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변도로에서

우리 모두는 미생이다.

by 일상라빛


열심히 달리던 중 IC에 빠졌다. 인생을 바친 일인데 아스라이 안개처럼 스르르 사라지는 느낌. 여기에는 일말의 아쉬움 같은 게 있는 것이다. 제2의 인생은 시작됐고 나는 잘못된 IC로 빠진 것이 아니라 정말 정확한 곳에서 정확한 시점에 내 목적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신나게 음악을 틀고 새로 닦아놓은 잘 빠진 '신'고속도로를 달리면 된다.
-박지아피디 작가



오늘 브런치 이웃 작가님이 오랜 기간 한 솥밥을 먹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됨을 '고속도로 IC '로 비유하였다. 이제 '작가의 서랍' 속 이야기를 꺼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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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난 항상 멋진 사람이었다.

늘 다른 길을 갔고 늘 도전했고 늘 열정 있었다.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왜 그 어려운 길을 가려해?

돈은 안 벌 거야?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냐


그랬다. 누군가의 눈에 난 사서 고생하는 미친 사람이었다. 20대 땐 그런 시선들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선택에 믿음이 있었고 힘들지 않다 생각했다. 30대에 들어서 가던 길을 멈췄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나?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뒤늦게 이유를 알았다.
그들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습니다. 있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목적지를 찍고 길 안내를 누르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최적길(최소 시간) vs 무료도로.


비싸지만 미래가 보장된 최적길을 갈 것이냐
무료지만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무료도로냐



인생에 맞는 길, 틀린 길은 없습니다. 단지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뿐이죠. 인생이 참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냥 길이 다 똑같고 하나밖에 없으면 고민하고 방황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인류 역사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 이가 반드시 있었기에 현존합니다. 어쩌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열매를 따먹은 이후부터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주어진 길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길을 개척한 자는 부러움의 대상이고 나의 길을 가야겠다는 희망을 줍니다. 우리는 그들을 스타트업, 창업, 프리랜서 다양하게 부릅니다. 인생엔 항상 변수가 있기 마련이고 무계획이 계획일 때도 있습니다. 그만큼 예측불허. 토끼와 거북이 경주처럼 빨리 간다고 꼭 결과가 좋은 것만은 아니란 사실을 서른아홉, 마흔 직전에 깨달았습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서른 살에 진로를 찾은 것은 결코 늦은 게 아닙니다.
-이외수 소설가


20대 땐 알 수 없었습니다. 이외수 작가의 그 말이 뜻하는 바를. 그러나 마흔을 앞두고 여전히 진로를 찾아 고민하는 나를 보고서야 무릎을 치고 말았습니다. 아하!


여전히 방황했고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나? 가 아닌
내가 이 길을 왜 가야 하는가?로.


그러자 명쾌해졌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구불구불한 산길이라 하더라도 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 가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반골기질은 나를 괴롭혔고, 사서 고생하는 사람으로 취급당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했던 기질 덕분에 '이상한 아이'로 분류됐습니다. 그 이상한 아이의 인생극장은 제4막으로 나뉩니다.


ㆍ제1막: 친구들은 자격증 학원 다닐 때 난 종로 어학원을 다녔다. 죽기 전 외국 땅 한번 밟아보자는 목표로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웠고 그게 시작이었다. 9년 후 미국 땅을 밟았다. 제1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었다.
ㆍ제2막: 조선시대나 있을법한 고졸과 대졸의 신분 차이에 격분하여 24살에 첫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을 갔다. 그 후 꿈을 찾아 5개 분야 6개 직업을 헤맷다. 말 그대로 산길을 헤쳐 나갔다. 제2의 인생이었다.
ㆍ제3막: 31살에 직장이란 속박을 벗어나 프리랜서로 전향, 7번째 진로를 개척했다. 제3의 인생을 살았다.
ㆍ제4막: 39살. 어쩌면 첫 번째 직업이 되었을지 모를 8번째 직업을 위해 도전하고 있다. 제4의 인생이 다. 시. 시작됐다.



제가 걸어온 수많은 길이 가변도로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배운 이것들을 어떻게 써먹을 수도 없는 애매한 처지가 된 것이죠. 결국은 안정적인 길을 찾아 다시 합류해야 했습니다. 왜인지 그것만은 진짜 실패한 인생 같았습니다. 대학교 때 이력서 한 줄 채우려고 어학연수 갔다 오는 것만큼 구차하고 싫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내가 처한 환경에 의해서, 남이 말하는 '안전빵 인생'을 사는 것 같았거든요. 그 길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 미지수였죠. 아니 불행했습니다. 세상은 때로 가짜인데 진짜라고 합리화할 때가 있습니다. 그걸 바로 보는 해안도 내 몫이죠. 가다 보니 어라? 이 길이 아니었네! 느낄 줄 알아야 하거든요. 멈추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간의 노력이 아까워서 쉽게 놓지를 못합니다. 인생은 결국 '사필귀정'입니다. 놓친 건 반드시 발목을 잡고 옳지 않은 길은 막다르게 마련입니다.


저는 지금 갓길에 깜빡이를 켜고 서 있습니다. 뒤에서 차가 들이 받을 수도 있는 위험상황입니다. 합류 길과 제4의 길. 어느 쪽을 택할지 기로에 서있습니다. 제 나이 서른아홉입니다. 어제부로 마흔이 되었습니다. 고민했습니다.


깜빡이를 끄고 우회전 신호를 켰습니다.
어두운 길 헤드라이트만이 길을 비추고 있습니다.
다시 도전길에 올랐습니다. 왜냐고요?
가짜가 아닌 진짜 제 삶을 살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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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삶은 너의 선택만이 정답이다.
- 김은숙 작가, <도깨비> 중에서



글감이 되고 있는 제 인생은 가변도로가 아니었습니다.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 했던 경험들은 진귀한 소재가 되어 주인공이 되고 있습니다. 그 길을 걷던 나, 살얼음판 위에서 동동겨렸던 나,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적시며 역행하는 나는 한 구절 한 음절 한 단락이 되어 진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가변도로에 깜빡이를 켜고 있다면 말하고 싶다. 포기하지 마세요. 끝까지 가보세요. 그 길 끝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의미하는지는 가봐야지만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이곳, 저곳, 그곳에 산재해 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마지막 퍼즐 조각처럼 어느 순간 기가 막히게 끼워 맞춰지는 '기적의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이때, 저때, 그때 다 제 자리였던 것처럼 빛을 발하는 보상의 시간이 옵니다. 제 글에 마르지 않는 영감을 주듯 제가 걸어온 그 길은 누군가에겐 멋진 도전으로, 누군가에겐 새로운 길을 갈 용기를, 누군가에겐 잊고 있던 꿈을 찾는 에너지를 주고 있었습니다.


이 길이 맞나? 싶었던 의문은 이제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누군가의 인생에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그 질문은 파장을 일으켜 누군가의 삶에 멘토가 되고 롤모델이 되고 있었다는 진실을 오늘에서야 마주했습니다. 그러니 멈추지 마세요, 그게 어떤 길이든. 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 출발하세요. 시작하세요. 지금 문을 여세요.


당신이 살아온 삶은 매 순간마다 의미 있었고
당신이 살아갈 삶도 매 순간마다 이유 있습니다.


이 길을 가야 하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갔을 때 나 스스로가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 길 끝에 무엇이 존재할지,

제 삶에 또 어떤 의미를 줄지 기대가 되거든요.

이 극본의 결말이 제4막으로 끝이 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압니다.


우리 모두는 완생이 아닌 미생을 살고 있습니다.

제가 작가로 도전하고 글을 쓰는 이유.

마흔에 이 길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KakaoTalk_20210210_131534788.jpg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
남들한테 보이는 건 상관없어요.
화려하진 않아도 필요한 일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린 안 보일 수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동기는 스스로 성취하세요.
그게 안되면 버티기 힘들 겁니다.

- <미생>, 14화 중에서






인생을 꿈꾸는 자.

누군가에겐 멋진 사람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에겐 도전이란 이름으로 방황하는 것이다.

경험과 도전을 실패로 보지 않고 과정으로 보는 것.

타인의 '감언이설'과 '좋아요' '구독'에도 묵묵히 제 길을 가는 것. 이 진짜 멋진 사람이란 걸 알았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멋지다고 말한다.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엔 가짜와 진짜가 있다.

이 길 끝에 멋진 사람으로 칭송받고 싶어 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

묵묵히 목표를 향해가다 보니 방향이 생겼고 그 길 끝에 다다른 사람.


난 가짜가 아닌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





2021년 1월 4일 짓고

2021년 2월 10일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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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0년 8월, 영덕 칠보산 일출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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