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맛. 아이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by 일상라빛



엄마도 감정있는 사람이다.



초등학교때의 한 가지 기억이 생생하다. 밥을 먹고 있었다. 원래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는 편이라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버럭 빨리 먹으라는 외침이 들렸다. 엄마는 화난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성난 황소 같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난 밥을 먹고 있었을 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화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 밥을 천천히 먹은 것이 엄마를 화나게 하는구나. 당시엔 그렇게 결론을 냈던 것 같다. 기억을 유추해보면 아마 그때 엄마는 나에게 화를 낸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때문에 화가 났고 감정이 나에게 표출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린 내가 느낀 감정은 '엄마가 나를 싫어한다'였다.


엄마는 내가 정말 싫어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다.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었다. 그걸 알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알콩과 싸우고 새콩에게 화를 내는 나를 보고 깨달았다.



육아는 엄마를 성난 황소로 만든다.

딸도 나처럼 밥을 느리게 먹는다. 식탐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입맛이 까다롭기까지 하다. 늘 밥을 먹는 식탁에서 ‘한번만’을 구걸하게 된다. 두 돌 까지는 해주는 음식을 불평하나 없이 싹 비웠던 아이였다. 그 이후 식탁전쟁이 시작되었다. 자기주도 이유식을 5개월부터 시작한터라 3살쯤이면 혼자 숟가락 들고 먹겠지 하는 나름의 계획과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 허황된 꿈이 되버렸다. 시어머니가 숟가락을 들고 손녀딸을 쫓아다니며 밥을 먹인 이유가 있었다. 굶겨도 봤다. 두 끼는 굶어야 세끼 째는 밥을 잘 먹었다. 기다려도 보았다. 혼자 그 밥을 다 먹기까지 1시간이 넘게 걸렸다. ‘30분’ 식사시간을 지켜도 봤다. 밥을 안 먹는 아이에게는 쥐약이었다. 시간 맞춰 밥상 치우는 것을 오히려 좋아했다. 밥을 안 먹어도 되었으니까. 그만큼 아이의 성장은 멈췄다. 한창 먹고 클 나이에 먹는 것은 엄마를 딸의 노예로 만들었다. 혼자 밥을 먹기까지 이름을 수천 번 불러야 했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아이 입에 숟가락을 넣는 횟수만큼 엄마인 나는 밥을 먹는지 마는지 맛을 제대로 느낄 수조차 없었다. 따뜻했던 밥은 차갑게 식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화’의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calm and cool’도 하루이틀이지. 엄마도 사람이고 감정이 있다. 밥을 먹지 않는 아이를 볼 때면 숟가락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먹기 싫으면 내려가’ 단호히 외쳤고, 아이는 그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며 울음을 터트렸다. 감정이 상해버린 아이는 밥을 먹는 대신 엄마와의 감정싸움을 시작했다. 나를 바라보는 딸의 눈빛엔 그 옛날 내가 보았던 내 엄마의 성난 황소가 비췄다. 엄마는 나를 싫어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눈빛을 읽은 순간 가슴이 내려 앉았다. 딸에게 미안했고 내 엄마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고단하고 지친 삶과 육아는 엄마를 뿔난 황소로 만들었던 것이다. 일하고, 살림하기도 바쁜 엄마의 마음엔 여유롭게 밥을 먹는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엄마 눈에는 그저 말을 안 듣는 딸이었고, 그런 내게 엄마는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딸에게 그런 것처럼.



감정에도 휴지통이 필요하다.


사실 하루를 살다 보면 감정이 해소가 안 될 때가 찾아온다. 순간의 감정이 폭발하여 생긴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득 찬 찻잔에 떨어진 마지막 한방울과 같이 그동안 마음에 쌓아 두었던 감정이 폭발 한 것 뿐이다. 무엇이든 넘치는 건 좋지 않다. 그때 그 때의 감정을 털어버리고 해소하면 좋겠지만 살다 보면 바쁘고 귀찮아서, 감정 소모하기 싫어서 그냥 담아두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쌓인 감정은 건조한 날씨의 나무와 같아서 작은 불씨에도 산 전체가 다 소실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감정에도 휴지통이 필요하다. 내 감정을 휴지에 잘 싸서 버릴 곳을 만드는 것이다. 내 감정은 내가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특히 내 아이에게, 성난 황소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나만의 휴지통을 만드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미술치유적 요법과 행동치유적 요법이다.


01. 미술치유적 요법

1) 마음의 휴지통: 종이에 휴지통 그림을 그리고 버려야 할 감정, 생각들을 적어 넣는다.

2) 그림 일기장: 상처받은 일이나 그날의 잔상을 그림과 글로 표현해본다.


02. 행동치유적 요법

1) 신체운동: 댄스, 축구, 요가, 골프, 집안일 등 정적이거나 동적인 신체 움직임

2) 마음명상: 명상어플이나 오디오 가이드에 따라 눈을 감고 마음에 집중하는 훈련

3) 복식호흡: 들숨과 날숨을 통해 몸의 공기를 순환시키고 안 좋은 생각들을 함께 뱉어내는 훈련


상담심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치료적 수단이 미술치료이다. 모래놀이 등 놀이가 가미된 치료적 요법들도 많이 있는데 말로 뱉어내는 언어적 치료보다는 내담자에게 부담이 적고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림은 무의식의 내면을 핵심적이고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길게 표현하는 말보다는 알아차리기 쉽다. 특히 유아기나 청소년들에게 경계를 풀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한 초기상담으로 활용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대표적으로 HTP (집-나무-사람) 투사 검사가 그것이다.


마음이 아픈 많은 어린이들,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말로나 행동으로는 자신이 겪고 있는 심리적 어려움과 갈등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을 통해서는 너무나 생생하게 자기 내면의 실제 모습을 잘 보여 주는 걸 접할 때 감탄하곤 합니다. _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 신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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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1446617263375.jpeg 마음의 휴지통과 보물상자


이 밖에도 나만의 감정 휴지통을 만드는 수단이나 방법은 다양하다. 일기장, 운동, 마음명상 어떤 것도 좋다. 그 행위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고 묵은 감정을 탈탈 털어버림으로써 긍정적인 생각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는 원리는 같다. 하루의 일과 중 이어도 좋고, 하루의 끝 이어도 좋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통해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분류하여 좋은 감정은 유지하고 나쁜 감정은 뱉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감정을 항상 일정하고 평온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을 '감정 버리기'라 칭하겠다.



감정 신호등이 켜지면 라벨링하세요.


‘감정 버리기’가 처음부터 하기 어렵다면 하루의 일과 중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들 때마다 ‘색 라벨링’을 하는 것도 추천한다.


- 몹시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죽고 싶다 : 치료/치유가 필요한 빨간색, 위험한 감정
- 밉다/ 질투난다 혹은 비아냥거린다/ 비난한다 : 잠시 멈춤이 필요한 주황색, 안 좋은 감정
- 보고싶다/ 설렌다 혹은 뛸듯이 기쁘다/ 뽀뽀.키스.사랑 : 유지가 필요한 초록색, 좋은 감정
- 잘 모르겠다 : 생각이나 이유가 필요한 노란색, 보류 감정


위와 같이 하루에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행동에 <빨, 주, 초, 노> 색깔 라벨링을 하다 보면 주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불명확했던 감정들이 보다 명확해지는 '감정의 인지'가 생기면서 알아차리는 훈련이 된다. 이로써 감정이 보내는 신호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아 빨간색 신호다. 잠시 쉼이 필요하다’고 재빠르게 감정인지를 할 수 있게 되면서 타인에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나만의 휴지통으로 빨간색 감정을 잘 싸서 버리는 연습도 필요하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어떤 식이든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코로나로 인해 직접적인 관계는 줄어들었지만, 매일 접하는 택배상자와 배달음식도 살펴보면 음식점과 나를 잇는 배달원과 관계가 존재한다.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가족과 한 공간에서 부딪힐 일도 많아졌다. 사회적인 직장동료보다는 가족과 관계 맺을 일이 많아 짐에 따라 가족 간의 갈등과 불화도 늘어나고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내 감정을 마음대로 표현할 권리는 없다. 오히려 지속적인 관계유지를 위해서 더욱 신경 쓰고 존중해야 할 사람이다. 특히, 말을 못하는 영유아나 절대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자녀에게는 더욱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부모가 한 행동을 보고 먹고 자라 사회에서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으로 자란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자 행동의 스폰지다.


한번은 딸아이가 인형놀이를 하다가 한 말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인형들이 아기이고 딸이 엄마이다. 인형들에게 우유를 주고 재워주고 돌본다. 딸이 말한다.


“아이씨, 넌 왜 자꾸 엄마옆으로 오니, 정말 지겨워 죽겠어.”


순간 직감적으로 반응한다. 몸의 털이 쭈뼛 섰다. 사실 전부 내가 한 말이었다. 정확히 딸에게 한 말이었다. 아이는 엄마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신생아때부터 수면교육을 실행 했지만 실패했다. 덕분에 지금은 안방 침대에 남편이 아닌 딸과 내가 있고 각방신세가 되었다. 부부관계는 당연히 멀어졌고 잘 놀다가 잠자리에 들 때면 엄마 껌딱지가 되었다. 신생아 때부터 엄마의 온기를 찾던 딸은 지금도 자다가 엄마와 살이 조금이라도 맞닿아 있어야 하는 습성이 있다. 넓은 침대임에도 꼭 내 옆으로 오는 바람에 침대에서 떨어지기 일보직전까지 달라 붙어있다. 상황이 2년째 지속되니 수면의 질은 밑바닥까지 하락했고, 급기야 어깨통증과 목에 담이 왔다.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되었다. 그러면 안되었지만 내 수면시간을 아이 때문에 보장받지 못한다는 '화와 짜증'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내 뱉었다. 따로도 자봤다. 어김없이 새벽이 되면 내가 자고 있는 방으로 찾아와 안겼다.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아이에게 무한한 스킨십과 사랑의 언어를 보내주라고 육아서는 말한다. 그 방법도 써봤다. 지속가능한 방법은 아니었기에 나만의 해결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비록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화를 내는 것은 부모로서도 자신으로서도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 가족 모두에게 해가 되는 질 나쁜 표현이었다. 그래서 표현방식을 바꿔 보기로 했다.



'나' 대화법을 통한 행동수정

“새콩이가 잠 잘 때 자꾸 엄마 옆으로 와서 엄마가 불편하네.”
“새콩이가 밥을 안 먹어서 엄마가 속상하네.”
“새콩이가 밤사이 쉬를 해서 엄마가 힘이 드네.”


네가 (행동) 해서 내가 (감정) 하네. 사실 이 대화법은 부모교육에서 많이 쓰는 대화법이다. 관계지향적인 한국인에게 특히 필요한 고급스러운 감정 표현법이라 할 수 있다. 타인으로부터 느끼는 감정은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나로 인한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더 화가 나고 감정이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면 오해를 살 수 있고, 마치 타인때문에 생긴 감정인데 표출하면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될 수 있으므로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런 감정이 생겨서 내가 이렇다는 나이스한 표현법을 통해 상대에게는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그로 인해 생긴 나의 감정에 미안한 마음이 들게끔 하는 것이다.


사실 인지력과 통찰있는 어른에게는 꽤 효과적이다. 하지만 말을 잘 못하고 아직 자기중심적인 영유아기 아이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표현법일 수 밖에 없다. 설사, '나 대화법'으로 표현을 한다치더라도 처음에는 아이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한다. 그렇다 보니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과연 이렇게 애기해서 아이에게 변화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이 것 하나는 분명하다. 엄마가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있구나. 하고 아이가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해서 엄마가 힘이 들구나. 그럼 내가 밥을 잘 먹으면 엄마가 속상하지 않겠네? 밥을 잘 먹어야겠다. 사고의 논리를 전환하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아이의 잘못을 올바르게 유도하는 ‘행동수정’이 일어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뭐가 잘못된 건지 잘 모른다. 자기성찰과 행동인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부모는 '감정의 잘못'이 아닌 '잘못된 행동'에 대한 훈육을 해야한다. ‘엄마가 화를 내는 것’ ‘나를 미워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표현법’이 중요하다.


자기 전 양치하기, 쉬하기 의식
과자와 과일은 밥 먹고 나서 규칙
목욕 후 물놀이 장난감은 스스로 정리하기
등원 전에 손 씻고, 밥 먹고, 양치하고, 옷 입기


2년간 ‘나 표현법’을 통해 훈육하고 교육한 결과, 위의 4가지 행동수정을 이루는 성과를 거두었다. 화내지 않아요. 때리지 않아요.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물론 4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행동수정을 위한 대화와 훈육은 계속되고 있다. 아직 훈련중이다. 오늘도 하원 길에 친구와 함께 놀겠다고 때 쓰는 아이를 그저 묵묵히 바라보았다. 아이가 한번 때를 쓰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말린다는 것을 부모는 잘 알고 있다. 그럴 땐 그냥 무시한다. 울면서 안아달라고 소리쳐도 무시한다. ‘다 울면 그 때 얘기해요. 감정 스스로 정리하면 안아줄 거 에요.’ 사실 3~4년째까지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아이에게 훈련이 되고 있는 만큼 나에게도 견딜 수 있는 마음근육이 생겼다. 힘든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는 횟수와 짜증내는 횟수는 확연히 줄었다. 5세가 되고 유치원에 들어간 이후로는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대부분의 엄마들이 말한다. '저도 그렇게 하는데요. 애가 울면 참을 수가 없어요.'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난 후가 문제다. 잘 참다가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화를 낸 자신에게 죄책감과 분노감이 더욱 끌어오르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울음소리를 견디는 부모의 연습이다. 울음을 단지 소음으로 생각하지 않는 마음, 짜증을 짜증으로 받지 않는 마음, 몇 시간이고 아이가 울다 지칠때까지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가야 한다. 듣기 싫어서, 매번 참다가 결국에는 폭발하는,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는 자신의 감정과 과거 어린시절의 아픔을 돌아봐야 한다.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매번 성공할 수 없다. 참는 횟수를 늘여가든, 참는 시간을 늘려가든 포기하지 않는 마음, 행동이 변화될거라는 아이에 대한 믿음, 될 때까지 아이를 훈육하고 부모가 훈련하는 마음자세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필요하다.



엄마 다 울었어요. 그 한마디.

끝날 것 같지 않던 감정싸움이 어느 날 어느 순간 별안간에 멈추기 시작했다. ‘엄마 다 울었어요’ 방문을 노크하며 울먹이며 말하는 그 한 문장을 듣는 순간 '되었구나' 안도했다. 자신도 울고싶지 않은데, 울음이 계속난다며 힘겹게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울음을 그치려 아이도 노력하는구나. 그것만으로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 날 아침에는 옷을 입고 나왔는데 조용해서 봤더니 아침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양치 가운을 입고 혼자 양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를 보더니 씨익- 웃기까지 했다. 저녁에는 ‘이제 나 언니지?’ 머리를 감기 위해 얼굴을 뒤로 젖히면서 물어보는 것이다. 머리감을 때 그렇게 울며불며 곤혹을 치뤘던 시절이 언제 였나 싶을 정도로 감회가 새로웠다. ‘엄마가 힘들지 않게 내가 스스로 하는거야. 엄마 이제 안 힘들어?’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샤워하는 아이를 보며 어찌나 고맙고 감격스럽던지 눈물이 다 날 뻔했다. 이녀석, 진심이었다. 우리 딸, 많이 컸구나. 몸이 자란만큼 마음도 자랐구나. 참고 기다려준 보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그 존재로서 존중 받아야한다. 누구의 ‘감정받이’도 아니며 ‘감정 쓰레기통’도 아니다. 오늘도 나와 아이는 따로 또 같이 감정 버리기 연습을 하고 있다. 물론 매일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매일 평화로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열에 두 번 감정조절에 실패할 지라도 열에 세 번은 나는 아이에게, 아이는 나에게 화풀이를 할지라도 나머지 일곱, 여덟 번의 감정조절 연습에 의미가 있음을 알고 있다. 아이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는 습관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친구와 놀고 싶더라도, 엄마가 안된다고 했을지라도, 거절을 당했을지라도 화가 나는 감정을 그대로 엄마에게 울고 불고 표출하는 아이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나 또한 아이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녁 9시, 아이가 잠든 시간 요가매트를 깔고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며 명상음악을 듣고 있다. 하루 일과를 정리해보며 날숨에 미움과 짜증의 감정을 내보내고 들숨에 기쁨과 사랑의 감정을 채우는 중이다. 아이에게 화내는 엄마도, 아이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닌 엄마로 스스로의 감정을 돌보고 해소하는 ‘나’로서 발전하기 위해 오늘도 엄마는 노력한다. 그렇게 부모가 되어간다.





2020년 12월 22일

CALM and COOL 한 엄마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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