지막 모습이 추하게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옷만 깔끔했지 표정은 그러하지 못했다.

거울을 보며 웃어 보이는 표정연습도 하고 입근육도 풀어보지만 풀어지지 않는다.

가는 차 안에서도 왠지 모를 긴장감에 점점 휩싸였다.


저번에 우리 집으로 찾아온 이후 거즘 일주일 만에 그녀를 보게 되는 것인데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많은 고민도 했다.


"나 집 앞에 왔어"라고 메시지를 보낸 순간 하늘에서는  장난이라도 치듯 비가 쏟아져 내렸다.

일기예보에 오후 12시에 온다는 비가 오지 않자 '기상청이 또 틀렸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비가 오긴 온다.. 이젠 구라청이 아니다....


왜 이렇게 멀끔히 하고 왔냐고, 본인도 씻고 있을걸 이라는 그녀의 말과 함께 갑자기 내린 소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안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매일 드나들던 현관문을 지나, 거실로는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신발장 앞에 섰다.


나랑 만날 때는 청소하라고, 해주겠다고 해도 정리가 안되었던 집이 열흘 만에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낯선 그녀의 집 거실처럼 그녀도 낯설었다.


예전 '러브하우스'라도 촬영하는 듯이 페인트 칠, 가구 위치 바꾼 것 등등 집 소개가 이어지고 가져갈 물건이라며 내미는 그녀의 손이 차갑다 못해 춥게 느껴졌다.


가져갈 물건을 보니.. 정작 내 소유의 물건은 헤어밴드 하나인데 그녀가 사줬던, 그녀 집에 비치해 뒀던 화장품과 커플 잠옷가지, 사뒀다 전달 못해준 모자가 다였다.


굳이 내가 가져가지 않아도 될 물건들이었다.


내가 어떻게 이걸 가져가서 쓰겠냐며 알아서 처리해 달라고 얘기하는 와중에도 내심 손톱만큼의 기대를 했던 거 같다.

나를 보자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를 보면서 나를 잡아주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


별 소득 없는(?) 얘기들로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 '많이 힘들었냐?'는 나의 물음에 참으며 '아니'라고 대답하는 그녀가, 나를 밀어내고 있는 게 또 느껴져서 그런 기대를 했던 내 마음을 철회하기로 했다.

이별에 쓸 때 없이 용기를 내지 않기로 하고 마지막 자존감이라도 지키고자 쿨하고 싶었던 나는..


"너의 말처럼 우리가 잘 싸우고 잘 풀지는 못했지만.. 우리 잘 헤어지자.."라고


그러고는 메시지로 보냈던 내용처럼 “갈게”라는 말을 뒤로하고 뒤돌아서 나왔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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