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유쌤 Nov 10. 2022

한 통의 전화

어제 일이었다.

" 여보세요. 저 OO이에요."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던 중 저장되지 않는 번호의 전화가 왔다.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 죄송한데 누구시라고요?"

" 선생님 저 OO이에요."

처음에는 내가 알던 이름 중에 비슷한 이름이 있어 몇 번은 되묻다가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이름이 있었다.

" 너 OO이니?. 야 오랜만이다. 잘 지내니?"

" 네 선생님 저 OO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아이는 내 초임 시절 맡았던 특수반 아이 중에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 었다. 이런저런 호구 조사를 하다 보니 벌써 이 아이가 23살이 되었고 처음 전화를 하면서 느꼈던 느낌은 자폐를 가진 아이가 이렇게 대화를 잘하게 되었다니? 하는 기쁨의 경악이었다.

이 아이는 지금 표현으로 말하면 경증 자폐아였다. 어머니가 운전을 못해서 버스를 타고 학교까지 아이를 데려다줘야 했던 그런 아이였다. 자페 스펙트럼이 있지만 사회성은 괜찮은 편이었고 주변에 천사 같은 친구들이 있어 항상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짝을 지어 학교를 다니던 그런 아이 었다.

이때 당시 초임의 열정에 불타올라 학급 경영에 진심을 다해 매진을 했던 학년이었던지라 그때의 기억은 작년에 만났던 마스크로 가려진 아이들보다 더 선명하게 나의 뇌리에 남아 있다.

공개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나의 진로에 대한 내용의 수업을 진행하는데 이 아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1년 동안 수업 시간에는 허리 멍텅 한 눈빛으로 무슨 소리인지 빨리 끝내 달라는 말을 표정으로 했던 아이인데 그날따라 눈빛이 변하더니 나의 장래 희망을 말해보자는 나의 말에 손을 힘차게 들었다.

" 저의 장래 희망은 자동차 정비사입니다. 전 자동차를 좋아합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는 현대, 기아, 삼성....... 등등."

자동차를 좋아하던 이 아이는 자동차 회사의 이름과 자동차의 이름들을 줄줄이 100가지를 외우고 다녔었다. 자신이 잘하는 걸 말할 기회가 오니 번쩍 손을 들어 발표를 했던 기억이 난다. 발표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고 발표가 끝나자 반 친구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에 활짝 웃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에 반가운 나머지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걸 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여전히 상대방의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게 느껴진다. 그러나 대략 10분 정도 통화를 하면서 끊임없이 " 선생님 요즘 뭐하세요?" " 선생님 주말에는 뭐하세요?" 하면서 상대방의 안부를 확인하는 반응을 보니 그래도 다행히 사회화가 잘 이뤄져서 예전에 했던 걱정이 한시름 덜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내가 전화 내용을 듣다가 전화를 끊고 나니

" 누구야? 누군데 질문에 두서가 없어?" 물었다.

" 예전에 자기 발령 나기 전에 내가 가르쳤던 아이야. 자폐 때문에 고생이 많았는데 그래도 잘 컸네."

아내도 나의 얘기를 듣더니 자폐를 가진 아이가 어떻게 말을 그렇게 길게 해? 하면서 우리 가족은 하던 저녁 식사를 마무리했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의 변화는 담임도 춤추게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