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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향 Oct 15. 2023

<사랑하니까 괜찮아> 잘 싸고, 잘 먹고, 잘 자는데

몸이 아파지면서 남편의 식탐이 점점 심해졌다. 한 번에 먹는 양이 많지는 않지만 언제나 당장 먹고 싶은 것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이 맛도 저 맛도 다 똑같아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오늘도 아침에 먹은 된장국을 점심에 다시 내 놓았더니 심술을 부린다. 하루 삼시 세끼를 먹는데 매번 다른 국을 어떻게 끓이느냐고 한마디 했더니 이내 서운한 기색을 보인다. 아픈 사람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아 냉장고를 뒤져 굴비 한 마리를 꺼내 굽고 뚝배기에 김치찌개를 바글바글 끓였다. 남편은 얼마 전부터 몸의 앞 통을 거의 다 가리는 방수용 앞바대를 하기 시작했다. 눈에 띄게 손이 떨리기 시작하면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옷으로 떨어지는 것이 더 많아졌다. 끼니마다 국이며 밥알이며 온갖 반찬으로 얼룩지는 옷 빨래를 감당하기 어려워 앞바대를 하자고 제안했다. 처음 커다란 비닐을 둘러쓰고 식탁에 앉았던 날, 남편은 자신의 모습을 기막혀했다. 그런데 이제 앞바대는 남편의 식탐을 더 부추기게 되었다. 음식을 흘릴까 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으니 마음껏 퍼다 먹으며 마음껏 흘리는 것이다. 오늘도 조기 반 마리와 밥 반 공기는 앞바대가 먹었다.

“저녁엔 애들한테 해장국 사 오라고 해.” 점심 설거지를 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기가 막혀 뒤를 돌아보며 지금 막 밥 먹고 또 먹을 것이 생각나느냐고 물었다. 촉박하게 알려주면 애들이 번잡스럽다고 미리 알려주라고 한다. 그리고 큰 딸애가 저녁 해장국 배달에 당첨됐다. 남편은 해장국이 오기 전까지 사과 반쪽, 메론 아이스크림 1개, 도넛 1개를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너무 많이 먹는다. 온종일 휠체어에 앉아만 있는데 그 많은 것들이 소화는 되는 걸까?     


대변이 급하다는 남편을 겨우 변기에 앉히고 돌아서 커피 한잔을 탔는데 찻잔을 입에 대기도 전에 남편이 부른다. 벌써? 변비가 심해서 30여 분은 앉아 있어야 하는 나로서는 정말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정말 가기 싫다. 아무리 60년을 함께 산 남편이라도 뒤처리를 도와주는 건 언제나 힘들다. 금방 간다고 우선 대답하고 커피 한 모금을 입 안에 넣고 빙글빙글 돌려 천천히 마셨다. 

“여보, 미안해... 오늘은 좀 많이 눴어. 변기가 또 막힐 것 같은데....”

“아.... 정말.... 나 밥 먹은 거 아직 소화도 안 되었는데.... 이게 뭐야...”

남편은 말대로 정말 변기가 넘칠 정도로 많은 양의 대변을 보았다. 게다가 내 자식이라면 ‘어쩜 이리 이쁜 똥을 누었냐며 엉덩이를 두들겨 줄 것 같은 아주 건강한 대변이다. 내 평생 나한테선 볼 수 없었던. 낑낑거리고 남편을 일으켜 뒤처리를 해 주고 마루 휠체어에 앉혀 주었다. 나에겐 생각 없이 변기 물을 내렸다 낭패를 보았던 몇 번의 경험으로 쌓인 노하우가 있다.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그 노하우대로 찬찬히 남편의 장을 깨끗이 비워준 그것들을 익숙하게 처리했다. 

“내 똥 이쁘지? 흐흐흐” 민망한지 휠체어를 끌고 와 구경하던 남편이 말했다. 

“응 아주 대단해. 어떻게 그 뱃속에서 매일 이렇게 많은 똥이 나오지? 마술쇼야?”

속이 깨끗하게 비워졌으니 남편은 또 단 것을 찾늗다. 기가 차다.     


대령시켰던 해장국으로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보던 남편이 휠체어에서 잠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남편의 몸이 자꾸 옆으로 쓰러진다. 아무리 똑바로 다시 앉혀줘도 이내 다시 한쪽으로 기울어버린다. 휠체어와 같이 넘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휘어진 남편의 몸을 일으키고 깨워 침대에 눕혔다. 딸아이와 내가 양팔을 나눠 잡고 한 발씩 움직이게 구령을 붙이는데 남편은 비몽사몽이다. 남편은 이불을 덮어주며 ‘굿 나잇’ 인사를 하는 딸아이에게 대답도 못할 정도로 잠에 빠져들었다.      


깊이 잠든 남편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묘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옛날부터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 무병장수한다고 했는데 남편의 몸은 왜 자꾸 굳어만 가는 것일까? 내가 아는 한 남편만큼 잘 먹는 사람도 없고 남편만큼 잘 싸는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예민해서 잠 들기도 힘들고 숙면도 못하는 내가 부러울 정도로 이렇게 쿨쿨 잘 자는데 말이다. 남편의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보 당신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니까 건강해야하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잘 견뎌낼 수 있지? 그래서 다시 나랑 산책 나갈 수 있지? 나... 큰 욕심 없어. 그냥 당신하고 손  잡고 동네 산책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만 남편의 몸은 조금씩 더 굳어만 갔다. 옛말 틀린 거 없다더니 틀렸다. 유명하다는 의사들도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했는데 그들도 틀렸다.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길 그렇게 기도했는데 결국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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