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이라는 인연의 역습

by 일상라빛

‘사람 일 모른다’는 말이 있다.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의 경우 4가지 케이스가 있다.


1) 추녀작가의 예언


마지막 직장에 입사한 날짜는 2010년 1월 3일.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이다. 회사에 작가가 한 명 탄생했다. H는 그의 첫 책 출판을 기념하여 사내에서 팬 사인회를 열었다. 나는 달려가 그에게 싸인을 받았다. 첫 페이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뭐라고 적었다.




‘뭐야? 지금은 미녀가 아니란 얘기야? 칫!’ 하고 넘겼 더랬다. 그의 첫 번째 책은 내게 그랬다. 당시 '아프니까 청춘이다' 저서가 베스트셀러로 유명하던 시절, '청춘'을 키워드로 비스무리한 제목의 그저 그런. 그 후 그는 북유럽으로 유학을 떠났고 북유럽에 관한 책을 두 권 더 출판했다.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그의 아련한 표지의 책들은 내 서재 한 켠을 굳건히 차지하고 있었다.


두 번째 책은 한 구절 한 구절 빛이 났다. 세 번째 책은 글 솜씨가 더 농익어 나를 흔들었다. 그의 글 몇 줄 혹은 한 페이지가 가끔은 내게 글을 쓰라고 손짓하곤 했다. 어쩌면 그 것이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지금의 작가가 되는 첫 포인트. 2015년 내가 좋아하는 '이철희의 퇴근길입니다'에 게스트로 출연한 그의 목소리는 참 멋있었다.


그 때 H는 작가였고 나는 추녀였다. 적어도 그에게는. 10년 후 지금 H는 여전히 잘나가는 출간 작가고 나는 추녀() 작가가 되었다.


2019년 9월 27일, 곡식을 거둬들이는 가을()에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았다. 아마도 H는 내 미래를 예견했나 보다. 소름.


H의 첫 책에 싸인을 받던 '추녀'는 그의 글을 읽고 '작가의 꿈'을 키웠다. 10년 후 '가을'의 어떤 날 브런치 작가가 되어 그와 같은 위치에 서있다. 그는 선배 작가, 나는 후배 작가가 되어 어깨를 나란히 '할' 예정이다. 적어도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말이다.



2) 출간작가의 악연


10년 전 같은 시기, 같은 회사에서 일 할 때 나는 팀장, R은 인솔요원 이었다. 그 때 난 해외봉사팀장으로 근무했고, 때는 2010년 청소년 해외봉사 파견이 호황을 이룰 시기였다. 흔히 스펙을 쌓기 위해 해외봉사를 떠나는 청년들을 위해 동남아시아로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중고등학생을 비롯 대학생들이 몰렸다.




10~15명 내외의 중고등학생들을 인솔할 리더를 직접 인터뷰하고 뽑았다. 미성년자 신분의 학생들을 11박 12일 동안 해외로 인솔한다는 일은 굉장히 막중한 업무였기에 리더들을 모아 훈련워크샵 교육을 3박4일간 특별히 진행했었다. 그렇게 해서 R은 태국으로 파견을 나갔다. 출국 전 후로 수시로 사무실을 드나들며 영수증을 날랐던 터였다.


사건이 일어난 그 날. 열 댓 명의 인솔요원이 교육을 위해 사무실로 집합했다. 1500명의 봉사자들을 모집, 교육, 파견하는 총괄업무를 진행했던 나는 몸이 열 두개라도 모자랐다. 늦게까지 업무를 처리하느라 리더들을 사무실에 방치해두고 있던 찰나 R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팀장님, 저희 저녁 먹고 하면 안되요?”


무엇이 그리도 예민했는지 나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를 째려봤던 것 같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후의 몇 개월 전, 나는 브런치에서 R을 보았다. 심리상담사, 에세이스트를 주제로 검색하던 중 그가 1순위로 필터링되었고. 브런치를 클릭하는 순간 맙소사! R이 팔짱을 낀 채 베스트셀러 작가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처음엔 긴가 민가 했다. 이름도 잘 생각이 안났다. 열심히 인스타그램을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 그가 맞았다. 아뿔싸.


“그 때 밥을 시켜줄 걸 그랬어……”


시간이 지나도 한참 전의 일이었다. 강산이 한 번 변했을 그 시절의 일을 후회하면 뭘하나 싶었다. 그는 구독자 7~8천명을 거느린 출간 작가가 되어 있었다. 유수의 강연을 포함해 유명 저널의 칼럼도 연재하고 있었다. 그 때의 나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놈의 밥 한끼 때문에! 젠장!


그 때 난 '리더를 뽑는 팀장(갑)'이었고 R은 '대학생리더(을)' 였다. 지금 R은 '출간작가(갑)'가 되었고 난 '그냥 작가(을)'다.


그 앞에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다. 점 점 작아져 ‘점’이 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는 않으리라. 누군가의 백지 위에 ‘점’ 하나라도 새기고 가야했기에. ‘점’ 하나라도 존재해야 했기에. 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점이 될 것이다.



3) 파워블로거의 인연


2014년. 같은 직장에 다닐 시기. 팀장이었던 내게 외부 인터뷰 하나가 들어왔다. 정확히는 실장에게 들어왔지만 나에게 토스를 해준 거였다. 캠퍼스멘토라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국제활동 전문가 한 분을 멘토로 모시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 인터뷰를 계기로 Y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국제활동 전문가가 되기까지의 진로탐색에 관한 질문들이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나'라는 사람에 대한 탐구였다. 내 인생이 '길'이 되고, 내가 살아온 '발자취'가 누군가에게 답이 될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A4 1장 짜리의 질문지는 내 삶을 밝히는 등대와 같았기에 지금도 책장 한켠에 고이 자리하고 있다. 코팅을 해놔야겠다.


그 인터뷰를 시작으로 멘토의 길에 들어섰다. 이 세상 모든 마케팅은 '스토리'에서 시작된다. 질문 하나에 무수히 많이 딸려오는 답안지에 지금 생각해보면 뭐 그리 할말이 많았을까 하지만 내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다는 말에 삶의 페이지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스토리는 하나의 '강의'가 되어 처음으로 10명 내외 멘티들에게 진로강연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3명의 멘티는 나의 평생멘티가 되어 '시트러스'라는 모임으로 8년째 서로에게 향긋한 응원을 선물하고 있다. 그 때는 대학생이었던 친구들이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애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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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10226_100205837.jpg 내 삶의 이유



처음으로 내 삶을 이야기 한 것도, 이야기를 들어준 것도, 만남이 인연으로 이루어 진 것도 '처음'이었다. 그렇게 Y는 나의 첫 멘티가 되었고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마케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13년차 블로거이자 호기심 가득한 마케터의 노트'라는 소개로 꾸준히 블로그 강의를 운영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캠퍼스멘토라는 작은 스타트업 회사에서 꿈을 키웠고, 회사 대표가 아직은 배울게 많다며 챙겨야하는 '신입사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그 회사는 진로기업 1위 타이틀을 거머쥔 선도기업이 되었고, 회사와 함께 Y는 '파워블로거' '인플루언서' 'BMW 차를 홍보하는 마케터'로 꿈과 함께 성장했다.


그 때 난 'JOB 진로멘토'였고, Y는 '마케터를 꿈꾸는 신입사원'이었다. 지금 난 'JOB을 꿈꾸는 경단녀'가 되었고, Y는 블로거, 크몽, 인스타, 유투버 등 팔로워 22만명을 거느린 'SNS의 파워마케터'로 고퀄의 벤츠를 광고하는 사람이 되었다.


클래스가 남다른 넘사벽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술 한잔 기울이는 사이다. 가끔 맛집 광고를 위해 소고기 집을 데려가기도 한다. 곁에 두기 참 이로운 친구다.





점은 작지만 기록을 남긴다. 작은 점들이 모여 인연을 이어주는 경우도 있다.




4) 작은 점들이 모여 만든 인연


W에게서 전화가 왔다. 2월에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친구였다. ‘웬일이지?’ 하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다.


W: 팀장님~ 잘 지내셨죠? 사는게 바빠서 지금에서야 연락을 드리네요.
나: 안 그래도 달력에 결혼식 적어놨어~
W: 다름이 아니라 제 결혼식 사회 좀 부탁드리려구요.
나: 사회?
W: 주례없이 진행하는데 양가 어머님이 축하말씀 해주시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사회도 여성 특집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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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그는 10년 전 그 회사에서 대학생리더를 했던 또 다른 W였다. 이쯤 되면 1, 2, 3번을 ‘그 회사 특집’으로 꾸며야 할 듯싶다. 나의 마지막 회사였던 그 곳에서의 에피소드는 이 거 말고도 무수히 많다. 기대해도 좋다. 나중에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W는 처음부터 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서 간곡히 결혼식 사회를 요청했고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내 결혼식에 와준 의리있는 친구였고, 흔쾌히 수락을 해버렸다.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교 복학 전에 인도로 해외봉사를 지원했고. 그를 간택했던 나는 이후로도 인생상담을 해주며 밥도 술도 사주며 주머니를 털었더랬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인생의 멘토가 되고있다.


그 때의 인연을 꾸준히 점으로 이어왔고 덕분에 그의 결혼식 사회 0순위로 초빙되었다. 그런데... 결혼식 사회는 처음이지 않은가? 그것도 한 쌍의 부부가 백년가약을 맺는 엄숙한 자리에 주례없는 사회라니... 다년간 국제무대에 서며 강의와 PT를 진행했던 (지금은 쓸모 없다 생각했던) 경험치가 드디어 빛을 볼 차례인가? 잠시의 달콤했던 과거 회상을 뒤로하고. 결혼식 무대는 또 다르니 순간 괜히 수락했나 싶었다. 감성적으로 멘트를 날리는 거야 내 전문이긴 하지만 뭐 어떠랴.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 때 W는 '대학생 리더'였고 난 '리더를 뽑는 팀장'이었다. 지금 W는 '직장인'이고 난 그가 챙겨온 설날 선물을 고맙게 받는 '애엄마' 가 되었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 한 때 그들의 멘토였던 이가 지금은 멘티가 되어 그들에게 진로상담을 해야할 판이다. 사람 일 어찌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인생 허투로 살지는 않은 듯 하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뿌듯함으로 잠 못 이루는 새벽에 마침표를 찍어보려 한다. (점)


결혼식은 내일 앞으로 다가왔다. 잘 할 수 있으리라 다짐해본다. 옷 한벌도 샀다. 나의 첫 결혼식 사회를 위해

아자자!!




2021년 1월 30일 짓다

2021년 2월 26일 매듭


인연이란 점과 같다.

인생 헛 살지는 않았구나.

마흔이 되니 결혼식 사회도 보는구나.

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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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담아 점을 찍다보면

그것이 소중한 인연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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