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이었다.
" 여보세요. 저 OO이에요."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던 중 저장되지 않는 번호의 전화가 왔다.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 죄송한데 누구시라고요?"
" 선생님 저 OO이에요."
처음에는 내가 알던 이름 중에 비슷한 이름이 있어 몇 번은 되묻다가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이름이 있었다.
" 너 OO이니?. 야 오랜만이다. 잘 지내니?"
" 네 선생님 저 OO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아이는 내 초임 시절 맡았던 특수반 아이 중에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 었다. 이런저런 호구 조사를 하다 보니 벌써 이 아이가 23살이 되었고 처음 전화를 하면서 느꼈던 느낌은 자폐를 가진 아이가 이렇게 대화를 잘하게 되었다니? 하는 기쁨의 경악이었다.
이 아이는 지금 표현으로 말하면 경증 자폐아였다. 어머니가 운전을 못해서 버스를 타고 학교까지 아이를 데려다줘야 했던 그런 아이였다. 자페 스펙트럼이 있지만 사회성은 괜찮은 편이었고 주변에 천사 같은 친구들이 있어 항상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짝을 지어 학교를 다니던 그런 아이 었다.
이때 당시 초임의 열정에 불타올라 학급 경영에 진심을 다해 매진을 했던 학년이었던지라 그때의 기억은 작년에 만났던 마스크로 가려진 아이들보다 더 선명하게 나의 뇌리에 남아 있다.
공개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나의 진로에 대한 내용의 수업을 진행하는데 이 아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1년 동안 수업 시간에는 허리 멍텅 한 눈빛으로 무슨 소리인지 빨리 끝내 달라는 말을 표정으로 했던 아이인데 그날따라 눈빛이 변하더니 나의 장래 희망을 말해보자는 나의 말에 손을 힘차게 들었다.
" 저의 장래 희망은 자동차 정비사입니다. 전 자동차를 좋아합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는 현대, 기아, 삼성....... 등등."
자동차를 좋아하던 이 아이는 자동차 회사의 이름과 자동차의 이름들을 줄줄이 100가지를 외우고 다녔었다. 자신이 잘하는 걸 말할 기회가 오니 번쩍 손을 들어 발표를 했던 기억이 난다. 발표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고 발표가 끝나자 반 친구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에 활짝 웃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에 반가운 나머지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걸 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여전히 상대방의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게 느껴진다. 그러나 대략 10분 정도 통화를 하면서 끊임없이 " 선생님 요즘 뭐하세요?" " 선생님 주말에는 뭐하세요?" 하면서 상대방의 안부를 확인하는 반응을 보니 그래도 다행히 사회화가 잘 이뤄져서 예전에 했던 걱정이 한시름 덜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내가 전화 내용을 듣다가 전화를 끊고 나니
" 누구야? 누군데 질문에 두서가 없어?" 물었다.
" 예전에 자기 발령 나기 전에 내가 가르쳤던 아이야. 자폐 때문에 고생이 많았는데 그래도 잘 컸네."
아내도 나의 얘기를 듣더니 자폐를 가진 아이가 어떻게 말을 그렇게 길게 해? 하면서 우리 가족은 하던 저녁 식사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