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맛. 냉탕과 온탕 사이

by 일상라빛


냉탕과 온탕 사이


두 가지 고민에 사로잡혔다.

하나,
일이 너무 하고 싶다. 그러나 상황이 기다려야 한다.
둘,
대학원과 동시에 육아를 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엇이 되려 하는가?


몇일 동안 머릿속을 맴돌며 답을 찾지 못한 두 가지 물음과 두가지 걱정. 쉽게 얻어질 수 있는 답이 아니었다. 어디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가? 막막했다. 지금 인생의 중요한 길목에 서있다. 아이가 잠들기까지 어김없이 옆에 누워있다. 입술을 잘근잘근 물며 생각에 잠겼다. 새벽 1시. 열대야 무더위 속, 한 줄기 바람에 의존해 자야하는 것인가? 열어 둔 창문 틈으로 함성이 들려온다. 아, 오늘이 독일 전 있는 날이구나. 연이어 터지는 함성소리에 급박함이 전해진다. 잠시 고민 중이다.


Tv를 틀까? 말까?


때마침 아이도 뒤척거린다. 결국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와 tv를 켰다. 후반 25분. 경기는 독일 VS 한국. 두 국가가 모두 안풀리는 경기다. 손흥민의 슛은 몇번이고 골대를 빗나가고 상대편도 아슬아슬하게 골이 안들어가긴 매한가지다. 후반 44분. 경기종료 임박을 앞두고 한국의 코너킥 기회가 주어졌다. 웬지모를 두근거림. 한국에 운이 남아있다면 한 골만 들어기길… 기도했다. 잠시 후 숨죽임 1초, 2초, 3초, 4초, 5초. 골~인! 드디어 골인이었다. 그런데 심판의 업사이드 판정! VAR판독을 해야한다. '이건 분명 대한민국 골이 맞아요. 만약 VAR이 이걸 못밝혀내면 앞으로 축구경기에 VAR 쓰면 안됩니다!' 피튀기며 열을 올려 중계하는 전 국가대표 선수 안정환의 사이다 발언에 잠시 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대한민국 골로 인정하는 휘슬이 울리고 이쯤에서 방방뛰며 함성~ 소리 질러~!!


끝날때까지는 끝난게 아니라는 스포츠 경기답다. 추가시간 9분이 주어졌다. 독일 진영엔 골키퍼도 라운드에 나와있을 만큼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 모습이다. 그런데 골이 골키퍼의 발에서 손흥민이 가로챘다. ‘지금 골대엔 골키퍼가 없어요. 열려있습니다!’ 중계가 끝나기 무섭게 골대로 돌진, 여유있게 골대 바로 왼쪽 앞에서 슈~웃. 골인!! 진기명기, 월드컵 경기에서 한번 볼까 말까한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결과는 2:0. 대한민국의 승리였다. 2014 월드컵 트로피를 거머쥔 독일에 통쾌한 완승을 거뒀다. 독일은 초유 예선전 탈락의 사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관중의 표정은 그야말로 망연자실이었다. 한국도 아쉽게 16강 진출은 못했지만, 주장 기성용 멕시코 전 부상투혼, 손흥민에게 주장 완장을 건네 준 상황에서도 멋진 승부를 보여주었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은 저마다 경기를 뛴 마지막 위치에서 주저앉아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다. 감동이 벅차올랐다. 차두리가 코치로서 선두들을 격려하고 모두 하나의 원으로 어깨동무하며 마지막 파이팅을 외친다. 이영표 해설위원도 울멱였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마지막까지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최선을 다한 스포츠 정신에 박수를 보냈다.


가슴뛰는 마음은 쉽사리 진정이 되질 않았다. 아이는 다시 꿈나라로, 옆에 누워있던 나는 앞의 두 가지 질문을 다시 읖조리고 있다. 답이 안나온다. 휴. 그래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책을 집어들었다. 펼치는 순간 눈에 들어온 문구가 마음을 적셨다.


‘자기 몸을 믿으십시오. 우리의 몸은 놀랍습니다. 마음이 동하면 실천하고, 실천은 언제나 몸으로! 몸을 구체적으로 움직이십시오. 그러면 구체적인 답이 나옵니다. 영혼이 굶주렸다면 몸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해보세요. 해보면 압니다.’_변상욱, 인생강하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 중에서


일단 시작해보자!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럼 그 다음 갈 길이 무엇인지, 방향을 알려주겠지. 시작이 반. 일단 몸으로 움직여 보는거야. 부딪혀보자. 고고!



‘경험’의 스펙트럼

아인슈타인: 우리의 이론은 경험을 표현하기엔 너무나 빈약해.
닐스보어: 그게 아닙니다. 경험은 우리들의 이론에 비해서 너무나 풍요로운 거예요.

- 두 물리학자의 논쟁에서 바라본 ‘경험’의 스펙트럼


육아의 경험은 풍요로움 그 자체다. 예전에는 결혼을 해야만 상투를 틀어올릴 수 있고, 아이를 낳아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었다. 진정 맞는 말이고 이해되는 문장이다. 분명 고통스럽고 힘든일이지만 나를 살 찌우고 성장시키는 일임은 확실하다. 매일 육아를 비롯해서 떠오르는 영감이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영혼을 풍요롭고 춤추게 하는 일이다. 해리포터 작가도 반고흐도 힘든 시기의 작품이 위대한 탄생으로 이어진 것처럼 시련과 고난 속 경험에서 진정 글 쓰는 펜의 놀림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사람은 배움을 통해서 늙는 것이지 그저 나이 먹는 걸로 늙으면 안 되는 법이야!


그래, 내가 또래보다 철이 일찍 든 것도, 꿈을 향해 갈망하는 이유도, 사람을 귀이 여기고 혜안이 높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것도, 끊임없이 공부하며 마음 수양하는 이유도 모두 삶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평범하다고 보기엔 너무나 많은 직업적 경험들을 접했고, 그 속에서 부딪히고, 까이고, 넘어지고, 피흘리며 배운 인간관계와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 그 속에는 배움이 있었고 이를 통해 몸도 마음도 한 단계 성장했다. 육아의 이 경험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이 또한 배우며 성장해보리라.


경험은 배움을

배움은 성장을

성장은 늙음을

늙음은 혜안을

만든다.



2018.6.27 새벽3시반.

러시아 월드컵 final 예선전 독일에 2:0 이기다.




6개월 후 해답을 찾았다.


첫째,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것이라면 즐기자. 내가 언제 또 이렇게 오랫동안 돈 걱정없이 일, 관계, 스트레스 안 받으며 아이에게 전념할 수 있겠는가? 급히 먹은 밥이 체한다고 ‘지치지 않을 느긋한 열정’을 키우자. 하루하루 그 열정을 먹으며 때가 왔을 때 쉬지 않고 완주할 수 있는 힘을 기르자. 지금은 열정을 비축할 시간이다. 꼭 다시 시작할 그 날을 위해서!


둘째, 돌이켜보면 직장 다닐 때 일복이 많기로 소문났다. 동시에 3~4개 프로젝트를 거뜬히 소화해낼 때 오히려 칼퇴 후 여유가 있는 저녁을 보냈다. 머리로는 늘 생각과 계획으로 바빴지만 덕분에 두 발은 여유가 있었다. 오히려 여유가 넘치는 지금은 게으름뱅이 베짱이가 되있지 않는가?


성공에 필요한 두 가지. 잘 짜여진 계획과 빠듯한 시간이라고 했다. _변상욱 기자 <우리 이렇게 살자>


그래, 나에겐 5년 계획이 있고, 곧 바쁠 예정이다. 아이를 안고 하이힐을 신으며 당당히 일을 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공부하고 아이 키우면 된다.


2019.1.8




냉탕과 온탕 사이 그 어디쯤의 나를 사랑하고 즐기자!


Flower for me.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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