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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질문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창의성

by 정문정
eDlCpNooDjqLGYsgvNQXIbUllLAepqJd.jpg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15071


아이가 매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를 부른다. 남편도 함께 부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먼저 본 내가 남편에게 추천했을 때 그는 의심했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봐봐. 애니메이션인데 잘 만들었어. 노래도 좋고.”

“어른도 보는 거 맞아?”

“제목은 좀 그런데… 내용은 괜찮아.”

“무슨 내용인데?”

“케이팝 아이돌이 악령을 무찌르는 거야.”

“… 뭐라고?”


그랬던 남편이 요즘 차 안에서 제일 먼저 트는 노래는 ‘골든’이나 ‘소다 팝’이다. 가족이 함께 즐기는 글로벌 콘텐츠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넷플릭스에서 역대 가장 많이 본 영화 1위를 기록하면서 신드롬급 인기를 구사하고 있다.


케이팝뿐 아니라 한국문화를 세심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매기 강 감독은 다섯 살 때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한국인이지만 한국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한다. 한국 곳곳을 방문해 사진을 찍어 분석하면서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가파른 북촌 모습이나 명동 거리의 간판과 도로 디자인도 실제와 유사하게 표현했고, 한국의 도시에는 높은 건물과 산이 어우러져 있는 게 인상적이라며 이를 적용했다. 그런 노력 덕에 영상 속 서울의 풍경은 유독 아름다웠다. 등장하는 한국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강 감독은 최근 토크쇼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말했다.


“제가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서 오래 안 살았고 해외에서 많이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게 좀 있어요. 한국에서 안 사는 사람은. 그래서 고민을 했는데 너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해요. 케이팝 영화를 만들면서 세계에 우리 문화에 대한 모든 면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인터뷰를 보며 든 생각은 한국에서 오래 안 살았고 해외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는 거였다. 한국에서 한국인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시놉시스를 내놓자마자 유치한 국뽕 콘텐츠라고 거절당했을 가능성이 클 테니까. 천운으로 제작을 시작했더라도 이런 질문이 크리에이터의 머릿속을 자꾸 헤집고 떠다녔으리라. 무당, 해태, 저승사자 같은 건 너무 한국적 클리셰 아닐까? 등산복 입고 선캡 쓴 아주머니를 그려 보이면 비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런 식의 검열 속에서 원래 생각했던 콘셉트의 상당 부분이 깎여 나갔을 것 같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창의성이 있다. 육아를 하며 자주 느낀다. 한 번은 나갈 준비를 하는데 아이가 달력을 보고 있다가 물었다.


“6월은 왜 육월이라고 안 해요? 10월도 왜 십월이라고 안 해요? 다른 달은 안 그렇잖아요.”


나는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


“발음하기 쉬우려고.”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뒤 나도 학교에 갔다.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어 학우들과 식사를 하다 그 생각이 나서 정확한 이유를 아는지 물어보았다. 국문학 석사 과정생인 한국인이 나 포함 세 명, 우즈베키스탄인 한 명이 있었는데 답을 준 건 외국인이었다. 그가 설명했다.


“제가 알아요. 한국어 공부할 때 배웠거든요. 그건 활음조 현상이라는 거예요. 발음을 더 쉽게 하려고 음운을 변형시키는 거죠.”


그 우즈베키스탄인의 한국 문학 관련 논문에는 한국인이 쓸 수 없는 참신함이 있을 것이다.


아이가 질문을 쏟아내던 초반에는 ‘원래 그래’ ‘당연한 거야’라고 대꾸한 적 있었다. 그래놓고 찾아보면 확실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 튀어나오곤 했다. 언젠가 또 아이가 구구단을 흥얼거리다 이렇게 물은 적 있다.


“왜 곱하기는 앞의 수와 뒤의 수가 바뀌어도 답이 같아요? 3 곱하기 2도 6이고 2 곱하기 3도 6인데 빼기나 나누기는 안 그렇잖아요.” 검색해 보니 곱셈과 덧셈에는 교환법칙이 적용되어 그렇다고 한다. 이런 데에도 법칙이 있다니!


익숙한 걸 잘 아는 것으로 혼동한 적 많다. 글쓰기의 대표적 지침 중 하나인 ‘잘 아는 것에 대해 쓰라’를 요즘은 이렇게 바꾸어서 이해한다. ‘제대로 알고 싶어진 것에 대해 쓰라.’ 며칠 전에는 식사 중인 남편을 꼼꼼히 뜯어보았다. 속눈썹이 길어 안경에 닿았다. 저이 속눈썹이 저렇게 길었나? 옆에서 아이가 왜 우리는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는지 물어보았다. 반응하는 남편의 입가에 한층 굵어진 주름이 선명했다. 어라? 그 옆에 보조개도 있었다. 처음 알았다.




[한겨레신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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