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1970-80년대 한국인 미국 이민자들의 이야기이다. 미국의 아칸소 지방으로 한국인 부부가 이사를 왔다. 아내인 모니카는 이사 온 이동식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편 제이콥은 농사 지을 넓은 땅이 있어 마음에 들어 한다. 그들에게는 첫째인 딸과 둘째인 아들이 있다. 아들 데이빗이 심장병이 있어 엄마 모니카는 병원이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두 사람은 병아리 암수 감별하는 일을 한다. 그걸로 돈을 벌어왔고 새집을 위해 생긴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제이콥은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본격적인 농사를 짓고자 한다. 부모가 모두 일을 해야 하고 심장병이 있는 어린 아들이 걱정이 돼서 모니카의 어머니인 순자가 그들을 도우러 온다. 영화는 할머니가 오고 난 후의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세대와 문화
부부는 한국에서 더 오랜 기간을 보냈고 한국의 문화에 더 익숙한 이들이다. 반면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와 미국의 문화에 더 익숙하다. 특히 어린 아들인 데이빗에게는 더 그러하다. 반면, 그들의 외할머니는 완전히 한국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인물이다. 데이빗과 할머니의 세대 간 문화 간 차이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데이빗이 할머니에게 쿠키를 만들 줄 아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모른다고 답한다. 그런 할머니에 대답에 할머니 같지 않다고 하는 데이빗의 말에서 그들이 처음에 얼마나 정서적으로 거리가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매일 붙어있을 수밖에 없는 둘은 천천히 서로를 이해해 나간다. 할머니는 쿠키는 만들지 못하지만 대신 화투를 가르쳐준다. 엉겁결에 배운 화투를 배운 데이빗이지만 어느새 화투를 친구에게도 가르쳐 준다. 심장병이 있어 항상 야외에서의 움직임에 소극적이었던 데이빗을 할머니는 어떻게든 같이 데리고 산책한다. 데이빗에게는 어려운 할머니였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지혜와 사랑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데이빗이 본인에게 못된 장난을 쳐도 너그럽게 넘어가며, 다친 데이빗을 정성스레 돌봐준다. 미나리 밭에서는 생명을 경시하지 않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 영화를 그 시대를 살았던 한국 이민자들의 회상이라고 본다면 할머니와 함께 했던 일들은 어린 시절의 상징적인 기억일 것이다. 유년기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익숙하지만 낯선 타지의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이민자 2세들의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었던 기억일 수 있다. 영화는 구체적이고 정성 어린 눈빛으로 기억들을 다시 조명해 나간다.
병아리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의 직업은 병아리 감별사이다. 그들은 아칸소로 이사오기 전 이 일로 돈을 벌어왔고 이사를 하느라 빚이 생긴 이후에도 돈을 갚기 위해 계속 같은 일을 해나가고 있다. 부부가 병아리 감별사를 하면서 벌어진 두 가지 상황이 있다. 먼저 모니카가 병아리를 떨어뜨린 일이 있었다. 모니카는 다시 병아리를 챙기려 했지만 병아리를 나약하기에 한 번 다치면 그대로 나두라는 말만 돌아온다. 두 번째는 제이콥이 아들에게 병아리 소각장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다. 수병아리는 쓸모가 없고 맛도 없기에 소각된다고 얘기한다.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의 가족은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마치 병아리 같다. 우선 그들은 나약하다. 오랫동안 미국에 살아오지 않았으며, 다수도 아니다. 그들은 미국 사회에서 자신들의 쓸모를 찾고 있다. 제이콥이 농사를 성공하려는 이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소일거리만 전전하는 그런 생활이 아닌, 제대로 된 사업을 통해서 미국에 정착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 가족의 정착이 쉬워 보이진 않는다.
미나리
이 가족이 무너질 뻔한 순간들이 영화 내에서 몇 번 등장한다. 농작물에게 줄 물이 없어 수돗물을 사용하느라 식수가 나오지 앉을 때, 농사를 계속 짓고 싶어 하는 남편과 안정적으로 가족이 다 같이 살았으면 하는 아내의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을 때, 집의 창고가 불타기 시작했을 때가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이 지나고 이 가족들은 더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그들이 어떻게 이러한 갈등을 봉합하고 나아갔는지 영화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족은 삶의 전부이자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서로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마지막 창고가 불타는 순간에서 느꼈을 것 같다. 부부는 불타는 창고 안에서 서로에게 의지하여 밖으로 나가게 되며, 아이들은 그 순간 가족들에게서 멀어지는 할머니를 붙잡는다. 가족의 붕괴를 앞둔 순간 그들을 극적으로 다 같이 모이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아빠와 아들은 할머니가 뿌리내린 미나리를 수확한다. 이 순간 데이빗의 가족은 병아리에서 미나리가 되었다. 이제까지는 나약하고 쓸모를 찾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하는 이민자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낯설고 거친 미국이란 사회에서 뿌리를 내려가는 미나리와 같이 보인다. 가족은 이전보다 단단해졌으며, 한국의 식재료인 미나리처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도 같이 가지게 되었다. 아직도 미나리처럼 변두리에 있지만 푸르르다.
이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픽션이긴 하지만 그 아이디어의 원천은 본인의 기억일 것이다. 이들은 살아오면서 세대와 문화의 파도를 거쳐가며 살아왔다. 그들은 여전히 미나리처럼 뿌리내리고 있다. 영화는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면서 기억하고 싶은, 힘든 순간을 버티게 해 준 소중했던 가족의 이야기를 비춰준다. 어쩌면 그 당시 느끼지 못했고 이제는 이해하는 기억들을 영화를 통해 다시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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