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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제 Jan 13. 2024

사랑도 재회도 타이밍이다.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면..

헤어지자는 말은 했지만.. 서로 합의(?) 하의 헤어짐이었지만 단칼에 잘라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잘 헤어지자"라고 돌아선 후 나는 이제 그녀가 없는 내 삶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동안 못 만났던 지인들과 저녁약속을 잡고 갑작스럽게 생기는 회사의 번개모임에도 나가고, 혼자 있으면 자꾸 생각이 날 것 같아서 바쁘게 살고 있던 와중..


5일 만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인들과 만남을 하고 있었던 것도 있지만 왠지 모를 괘씸함에 받지 않았다.

메시지로 연락이 와도 답변을 하지 않자 번갈아가면서 계속 연락이 왔고 "잘 지내?"라는 물음에 "잘살고 있어"라는 퉁명스러운 답변을 했고.. "보고 싶어"라는 어이없는 메시지에 답변도,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손을 내밀었는데 그게 아니라면 내 마음이 많이 다칠까 봐 두려웠다.


그녀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체념하겠다는 뉘앙스의 메시지와 함께 SNS에서 나를 차단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별로 대화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술을 마셔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지 아니면 '나를 그리워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우월감이 들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하루, 이틀, 날이 가면 갈수록 그녀가 연락 왔던 그날의 그 순간들이 떠올라 내 삶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내 마음이 무너지는 날이 있었다.


그녀의 연락이 오고 5일 뒤 회사 일로 정말 힘든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그날은 맨 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었고, 나의 그 상황을 잘 알고 있고, 항상 나를 위로해 주던 그녀 생각이 너무 사무쳐서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내 옆에서 위로해 주기를 바랐다.


술을 많이 마신 나머지.. 나의 힘든 상황과 마음속에 담아뒀어야만 했던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쓸 때 없는 용기를 내버렸다.


수신차단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

몇 번을 눌렀지만 신호음도 가지 않는다.

처음의 몇 번은 '뭐지?'라는 생각으로 몇 번을 눌렀고, 차단된 걸 인지한 순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술을 마시면서 한 시간 정도를 계속 그러고 있었나 보다.

메시지도 보내고 연결되지 않는 통화시도를 하고..

이미 술에 취해 정신줄을 놓아가고 있는 와중에..

전화를 받는다.

그다음부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의 취중통화로 그녀의 짜증 섞인 화냄에 잠깐 정신이 돌아왔고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전화를 끊어버리고 깊은(?)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전화기를 확인하고는 '이불킥'을.. 이불이 아니고 벽이었다면 벽도 뚫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수십 통의 발신내역.. 발신 메시지와 기억에는 없던 그녀에게서의 수신메시지..

땅을 뚫고 들어가고 싶었다.


'일찍 잠이 들었다는 말', '통화할 힘이 없어서 내일 통화하자'라는 말.

술에 취한 와중에도 '그 말이 왠지 마지막 일 것 같다'라는 생각에 집요하게 연결도 되지 않는 번호로 통화시도를 한 듯하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수신차단을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기록이 남는다는 것을......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 말자 라던 짓을, 내가.. 그 엄청난 짓을 해버렸다.


이젠 진짜 끝이구나..


이 사건(?) 전에도 관계가 끝이 났다고 항상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나의 집요함으로 끝이 나버렸다는 생각에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실망스럽고,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후회는 했지만 그래도 담아뒀던, 숨겨왔던 마음을 내 나름 표현했고, 결과는 원하던 대로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했다. 체념하기에 적당했다.


하지만 나의 자책이 나를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릴지 가늠도 할 수도 없는, 힘들게 지내고 있던 이틀 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꺼내고, 안 하던 짓을 한 그날의 나의 행동에 뭔가 모를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 것만 같은 말투와 대화내용(그 모습이 귀여웠단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에 그녀가 연락을 했을 때는 재회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날의 나의 행동으로 이제는 아니란다(그러면서 지금 연락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가 참..)


전에 했던 행동에 자책을 하고 있는 나에게.. 잔인하게 두 번 죽이는 말을 듣고 있자니 더 통화할 수가 없어서 "잘 지내라"라는 서로의 대화로 통화를 마쳤다.

그러다 20여분 있다가 전화가 와서 한다는 말이.. "왜 한 번도 본인을 제대로 잡지 않냐"라는 말..

이 말도 왜 물어보는지..

왜 물어보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잡는다고 잡히지 않는다. 그렇게 말해줬다.

'내가 잡으면 잡힐 거냐고..'

그러고 난 후 그녀가 궁금하다던 "헤어질 때 싸움에 누구의 잘못이 크다 생각하냐?"는 물음에..


확실해졌다.

그녀는 우리의 사랑과 재회를 생각하기보다는 본인의 입장, 마음을 더 우선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본인이 덜 잘못했는데, 내가 더 잘못한 건데 '왜 안 매달리는지', '왜 안 잡는지', '제대로 된 사과는 왜 안 하는지'라고 따져 묻고 그냥 나한테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재회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때는 그렇게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

헤어지고 한 달 가까이 재회를 기대한 내가 한심해서..

그랬더니 그냥 끊어버린다.


30여분 있다가 또 전화가 온다. 술 한잔하자고..

내가 이때까지도 미련이 남았었나 보다.

그 말에 거절은 하지 못했지만 나에 대한 마음을 확실히 정하고 이야기하라고, 나한테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찾아가겠다고, 더 이상 나도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보고 다시 전화하라고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전화가 오지 않는다. 1시간이 지나 새벽 12시가 다되어도 연락 오지 않는다. 술에 취해 잠이 들었나 보다.




그녀가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졌고, 본인 마음과 입장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도 느껴져서 한 번 더 씁쓸해졌다.

나는 왜 그렇게 못했는지.. 나도 내 마음을 제일 우선시했어야 했는데 왜 바보같이 상대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고, 보려 하고, 기다리고 이렇게 시간을 끌어왔는지.. 맞은데 또 맞는 느낌이었고 아픈 것보다 슬펐다.


크리스마스이브, 크리스마스가 지나며, '새로운 이성을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과 근거 없는 분노와 체념과 단념의 심경변화가 스쳐가던 2023년을 이틀 남기고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왔었다'라는 표현을 하는 이유는 전화가 온 줄도 모르고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저장도 되지 않은 번호로 한 시간 동안 십여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내가 혹시 술김에 전화를 할까 봐 그녀의 번호를 삭제했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 "미안해"라는 메시지와 함께..


술을 마셔서 그녀의 마음도 그날 무너지지 않았나 싶었고, 술김에 그냥 한 전화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 일부러 안 받는 줄 알고..

전에 내가 집요하게 전화를 걸던 그 마음이 생각이 나서.. 답변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괜찮아"라는 세 글자로 나의 마음을 함축시켰다.


이제는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받아줄 마음도 여력도 없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고 내 마음도 이미 많이 다쳤다.

헤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도 많이 깨졌을 거고 다시 재회한다 하더라도 어색함의 느낌이 더 커져 버렸기에 전처럼 사랑해 줄 자신도, 용기도 없다.

사랑했던 시간이 길지 않아서 그런지 한 달이라는 공백기간이 짧지만은 아닌 시간이었다.


이것으로 그녀와의 한 달 동안의 이별 밀당 또한 끝이 났다.




사랑도, 이별도, 재회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서로의 현재를 모르는 상황에서 내 마음이 급하다고, 내가 원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나와 같지 않다면 어떠한 용기를 내더라도 이어지거나 다시 붙이기는 어렵다.


애타게 원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면 '인연이 아니었다'라고 생각하는 게 덜 상처받고, 덜 아프지 않을까 싶다.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사랑할 때 내 온 마음을 다 쏟지 못하는 것 같다.

온 마음을 쏟았다가 헤어지면 많이 아플까 봐 소극적인 사랑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후회 없이 사랑하고 헤어지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자.

헤어지더라도 잡고 싶다면 용기 내어 잡아보자, 하고 싶은 것을 다해봐라.


잡지 않는 것이 '국룰'은 맞지만 재회하고 싶은 마음을 내 마음속에 담아두고, 기다리고, 애만 태우며 답답한 시간을 보내기 싫다면 자신의 마음을 최선을 다해 표현하고 뜻처럼 되지 않더라도 빨리 털어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자책과 아픔은 본인의 몫이고 감당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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