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기대했는데, 난 <나의해방일지>가 더 낫더라, 한 딸의 한 마디에 드라마 두 개를 모두 완시청했다. 주변의 몇몇 이들은 <나의해방일지>의 작가가 저들의 인생작인 <나의아저씨>와 동일 작가라며 환호했는데, 몇몇 학습사이트에서는 박해영 작가의 각본을 읽고 토론하는 클래스가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유튜브 채널 ‘편집자K’에서 소개해 알게 된 오디오클립 ‘한사람을위한문학이야기’에서도 최근 <나의해방일지>를 다뤘다. ‘편집자K’는 문학동네출판사의 편집자 강윤정의 채널이고 ‘한사람을위한문학이야기’는 소설가 정용준의 채널이다. 정용준은 <나의해방일지>에서 무엇보다 ‘추앙’이라는 대사에 집중했다. ‘추앙’은 나에게도 그랬고 그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낯설었을 그리고 오래 생각해 보게 되었을 대사라고 생각한다. ‘미정’은 ‘구씨’에게 술을 마시는 대신 당신에게 할 일을 주겠다며 자기를 추앙하라고 했다.
사랑 말고 추앙하는 남녀 사이. 사랑이 들어갔어야 할 자리에 추앙을 놓은 작가의 의도를 나는 “고체의 논리”를 부정하는 사랑이라고 해석한다. 고체의 논리는 이십 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책에 있던 문구다. 그것은 양적 논리이고 지성의 작동 방식이며 한 마디로 계산적인 사랑이다. 분리된 두 개의 단단한 정체성이 만나 공존하려 할 때 어느 한 쪽은 깎이고 깨진다. 주고, … 주는 만큼 받아야 다시 줄 힘이 생기고…. 사랑의 세계는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란 말이 성립되는 세계다. 베르그송은 존재를 ‘흐름’이라고 말한다. 단일한 정체성은 없다. 존재는 섞이고 섞여 남과 여로 분리되지 않는다. 미정은 전화번호를 바꾸고 말없이 떠난 구씨가 다시 나타났을 때 당신이 생각날 때마다 감기는 안 걸리고 살기를 기도했다고 말한다. 추앙은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기를 검은 돈벌이를 캐지 않는다. 흐르는 존재는 바꾸지 않고도 바뀌며 깨지지 않아도 섞여 옅어진다. 삶으로 이어진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영화 대사가 있었다. 한 저명한 인문학자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며 그것을 인정(식) 해야 미망(迷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당시 죽음을 넘어선 왕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를 그는 거품 물며 비판했었다. 사리에 밝아야 지혜롭게 살 수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세계, 고체의 세계에서의 진리이다. 가르침과 깨달음이 유효한 세계는 여기다. 그러나 흐름은 나아가기만 한다. 진행을 멈추지 않고 돌이키지 않는다. 못 먹어도 고, 죽어도 고. 위험한 사랑. 작가는 문어이기만 했던 추앙을 구어로 회자시켰다. <나의아저씨>로부터 변함없이 추구되었던 무엇이 작가에게 있었다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추앙’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례없는 저출산 사태, 결혼은 무슨, 연애도 안 한다는 청년들을 회유하기 위해 국가는 청년 주택과 저리 대출 등등의 정책과 제도적 변화를 꾀한다. 그것이 무슨 해법인가 하겠지만 그것은 최선의 해법이다. 계산에는 계산적인 해결책밖에는 없으므로. 고체들의 세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