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회윤 9회 옻칠개인전에 관한 이야기
활짝 열린 창밖으로 벚꽃이 만발한 순간을 담은 2018년 작 <벚꽃>은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불꽃같습니다. 더구나 작가는 불꽃축제처럼 순간적으로 사리지는 아름다움을 잡으려는 듯 벚꽃나무가지가 창을 넘어와 뿌리처럼 벽에 달라붙어 있습니다. 작열하고 폭발하는 불꽃축제의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눈을 감았습니다.
불꽃축제의 잔상이 만든 파장은 홀로그램처럼 변하여 엄마가 화장하는 모습을 만듭니다. 나전칠기 화장대 거울에 어릴 적 안방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나전칠기가 햇빛을 반사하면서 영롱한 파장을 만듭니다. 기억만으로도 나전칠기 화장대에서 엄마 냄새가 납니다. 어머니의 냄새는 간장조림 냄새지만 엄마의 냄새는 장미향 같은 분 내음입니다. 어머니는 따뜻한 밥상이고 엄마는 찻잎이 우러나는 유리 찻잔에 맺힌 물방울 같습니다. 엄마를 떠올리며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바람에 날리는 꽃향기 같은 것이 납니다. 엄마는 아침저녁으로 화장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과 머리를 매만졌습니다. 화장대 거울은 커서 안방이 거의 비쳐 보였고 화장대의 전체 높이는 나보다 컸습니다. 옷을 다 차려입은 엄마는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려가며 모양새를 확인할 때 물결치는 엄마의 치맛자락은 날아갈 듯 가벼웠습니다.
자라면서 이사를 다니는 동안 골방 구석 잡동사니에 둘러싸인 나전칠기 화장대는 폐위된 왕의 모습 같았습니다. 화장대의 구조는 조선시대 임금이 앉는 어좌처럼 생겼습니다. 가운데 거울은 등받이 같고 화장품을 놓는 계단 형태의 서랍장은 앉는 부분이고 양쪽 붙은 수납장은 팔걸이 같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화장대는 다시 서을 변두리로 이사하면서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개인전에서 당시 영롱한 파장을 만들던 화장대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작가님의 화면은 영롱한 빛을 발산하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 신비로운 빛깔은 나전칠기 재료인 전복 껍데기의 발색만이 아닐 겁니다. 칠하고 말리고 갈아내고 다시 칠한 장인의 혼을 머금은 옻칠에서 나올 겁니다. 옻칠은 볼 때마다 오묘한 빛깔로 나를 사로잡습니다. 햇살을 받으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검정이었다가 해가 지면 자줏빛으로 변신하지만 언제나 묵직하게 나전칠기의 문양을 선명하게 받혀줍니다.
이번 ‘첫봄’ 개인전에 등장한 <버드나무_봄>을 보고 다시 시간여행을 떠납니다. 젊은 나는 아파트 화단 벤치에 앉아 버드나무를 바라봅니다. 싱그러운 바람이 버드나무 가지를 흔들어대는데 내 마음은 응어리진 돌이 되어 가라앉았습니다. 그녀가 연두색 캐시미어 카디건을 두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그녀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카디건을 보자 그녀가 먼저 나를 버린 것 같았습니다. 카디건을 살며시 안았습니다. 카디건에 벤 그녀의 체취를 맡고 나서 미련 없이 헌옷수거함에 가져다 버렸습니다. 그해 이별의 봄은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봄이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버드나무_봄>은 눈꽃이 핀 버드나무가 아직 저 너머에 있는 싱그러운 봄을 끌어당긴 느낌입니다. 작가님의 화면을 보면 잔잔한 물에 던진 돌이 만든 것 같은 파동이 느껴집니다. 켜켜이 쌓인 옻칠이 자아내는 파동이라 상상력이 무한 확장합니다. 버드나무 아래서 지난 연둣빛 봄을 돌아보니 그녀가 왜 떠났는지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