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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May 04. 2024

울어주기를 바랐다.



꿈이 있었다. 그래, 누군가 나를 통해 감동받아 눈물 흘리기를 바랐던 그런 어린 시절의 꿈이 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방에 책 읽기를 좋아했고, 초등학생 때는 주말에 아예 서재방에 틀어박혀 밤샘을 하며 이 책, 저 책을 뽑아 읽곤 했다. 물론 고학년 때는 만화책도 더러 섞였다. 나는 늘 활자 속을 유영하며 상상하기를 즐겼다. 활자들은 늘 머릿속에서 화의 장면으로 변환되곤 했다.


10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 대구의 지하철 역에서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이 일으키는 세찬 바람을 맞으며 "작가가 되겠다!"라고 결심했다. 그 결심으로부터 20년이 지났을 때 나는 이미 브런치 작가였고, 지금은 세상에 내 책을 내어놓은 출간 작가가 되었다.


작가라는 꿈은 언제나 내 삶의 토양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토양에 다른 꿈들도 심어두었다.

살아가며 때로는 '작가'라는 꿈이 너무도 멀게 느졌다. 감히 꾸어서는 안 될 꿈처럼 느껴지는 날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늘 마음에 뜨거운 꿈을 문장 하나로 간직했다. '앞으로 살아가며 반드시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눈물 흘리게 할 수 있는 문장을 써내고 싶다.'

 



그럭저럭 글을 잘 쓰는 학생이긴 했다. 놀라울 정도의 재능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러나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작문 실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 1학년때는 장원이 없는 교내 백일장의 차상, 2학년때는 장원을 받았다. 우리 학교 국어과 선생님들은 심사를 허투루 하지 않으셔서, 1학년때는 시인인 L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 말씀하셨다.

"네가 이번 백일장 산문부에서 가장 좋은 글을 써서 1등이다. 하지만 장원감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장원이 없는 차상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1학년 학생이 이렇게 1등을 해서 선배들이 자존심이 꽤나 상할 거야? 앞으로 더 열심히 써서, 내년에는 이견 없는 장원이 되어보자!"

나는 정말 이듬해에 이견 없는 장원이 되었다.


교내 백일장 때, 국어과 선생님들이 엄선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는 주어진 시제를 보고, 떠오르는 단편적 기억들을 토대로 시제어 하나를 택한다. 음악에 흠뻑 젖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눈물이 뚝뚝 흘렀다. 나중에는 눈물이 너무 많이 흘러서 얼굴을 감추고 글을 썼다. 그랬던 해 바로 장원을 받았. 눈이 퉁퉁 부을 만큼 울면서 글을 썼다. 그리고 내가 울면서 글을 썼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친구들마다 "정연이 글 쓰면서 울었다?"하고 알은척을 했다. 나중에는 정연이가 글 쓰면서 대성통곡을 했다더라, 정연이가 영감(?)을 받았으니 이번에도 1등일 거라는 둥의 이야기가 나왔다. 참고로, 절대 대성통곡은 하지 않았는데 소문이란 참으로 무섭다.


그리고 백일장 장원으로 뽑힌 후, 교내 신문에 나의 장원급제작이 실렸고 많은 친구들이 나를 만나면 눈물을 글썽거렸다. 내 손을 꼭 잡으며 글을 읽다가 울었다, 감동했다는 말을 해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당시 우리 학년 학생 숫자가 580명 정도 되었고, 나를 모르는 학우가 없었으니 장원급제작에 대한 칭찬을 정말 많이도 들었다.


그때 작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고작 얼마 되지 않는 분량의 산문을 쓰면서도 나는 가슴으로 서럽게 울었다. 대성통곡은 하지 않았지만, 백일장이 진행되는 시간 내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울었더니 내 글의 독자가 울어주었다. 타인을 감동받아 울게 만들려면, 작가는 몇 곱절의 눈물을 흘려야 함을 알았다.




솔직히 말하면, 작가가 될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 혼자서 울며 글을 써 왔다. 하도 눈물을 흘려서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면서 글을 쓰면서도 늘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세웠다. 가끔은 서럽고 힘들었던 날들이 떠올라 무언가를 잃은 사람처럼 눈물을 쏟아내며 글을 쓰기도 하였으나, 나는 어느새 울지 않게 되었다. 눈물을 흘리며 써낸 글들을 모아 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주, 독자인 윤 여사님이 투석하는 내 침대로 나를 찾아왔다.  여사님은 평소에 무표정한 분이다.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는 그녀를 보고, 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써내고 싶다는 오랜 꿈이 이루어졌음을 감했다.

말씀이 없는 윤여사님이 눈물을 흘리며 를 향해 입을 뻐끔거렸다. 나는 갈 곳 읽은 그녀의 손을 먼저 꼭 잡아드렸다.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써? 읽고 너무너무 감동을 받아서..."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말줄임표 속에 들어있는 그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눈물 흘렸지만, 나는 그녀에게 감사하며, 속으로 미소 지었다.


출간 전에 바라는 것이 하나 있었다면, 내가 유명하지 않으니 이 책이 많이 팔리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누군가의 냄비받침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 보태,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 욕심은 지금도 유효하다. 계속해서 그 욕심을 부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또다시 눈물을 쏟아내고 마음을 쥐어짜며 글을 써내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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