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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리씨 Apr 07. 2020

1화_소개팅을 하기까지

첫 마주침은 언제나 설렌다"고 누가 말했던가.







남편과 내가 처음 마주쳤던 건 2017년 10월 초경의 일.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고 남편은 내가 내릴 층에서, 내가 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여느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슬로모션의 장면이 그대로 연출된다. 내리려는 나와 타려는 남편의 눈 마주침. 남편은 어땠을지 모르나 '그 사람에게서 빛이 났다, 첫눈에 반했다'와 같은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을 뿐.


나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남편은 나를 알고 있었던지 어설프게 오른팔을 직각으로 세워 뻣뻣한 모양으로 "안녕!!"이라 한다. 그냥 지나치려 했던 나를 무색하게 만들었던 그 "안녕!!"은 나로 하여금 뻣뻣한 모습의 "안녕하세요..."를 뱉어내게 했고, 눈을 피해 남편을 지나쳤던 나의 행동이 무안했던지 남편은 팔을 직각으로 한 상태에서 어깨를 아래 위로 어색하게 움직이며 "허허허"하고 웃었다.


남편 옆에는 중석(가명)이라 이름하는 나와 친한 남자 동기가 있었는데 남편은 무엇이 그리 쑥스러웠는지 중석이 품에 안겨 이상하게 웃었던 기억이다.

'왜 초면에 반말이야, 이상한 남자네...'






언제나 어디서나 그렇듯 좀 괜찮은 뉴 페이스가 나타나면 각종 루머가 돌기 시작한다. 당시의 나는 자처했던 아싸(아웃사이더)였기 때문에 돌고 도는 소문에는 일절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알게 된다 하더라도 시간적으로 극히 더뎠었다. 그랬던 나 또한 지나가며 들을 수 있었던 정보들이니 아마도 당시에 남편이 굉장히 핫했던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름은 준우(가명), 서울에서 대기업 본사에 다니다 구미로 발령 나 내려오게 된 포항 청년. 포항에서 명문고를 졸업한 후 대학생 때부터 서울 살이를 시작했으며, 대학원 졸업과 취직을 모두 경기도에서 했던 터라 서울말에 능숙하고 다정한 데다 젠틀하다 했다. 운동을 해 몸이 좋고 키가 크며, 잘 생겨 인기가 많단다.

'아, 그때 그 사람이...? 에이, 아니겠지'






- 잘 지내? 소개팅할래?

10월 중순 즈음에 중석이에게서 문자가 한 통 날아왔다.

- 소개팅? 누구랑?

- 그때 마주쳤던 준우형 기억나?

- 아, 그분... 미안한데 거절해도 되는 거니?

- 아니 그럼 곤란한데

- 뭐야 ㅋㅋㅋ

- 부담스러우면 나랑 같이 세 명이서 차 한 잔 하며 자연스럽게 만나봐도 좋을 것 같은데

- ㅋㅋㅋ 굳이 네가 애써서 그럴 것 까지야~ 생각은 해볼게


생각해본다 했지만 이것은 내 기준 명백한 거절이었다. 당시의 나는 몹시 바빴었기 때문에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을뿐더러 무엇보다 같은 건물에 있는 사람과, 가뜩이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분과 소개팅을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한 날은, 설거지 봉사에 참여했는데 같이 봉사해주어 고맙다고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실,,,,, 소개팅을 안 해야겠다 다시 한번 마음먹게 된 결정적 계기가 이 문자 때문이다. 당시 나는 이모티콘을 많이 쓰는 것도 안 좋아했고, 말 끝마다 이응'ㅇ'(~하궁, ~했당 등의 것)을 붙이는 사람을 혐오했던 때였는데 하필 이 남자는 그 두 가지를 다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소개팅 얘기가 오가는 중에 나눈 첫 문자에서... 내 번호는 어떻게 안 것인지 여러모로 불쾌했던 기억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날 봉사에 참여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남편은 고마웠다는 문자를 돌렸다 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 남자의 무수한 이응들과 이모티콘들은 훗날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서 (지금까지도) 애교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이제는 이모티콘이 없으면 되려 무뚝뚝해 보여 싫어하게 된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보겠다 한 후에도 몇 주간 답이 없자 중석이에게서 11월 중순경에 다시 연락이 왔다.

- 소개팅 생각 좀 해봤어?

- 미안한데 나는 그 소개팅 안 하고 싶어~

- 정말 좋은 형이야, 같이 일해보니 듬직하고 멋있어

- 다른 사람 한 번 찾아봐 난 괜찮아

- 그래도 그냥 한번 만나나 볼래?


이상하게 중석이는 귀찮을 정도로 연락이 왔다. 남편과 연애를 하게 되면서 중석이가 왜 이토록 나를 귀찮게 했는지 뒷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ㅡ남편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중에 중석이와 내가 서로 친구 사이인 걸 알게 되었고 기회라 생각했던 남편이 중석이에게 중매를 서달라 적잖게 찔러댔던 모양이었다. 앞에서도 밝힌 바 당시의 나는 이 구역의 유명한 아싸였기 때문에, 남편과 내가 공통으로 친한 사람이 적었던 이때에 중석이는 남편에게 기회와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한쪽에서는 계속 찌르지 다른 쪽에서는 거절하지 중간에서 적잖게 땀을 뺐을 것 같아 이 얘길 듣고 중석이에게 괜히 미안해졌던 기억이다.


결국 중석이에게 "그래 알겠어, 한 번 만나볼게 대신 소문나는 것 싫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로 해줘."라 하고 남편과 나는 2017년 11월 27일에 소개팅으로 첫 만남을 가지게 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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