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못 타는 여자

by 일상라빛



자전거타기가 제일 어려워요



내게 유일하게 못하는 것이 있다. 자전거타기다. 조카가 가르쳐준 적이 있는데 탄지 10분만에 코칭을 포기했다. 핵심은 균형잡기를 못 한다는 이유다.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 엉덩이를 이쪽 저쪽으로 과도하게 움직이다 보니 오히려 균형이 안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도 자유롭게 라이딩하며 바람을 가로지르는 것을 꿈꾼다. 생전에는 못 이룰 것 같다. 다음생엔 이룰 수 있을까?


삶에도 두려움이 싫어 완벽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일을 행함에 있어서도 균형잡기가 힘들다. 한가지에 매혹되면 끝을 봐야 만족하는 성격 때문이다. 뭐든 적당히가 없기에 도가 지나칠 때가 많다. 한번은 14년간의 사회 직업을 그만두고 쉰 적이 있다. 하고싶던 취미생활이나 해보자 싶어 ‘홈패션’을 시작했다. 홈쇼핑에서 재봉틀을 구매했고, 취미교실에 등록해서 매일 출근했다. 도시락까지 싸가며 오전 오후를 보냈다. 즐거웠다. 일이 아닌 것에 집중해보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늦게 배운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고. 맞는말이다. 만들기 과제를 하나 맡으면 ‘완성’ 두 글자가 인지되었을 때 그만두었다. 그 날 센터에서 다 끝내지 못한 것은 집까지 들고 와서 마무리를 지어야 발 뻗고 잘 수 있었다. 이를 본 함께 사는 남자는 혀를 차며 이정의 ‘내일 해~ 우리그만 잡시다~ 내일 해’를 외쳤다.




ADHD라 불렸던 여자


20대 후반 과거시절의 남자친구는 집까지 일거리를 들고와 비즈니스 메일을 보내는 나를 보고 말했었다.


"당신 ADHD 같아."
"....WHAT?"


당시에는 무슨 개소리냐며 화를 냈지만 그 후로도 그 말은 내 머릿속 0.1%의 공간 속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관심흥미가 있는 것에는 끝장을 볼 때까지 손에 잡고 있는 대단한 장인정신을 발휘하지만, 반대로 목표와 흥미가 없는 것에는 6개월 단위로 취미가 바뀌었다. 시험공부를 할 때는 한 과목을 집중해서 공략하기 보다는 세 네 가지 과목을 30분 단위로 바꿔가며 공부했다. 시험은 관심분야가 아니었음이 확실했다.


변명의 여지는 없다. 현재 같이사는 남자(반려자)를 보면 나에 대해 더욱 의심이 갔다. 한 직장에서 15년 이상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가 변이유전자를 가진 사람같았다. 어떻게 한 곳에서 10년 이상이나 엉덩이를 붙이고 있단말인가?! 주말이면 TV 앞 소파에도 엉덩이를 온 종일 붙이고 있는 기술을 지녔다. 대단하다. 그와 반대로 난 20대 중반까지 첫 직장생활 5년이 가장 오래 근무한 기간이었다. 이후 진로탐색은 롤러코스터급으로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갔다.


내 인생에 거쳐간 직업만해도 무려 7개 분야 9개다. (섬유, 문화관광, 호텔, 국제회의 및 국제교류, 상담, 아나운서 및 팟캐스터(미디어), 작가) 직업에 관해서는 1인 최다이력으로 진로탐색 책을 내도 될 것 같다. 이 직업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갈아탔다. 그 때는 젊었고 100세 시대 내 인생을 책임져 줄 탄탄한 직업을 탐색해야만 했다. 흠 될 것이 없다 생각했다.


마지막 직장을 그만두고 청소년진로코칭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상담의 길로 들어갔다. 경찰상담, 선도상담, 진로특강을 하며 전국을 오가며 인생 제3막을 달렸다. 금연금주, 미술치료 필요한 자격증은 다 땄다. 그러나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중단되면서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는 무기한 휴게소에 머물렀다. 그 후 뭐라도 해보자 심정으로 시민 아나운서, 팟캐스터, 라디오 시민작가로 미디어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지금 작가로 전향했다. 며칠 전에는 번역가로 제의가 들어와서 희망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자의 반 타의 반 한 가지 일을 오래하지 못하는 사람, 진로 ADHD 증후군이었다.




안주거리가 된 여자


하지만 의외의 시선에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진실을 찾았다. 반려자는 오히려 나를 보며 신기해했다. 이 글에 나온 모든 '격변의 관심사'를 지켜본 그는 회사 멤버들에게 일거수일투족 '와이프의 도전기'를 공유했고, 그들 사이에서 난 '박프로(Pro)'란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한번은 그들에게 물었다.


"왜 프로에요?"
"왠지 프로라 불러야할 것 같아서요."


누군가는 나를 ADHD라 손가락질 했지만 누군가는 나를 '열정프로'라 불렀다. 누가 어떻게 보는가는 중요치 않지만 힘 빠지는 일이기도 힘 얻는 일이기도 했다. 흥미가 워낙 많고, 직접 경험을 통해 체득하는 성격 상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좋았다. 그들은 회사일로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푸는 회식자리에서 당골 소재로 내 안부를 물었다. 반려자는 신나하며 안주거리를 제공했다.


"박 프로는 요즘 뭐해?"
"아, 또 제주도 갔어요. 여기 갯 바위 낚시하는 사진 보실래요?"
"형, 박프로 글쓴데요."
"아, 지난 번 아나운서로 TV에 나오더니 이제 작가로 갈아탄거야? 쓰고이데쓰~!"


싫지만은 안은 나는 반려자에게 한마디 한다.

"저기요. 제 얘기 좀 그만하실래요?"
"왜~ 재밌잖아~ 당신같은 캐릭터는 드물단 말이야~"


급기야 그들의 와이프들에게도 소문이 전해지는데...

"어제 남편이 그러는데 박프로님 칭찬이 자자하던데요~ 이번에 글도 쓰신다고 들었어요."
"아.. 왜 자꾸 제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와이프가 자랑스러운 거 아닐까요~ 제 눈엔 엄청 부럽던걸요"


내가 몰랐던 사실 두 가지 알았다.

난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내 인생은 안주거리가 아닌 자랑거리였다.


남들 눈에 난 사서고생, 재밌는 에피소드를 스스로 만드는 인간이었다. 지치지도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

그런 이유라면 사시사철 제철재료 가득담아 맛있게 씹을 수 있는 도전거리를 찾아봐야 겠다.




다빈치형 인재



한 가지 일에 길게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 하정우는 그의 저서 ‘걷는 사람’ 에서 스스로를 ADHD라 소개했다. 그러나 실제 그는 예체능에 다방면으로 능한 사람이다. 피카소를 연상케 하는 꾸미지 않은 미술 작품은 미국 미술관에 전시오퍼가 들어올 정도로 특색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이 무지개 급이다. 추격자, 허삼관, 국가대표, 577프로젝트. 어느 것이 진짜 모습인가? 모두 다이다.


실제로 그는 여러가지 동시에 하는 걸 즐긴다고 했다. 그의 글에서 낯익은 향기가 풍겼다. 낯설지 않았다.

과거 배구선수로 고등학교 때 잠깐 활약했으며, 현재 우쿨렐레, 미술, 시인, 소설가, 에세이스트에 재능이 있으며, 미래 작사 작곡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인간을 과연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는가? 방황하던 중 미술사 서적을 읽다가 무릅을 치고 말았다.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
-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레오나르도 다빈치.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 미술가, 과학자, 기술자, 사상가. 실제로 한 가지 분야가 아닌 다방면에서 골고루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프랑수아 1세가 기거하는 궁 가까이에 위치한 클로 뤼세 성에 머물면서 여러 제자들과 그림, 건축, 철학, 무대 장식 등 다양한 분야에 몰두했다고 한다. 2019년 5월 2일은 다빈치가 잠든 지 5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언제부턴가 '다빈치형 인재'란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이유였다. 얼마전 브런치에 작가로서 글을 집필하고 있다고 동네서점을 오픈한 친구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는 내게 제주도에 '다빈치' 미술관이 생겼으니 가보라고 적극 추천했다. 나는 다빈치형 인재였다.



삶이 글인 여자


이런 내게 있어 유일하게 꾸준히 한 일이 바로 ‘글쓰기’ 였다. 얼마 전에는 대학교 때부터 써온 '시(Poem)'들을 모아 둔 블로그를 탐닉했다. 그 시절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철학을 따랐으며, 무엇을 추구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읽어도 시시하지 않았고, 누추하지 않았다. 그때의 기록이 곧 미래가 되어 현재의 내가 되어 있었다. 기록의 힘이었다. ‘과거의 나를 엮어 현재를 나를 완성하다.’ 조만간 인생 시집이 탄생할 예정이다. 때론 넘어지기도 했고, 훌훌 털고 일어나기도 했으며, 세상과 내가 쌓은 커다란 돌담에 가로막혀 있기도 했다. 누군가 꺼져가는 내면아이를 끄집어 내기도 했다.


누구나 인생에서 나만의 도로표지판을 만들어가는 일로 고민한다.
누군가 자신을 붙잡아 주거나 자신이 붙잡을 무언가를 원한다.
_신현림 작가



내 마음의 도로표지판은 시였다.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나를 안아주었고 나를 붙잡아 주었다.

‘글과 시’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나를 있게 해준 이유이자 삶의 균형을 배우는 스승이었다.


유일하게 글이라는 들판에서 자전거를 타고 마음껏 유영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ADHD라 손가락질했던 다방면의 경험들은 다양한 글밥이 되어 그림이 되고, 시가되고 노래가 되었다. 글 속에 세상이 있었고, 갓지은 밥상이 되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한 끼 식사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그랬듯 내 글을 통해 누군가는 삶의 균형을 익히는 자전거가 되기를 바란다. 육아, 일, 취미 삶의 밸런스를 위해 타고 (난) 저글링에 능한 사람이다. 영혼의 멘토 신현림 작가의 시로 마무리한다.



내 생의 반은

실수와 부끄러움으로 얼룩졌다

꿀이 흐른 길을 잃고

일만 하느라 사랑도 잃고

나는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내 손은 뒤늦게

일으켜세우는 법을 익히고

어두운 몸에, 새 봄을 지피고 있다


혼자여도 쓸쓸하지 않고

함께라면 누구도 부럽지 않게

꿈의 아궁이에 해를 넣고

사랑밥을 끓이고 싶다


- 신혐림 <사랑밥을 끓이며> 중에서




자전거를 못 타는 대신 삶의 균형감각을 타고난 여자




2021년 1월 9일 짓다

2021년 2월 28일 매듭




애정하는 스페인 작가 '에바 알머슨' 작품 <Full Of Flowers> 영감받아 그린 작품

<Fly> 아트푸어링기법, 일상라빛, 2020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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