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인혁 Jul 15. 2022

독립출판과 사담

책을 쓰면서 들었던 작은 생각들


책을 쓴다는 일     


 18개월 동안 군대라는 곳에서 책을 썼어요. 참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감정이 필요 없는 곳에서 감정을 끄집어내서 글을 쓴다는 일이 어렵다고만 생각이 들 테지만, 오히려 쉬웠어요. 감정들을 밖으로 꺼내기보다는 응축시킨다거나 안에서 조용히 곱씹어 보는 일이었으니까요. 참 많은 것들을 생각했어요. 어제오늘 있던 일들도, 몇 년 전에 있었던, 기억이 희미해진 더 오래전 일들도. 생각을 하기에는 참 좋았던 시간이었어요. 자기 전에 그런 생각을 떠올리느라 2시간은 잠에 못 들기도 했고, 새벽 한가운데 불침번을 서면서 떠올리기도 하고. 

 군대에서 힘들 때, 잠깐은 삶의 목적을 잃어버렸을 때는 5천만의 국민 중에서 50만 명이 군인이라는 문장을 떠올리고는 했어요. 그러니까, 숫자를 나눠보면 내가 저 시간 동안은 나를 포함한 100명의 사람을 지킨다던가, 저 시간 동안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손가락 정도는 지킨다는 말이었을 테에요. 내가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백 명을 채워가며 힘을 얻고는 했어요. 그만큼 안에서 밖의 사람들을 떠올렸다는 뜻일 테에요. 그 마음들을 그저 두고만 있기에는 아쉬워서,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가볍지는 않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서 틈틈이 글로 정리했어요. 그리고 조금 다듬어서 출판을 해보기로 했어요.   


 

요즘 책들을 읽지 않는 이유     


 서점에 가보면 베스트셀러라면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책들이 보이는데 사실 한 번 펼쳐보고 읽어본 적이 없어요. 괜찮다거나 토닥거리는 책들은 착한 척하는 모습으로만 보였어요. 세상은 차가운데 억지로 따뜻하게 만드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요. 책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짙은 친함에서 옅은 친함으로 넘어갈 때면 항상 느껴요. 이들은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꺼낸 말을 중심으로 생각해주거나, 오히려 진심을 귀찮아하는 기분을 받았어요. 물론 그들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들에게도 더 진한 친밀함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을 테니까요. 그 사람들을 위해 진심을 나누기에도 벅차니까요. 그런데도 그런 모습이 그냥 아쉬웠어요. 어쩔 수 없음을 아는데도. 어느 순간 저런 책들에는 손이 가지 않기 시작했어요. 읽을 때는 따뜻해도 책을 덮으면 사라져버리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요즘 신조어들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번 아웃이나 감정 소모 같은 단어들이 싫어요. 내가 정말 감당하지 못할 만큼 무언가에 몰두해서 번 아웃을, 나조차 나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힘들었던 적이 있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감정 소모라는 단어는 나쁜 단어인 것 같아요. 누군가를 위해 나의 감정을 내주는 것을, 아니 어쩌면 빌려주는 것을 감정 소모라고 많이 표현하던데. 그런 당신은 당신 밖의 사람들에게 감정을 얻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요. 누군가는 끊임없이 당신에게 감정을 소모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감정은 소모하면, 소모한 만큼 다시, 아니 그보다 더 큰 마음들이 돌아와요. 내가 공감해주고, 상대방이 위로받은 모습을 보면 내게 새롭고 따뜻한 감정이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에요. 소모가 끝이 아니고, 새로 들어오고 나가는 감정의 순환으로 봤으면 좋겠어요. 감정은 1을 쓰면 1.1이 돌아오고, 10을 쓰면 11이 돌아와서.    

 그래서 그런 뻔하고 아름다운 말들로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조금은 차갑더라도, 조금은 진심에 가까운 단어로 채워보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이 읽어주지는 않을 테지만, 한 명이라도 마음에 들었다면 만족할 테에요.

 



책에 대해서     


 마음이 주제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감정들이나 사랑을 건드리게 되었을 거예요. 사랑은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뻔한 클리셰가 아니라, 말 그대로 모든 것. 사랑을 해체해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사랑은 감정들이 모인 것이고, 사람은 감정들이 모인 것이에요. 그러니까 사람과 사랑은 같은 의미라고 볼 만큼. 우리와 함께해 온 것이죠.

 사랑이라는 단어가 엄청 크게만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세상 모든 사람이 갈구하고, 쫓으려 하지만 모두가 실패하는 일. 그래서 차마 다가가지도 못해서 주저하는 일. 제게 사랑은 그랬어요. 그런데 그 사랑은 작은 사랑임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로맨스나 멜로의 사랑은 사랑의 종류의 하나에 불과해요. 가족이나 친구, 하다못해 날씨나 기분 좋은 공기, 해질녘의 분위기 모두 다 사랑으로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것, 그 모두를 뛰어넘는 사랑이 있어요. 그 넓은 사랑에 대해서 써 내려갔어요.

 너무 자세한 단어들은 최대한 지양하고, 관념적이고 부드러운 단어들을 위주로 쓰려고 노력했어요. 단어들을 제가 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책 사이사이 호흡에 책을 읽는 당신들의 생각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책에는 “작은따옴표를 큰따옴표로 만들기 위한 일들이나 한 짝이 두 짝이 되는 일은 두 배가 아니에요.”라는 내용이 있어요. 우리는 생각을 말로 만드는 데에 너무 무관심해요. 해왔던 대로 적당히 내 말을 돌려서 표현하고, 적당히 끄덕거려주고. 내 마음을 표현한다고 우리는 말해요. 마음 그대로를 전달할 수가 없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단어들로 조합하고 표현해서 마음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진심을 한 번도 밖에서 마주한 적이 없을 거예요. 한 번 곰곰이 우리 진짜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출판하기 위한 과정과 그 이후의 날들


 아무래도 책을 처음 써본 사람이었고, 대중적인 에세이와는 거리가 멀어서 독립출판을 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독립출판 플랫폼을 통해 출판을 하게 되었어요. 군인 신분에서는 책을 출판하는 것이 어려워서 전역일에 맞춰서 출판할 수 있도록, 시기를 조절하며 준비했어요.

 우선 글을 쓰고, 흐름에 맞추어 배열을 했어요. 표지도 직접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워가면서 만들었어요. ISBN도 발급받고, 책을 입고시켰어요. 그러고는 한 권, 두 권씩 팔렸어요. 수 백권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여러 곳에서 구매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너무 감사했어요. 제주, 서울, 인천, 군산, 울산과 같은 지역의 독립서점들로 팔려서 누군가가 읽어주는 일. 내가 얼굴을 모르는 이가 나의 책을 읽고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너무도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였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글로써 사람의 마음을 두드린다는 일이 얼마나 크나큰 일인지. 글이 사랑받는 일이 너무도, 생각한 그 이상으로 감사했어요.


           

진짜는 숨을 쉬지 않지만, 이제는 그런 것처럼 보인다.

반쯤 투명한 그는, 이제 반쯤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시집 <불침의 밤을 지키는 잠이라서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