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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 Jan 04. 2024

에필로그 : 방탄소년단 팬 아미로 오늘도 이렇게 산다

이 마음의 영원을 믿고 싶다


영국 출신 앤 베로니카 얀센스 작가의 'CONNECT, BTS' 서울 전시회를 다녀온 적이 있다. 아래 사진은 전시회에서 내가 경험한 <그린, 옐로, 핑크>라는 작품이다. 공간에 초록색, 노란색, 분홍색 인공 안개를 넣어두고 관객이 그 공간 안에 들어가 안개를 느끼며 걷는 것까지가 작품이었다.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나를 둘러싼 공기의 색이 달라졌다. 온몸으로 낯설었지만 신선했다.



2020.2.1.



나는 얀센스 작가의 작품처럼 방탄이라는 방에 들어가서 안개 속에 있는 내 존재를 인지하려 해 보았다. 그리고 약간 친구와 회사 동료와 가족에 머물러 있던 세상에서 한 발짝 벗어나 다양한 아미들을 만났다. 외국인도 있었고 내가 대학생 때 태어난 친구도 있었다. 런던에 사는 친구, 홍콩에 사는 친구, 청주와 대구와 상주에 사는 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마트 직원이기도 했고 미생물 연구원이기도 했고 공무원이기도 했고 전업 주부이기도 했다. 우리는 콘서트 티켓을 잡기 위해 같이 애썼고 코로나로 콘서트가 취소됐을 때 환불된 티켓값을 함께 기부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방탄의 음악을 이해했지만 공통으로 회복되고 치유됐다. 모두가 방탄을 좋아하는 한 개의 점에 불과했는데 서로 이어져 선이 되고 면이 되고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



"저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은 어떠한 경제적 성취나 지위적 성취에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자건 아닌 사람이건 스스로를 사랑하는 정도는 결국 자기한테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2018년 6월 SBS 뉴스 남준 인터뷰)."


"제 버전의 Love Yourself는 '내가 생각보다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구나'입니다. 근데 그게 되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나는 이 세상에 많은 톱니바퀴 중에 하나고, 그냥 이렇게 열심히 굴러가고 있구나'라고 생각을 해보니까, 이 얘기도 사실은 예전에도 많이 들었던 얘기인데 예전에는 그렇게 안 와닿았던 것 같아요. 나와의 거리두기? 근데 이렇게 많은 일들을 겪고 그 말에도 몰입도 해보고 여러 가지 얘기도 해보고 듣고 하다 보니까 결과적으로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건 내가 나와의 거리를 조금 두니까 저를 사랑하기 좋더라고요.


결과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서 '나'를 빼니까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말을 여러분께 해드리고 싶었습니다(Love Yourself 투어를 마치면서 남준 멘트)"



그렇게 2017년부터 2024년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좋아하게 되었나?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가 좋나 라는 질문을 더이상 던지지 않는다. 그냥 살뿐이다. 먼지 같은 존재로, 톱니바퀴 같은 존재로.



나로 가득 차 터져버린 나의 풍선
터지고 안 건 그 안은 텅 비어있었단 거
Indigo (2022.12.2.) 10번 트랙 'No.2'



하지만 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깨달음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다. 매일 밤 아빌리파이를 복용해야 하는 우울증 환자라는 사실도, 한 달에 한 번은 미가펜을 먹어야 하는 편두통 환자라는 사실도 적당히 잊으며 지낼 수 있게 해 줬다.






나 자신을 찾는 여정의 끝에 다다른 건 다시 제자리. 결국 찾아야 하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이정표인 영혼의 지도. 누구에게나 있지만 아무나 찾을 수 없는 그것을, 나는 지금부터 찾아보려 한다.
'Epiphany' 뮤직 비디오 중



오늘도 눈 뜨자마자 거울 대신 방탄 소식을 확인하고 제대 날짜를 셌다. 어떤 날은 참 웃긴 인간 고무신으로서 주접을 떨고 살고, 어떤 날은 인공 안개가 잔뜩 낀 방에서 휘청거리며 산다. 이렇게 매일에 하나의 점을 찍다 보면 언젠가 나만의 영혼의 지도가 완성되지 않을까. 남준이는 'forever rain'에서 '영원 따위 없는 걸 알고 있어'라고 노래했다. 나는 그래도 이 마음의 영원을 믿고 싶다. 방탄소년단 팬 아미로 오늘도 이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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