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맛. 육아도 스포츠정신이 필요하다.

by 일상라빛


육아도 스포츠정신이 필요하다.



“스포츠는 남과 똑 같은 조건을 부여받거나 메달을 따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자기가 맞딱뜨린 상황에서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내느냐가 스포츠의 시작이고 본질입니다. 어떤 코스가 주어지든 내 앞에 가로놓인 장애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그뿐이죠. 그게 스포츠입니다.”

-에트킨슨 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선수, 변상욱 <인생 강하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원> 중에서



독박육아라 신세한탄 삐죽데는 입도, 팔자좋게 혼자 술마시는 그이를 바라보는 매서운 눈도, 까탈스럽다 우는 아이에게 짜증내는 까탈스런 마음도 모두 쉿! 가만히 멈춰 이글을 읽어보자. 상황이 어쨌든 내게 주어진 장애와 한계를 극복하려 최선을 다해보았는가? 육아로 투정인 나에게 필요한 건 지금, 스포츠 정신이다.


침묵의 시간


입을 열지 않는 것만이 침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물론 기분 좋은 침묵도 있다. 묵상에 가까운.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마음이 얼어붙었다. 몸도 꼼짝하기 싫었다. 이유가 있었다. 계기는 영화 ‘Tully(튤리)’를 보고 난 후 였다. 아이 셋을 키우는 루틴한 엄마의 일상을 어둡게 다룬 영화였다. 헝클어진 머리, 뱃살, 웃음기 없는 창백한 얼굴, 자신감을 찾아볼 수 없은 일상과 환경들. 외형적으로는 전혀 닮지 않았다. 쳐진 뱃살도 너저분한 모습도 나에게는 없었다. 그런 모습이 되지 않으려 노력했으니까. 중요한 건 그녀가 자식들과 남편 그리고 자신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도 나와 같았다는 점이다.


변하고 싶은데 노력하지 않고, 환경에 변명하며 하루를 지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변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토익공부를 두달여간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이 영화가 메기장어처럼 내 마음을 흐트려놓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Mirrioring이 된 것 같았다. 보기 싫었던 내 모습을 직면했다. 마음이 아팠다. 덮친 격으로 미세먼지까지 마음을 짙눌렀다. 밝은 빛을 보지 못한 지 3일 째다. 결국 몸살기운으로 병이 나고 말았다. 의사의 말이 맴돈다. ‘비타민 챙겨드세요.’ 2년동안 먹지 않았다. 운동도 하지 않았다. 면역력 결핍이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신호였다. 일단은 몸이 쉴 수 있도록 ‘휴식’을 취했다. 허리가 아팠다. 종일 누워있는 것도 지겨웠다. 그렇다고 움직이기도 싫었다. 무엇이 그토록 내 마음을 붙든 것일까?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냈다.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곧 불만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내가 꿈꾸는 이상향이 따로 있다고 부추겼다.



과연 지금 모습이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이었을까?


매일 아침 아이가 나를 깨우는 것이 싫었다. 짜증이 났다. 더 자고 싶었다. 아이가 자는 시간이 유일한 자유시간이기에 TV, 영화를 보고 잤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아이의 요구와 컨디션을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그것이 어느덧 일상이 되버렸다. 아침에 눈 뜨면 엄마와 놀고싶은 아이의 첫 마음에 엄마의 짜증섞인 말들이 오간 지난 일상이 미안했다. 결국 내 몸과 마음을 컨트롤 못해서 아이에게 감정을 쏟아 부은 것이다. ‘아이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나와 아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아니었다. 만약 3년전으로 돌아간다해도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다하더라도 또한 그 후의 삶은 만족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난 아이를 낳기로 결심함으로써 감당해야 할 것들이 생겼고, 그것들이 버거워 아이만을 키우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싫어졌던 것이다. 싱글 일 때처럼 자유롭게 연애하고 섹스하며 원하는 것을 언제 어디서든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가 그리웠던 것이다. 무엇이든 선택과 책임이 따른다. 기회비용이 생기고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가보지 않은 아쉬움이 생긴다. 그렇다고 되돌아 갈 수 는 없다. 과감히 현재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행복의 시작이다. Here&Now. 영화 말미에도 주인공의 망상에 나온 ‘내면아이’ Tully가 한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당신은 이루었어요. 모두가 바라는 그것이요. 그치만 당신은 지루하다 느끼는 ‘일상’이요. 매일 반복되는 ‘루틴’이 바로 ‘행복’입니다. 매일 샤워하세요.’


‘걷는사람’ 하정우의 저서에서도 같은 말이 나온다. ‘바쁘고 지칠수록 루틴’ 육체피로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내버려두면 어느정도 회복된다. 하지만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되면 무조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아주 작은 변수에도 절망적인 기분이 든다면 몸과 마음이 나에게 ‘전환’과 ‘쉼’을 요구하는 사인이다. 인간은 강한 존재가 아니다. 여러 요인들로 불안정해지기 쉬운 동물이다. 몸을 정신에 맞겨 나락으로 떨어지기보단, 매일 반복되는 루틴에 몸을 맞겨 정신이 따라오게 만드는 방법이 희망있는 해결책이다.


김연아의 ‘트리플 악셀’ 신에 가까운 점프력도 4년을 매일같이 빙상 링크장에서 넘어지는 연습을 통해 이뤄낸 결과물이다. 운동선수처럼 강인한 정신력은 죽어도 하기 싫은 단 하루의 게으름과 실증을 이겨내고 연습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있다. 에트킨슨의 말처럼 이것이 진정 스포츠 정신이다. 매일 꾸준히 반복된 행동을 함으로써 정신과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기분으로 몸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언제 다가와 우리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유혹시킬지 모를 변수들, 외부 환경들에 대비하기 위한 ‘강한정신력’을 만들어 놓는 것이 육아에도 필요하다. 이것이 하루를 잘 보내고, 반복되는 일상, 루틴을 살아가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하기 싫은 마음, 이걸 왜 해야하지라는 마음이 들지 않게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먹고, 걷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일할 수 있도록 습관화시켜야 한다.


꼬물거리는 발고락. 이제 하나, 둘, 셋, 열. 말을 배우기 시작한 딸의 입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펭귄댄스를 추는 앙증맞은 모습을 오래도록 행복한 기억으로 남기려면 변해야했다. 그것만이 살 길이었다. 내가 간과한 일상에 변화를 줄 때였다. 언제 또 부정적 생각이 기어올라오지 않게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고, 공부하며 반복되지만 지루하지 않은 일상을 가꾸어야 겠다. 아이도 엄마도 행복한 일상을. ‘다시는 아이 머리를 흔들며 내 감정의 화를 표출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한계를 극복하는 것. 그것을 위해 오늘도


갓밥(갓지은 밥)+걷기운동+신공(신선한 공기) 흡입+광합성+음악=정신건강증진법


을 행한다.



2018. 6. 27

새벽2시. 러시아 월드컵 예선전 final 독일에 2:0 이기다.




* 2019.1.16 행복샤워

* 스페인 그림작가 '애바알머슨' 그림을 모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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