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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Apr 14. 2023

넓은 빈 벽이 가지고 싶었다.

청년의 자격으로 입주한 작업실

넓은 빈 벽이 가지고 싶었다. 영감을 주는 이미지와 내가 디자인한 로고와 서체를 한눈에 보이도록 붙일 수 있는 흰 벽을 갈망했다. 


부모님과 삼 남매, 다섯 식구가 엉켜 사는 비좁은 집의 모든 벽은 옷장과 책장, 수납장에 가려졌고 수납공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바닥에 세우는 가구들로 모자라 벽에 걸 수 있는 건 다 걸었다. 벽걸이 선반과 행거가 높은 벽에 머리 위로 달렸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집 안의 모든 벽은 살림살이로 빼곡히 채워졌고 난 약간의 틈이 보이면 예쁜 출력물을 붙였다. 책장의 단과 단 사이 프레임이 나의 빈 벽이 되어주었다. 5cm의 프레임에 일러스트 엽서나 스티커, 좋아하는 카페 명함을 붙였다. 이 모습이 마치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사이에 핀 민들레 같았다. 책장 틈에 나의 꿈과 위로가 빼꼼히 피었다.


지금의 작업실을 만나기 전, 강남의 공유 오피스에 지하철로 편도 40분 출퇴근을 사서 했다. “다움웍스 사무실 위치가 어디예요?”, “강남이요” 이 얼마나 이상적인 대화인가. 디자인 스튜디오란 자고로 있어 보여야 하는 법. 서울의 중심, 자본의 중심, 강남에 가자. 강남에서 일하면 안 되는 일도 잘 되고, 없던 야망이 저절로 생겨날 것 같았다. 


강남 공유 오피스를 계약한 결정적인 이유는 벽이 있는 자리여서다.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단체 방의 지정석을 사용했는데 벽을 맞닿은 코너 자리가 딱 하나가 비어있었다. 책상 정면과 좌측이 흰 벽에 맞닿은 구석 자리였다. 그 벽이 내 방의 빈 벽보다 훨씬 넓었다. 다른 좌석은 책상과 책상 사이 가운데 껴서 사람에게 사방으로 노출됐다. 내가 찾던 벽이 드디어 나를 찾아왔구나. 피곤할 때는 어깨를 벽에 기대 쉴 수 있고, 스케줄표와 참고 자료, 열정을 북돋는 글귀를 붙일 수 있는 벽이 눈앞에 나타났다.

강남 공유오피스 내 자리. 벽이 맞닿은 코너 자리였다.

공유 오피스란 모르는 사람과 인사하고 대화하며 동료가 되는 네트워크의 장을 지향하지만 내겐 아니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 걸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벽과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일했다. ‘공유’ 오피스인가 아니라 공유 ‘오피스’인 게 중요했다. 가진 것이 얼마 없고 집에서 일하기에는 답답하니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최선책이 공유 오피스였다. 누군가 말을 걸어 주기를 은근히 바랐지만 정말 인사할까봐 겁이 나던 군중 속의 한 사람이었다.


옆방은 한 스타트업 회사가 통째로 사용했다. 방음이 잘되지 않는 얇은 벽 너머로 그들이 회의하고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요목 조목 논리적이고 추진력 있는 대화였다. 공유 오피스는 바쁜 움직임과 소리들로 가득해 덩달아 나도 일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역시 강남은 다르다, 일하는 사람들은 말도 잘하네, 역시 달라. 여러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유 오피스의 바이브가 잠자던 나의 야망을 깨웠다. 온갖 외주를 다 받으며 힘차게 일을 했다.

어떤 사실은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음에도 야망에 눈이 멀어 스스로를 속이며 사실을 모른척했을 수도 있다. 


강남 공유 오피스에서 일한  3개월 만에 알았다나는 높은 빌딩이 빼곡한 시끌벅적 번화가와 맞지 않는다는 나만의 속도자유를 잃으면 일도 생활도 퍽퍽해져 오래 지속할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혼자 온전히 집중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독립 공간이 절실했다. 듣고 싶은 음악을 틀고 남 눈치 보지 않고 스트레칭을 할 수 있는, 내 몸 하나 들어갈 크기의 아담한 공간이면 되었다. 일에 몰입하도록 도와준 공유 오피스의 바쁜 목소리와 움직임이 이제는 부산스럽고 불편했다. 인파 속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시 내 방 책상에서 일하기엔 이미 집 밖 사무실의 쾌적함을 알아버렸다.  가족이 뒤엉켜 사는 좁은 집에서는 일도 일상도 제대로 살기 힘들었다우리  사람들은 목소리가 크고 시끌시끌하다언성이 높아질 때마다 간이 쪼그라들고 목덜미가 굳었다나는 집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강남 공유 오피스는 일종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안되겠다. 내가 사는 동네, 서울 강동구에 작업실을 구하자.


동네 매물 투어를 하며 확인한 현실은 씁쓸했다. 마음에 드는 공간은 비싸고, 지불할 수 있는 예산의 공간은 사람이 사는 곳이 맞을지 의아할 정도로 열악했다. 우리 동네에 내 한 몸 들어갈 공간이 없다니. 괜한 욕심을 부리는 걸까. 한창 직장 다닐 나이에 개인 사업자를 내고 개인 공간까지 탐하다니. 애꿎은 자존심과 자신감에 주제를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닐까. 돈은 대체 언제 모이는 거지. 빈약한 통장 잔고를 보며 내 자질과 깜냥을 의심하고 낙담했다. 내가 원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이상이 지나쳐 충분히 행복한 현실을 만족하지 못하고 깔보는 걸까. 내 꿈이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다고 꿈을 줄일 수는 없었다. 더 크게 꿨으면 꿨지, 감히 꿈까지 작게 꾸는 건 나답지 않다. 황다움은 꿈을 먹고 살지!


강남 교보문고에서 널찍한 공책을 구매해 드림 노트를 만들었다. 일명 가시화 작업으로 꿈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눈에 보이게 하면 이루어진다고 성공한 사람들이 말했다지금 내게 가장 간절한 꿈은 개인 공간이다핀터레스트에서 찾은 취향 저격 공간 사진을 출력해 붙였다책이 가득한 책장과 액자로 꾸민 벽면테이블 위에는 책과 커피가 느슨하고도 멋스럽게 올려진 사진도 붙였다공유 오피스 복도에서 타인의 목소리가 들리면 드림 노트를 펴고 꿈의 공간에서 사는 삶을 상상했다가진  없어도 꿈꿨다돈이 없어 당장 현실이 불가능해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다.

당시 만든 드림노트의 일부. 꿈은 이루어진다.

살다 보면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전개가 펼쳐질 때가 있다. 여기서 이 장면이 나온다고? 누군가는 이를 행운이라고 하지만 나는 기적이라 말한다. 온몸에 이는 전율에 운이라는 우연한 이름을 붙일 수 없다. 기적과 은혜가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다. 내 30년의 짧은 인생에 기적과 같은 사건들이 정말 많았다. 의외의 사람, 의외의 장소,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이 늘 결정 장면으로 나타났다.   하필  길에 들어서다니.


피곤에 찌든 저녁터벅터벅 동네를 산책하다 평소에 가지 않던 골목으로 들어갔다어디든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지만 일상을 뿌리칠  없는 대신 새로운 골목으로 여행을 떠났다 길에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구청에서 낙후된 거리를 공방거리로 깨끗하고 활기 있게 조성하는 중이었다 공방은 청년이 입주할  있었다혹시  공간이 있나 싶어 검색을 했다마침 모집 공고가 올라와 있었다 거리와 같은 맥락의 공간 지원을 다른 동에서 하고 있으며 입주자를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1 서류 모집 마감은 2 뒤였다시기 적절장소 적절야망 적절집에서 도보로 30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평생을 강동구에서 나고 자랐지만  번도 가본  없는 동네였다.


법적으로 청년은 만 18세부터 39세를 말한다. (고령화 시대가 되며 지차제마다 40대로 청년의 연령을 올리는 추세이다.) 청년의 자격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많다. 한창 일하고 도전하는 나이가 30대까지라는 암묵적 합의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50살이 넘어도 푸른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청년이고, 마음이 탁해져 눈빛이 흐려지면 아무리 39세 미만이더라도 청년이 아니다. 어찌 됐든 지금 난 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완전한 청년이다. 도전하기 좋은 청년의 때, 도전을 지원하는 국가의 다양한 사업, 사회의 분위기. 청년의 때는 좋은 게 참 많다. 청년이기에 작업실에 들어올 수 있었다. 

입주 전 공실 모습.

다움웍스 작업실은 삼면이 넒은 흰 벽이다. 벽이 워낙 넓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액자를 걸었다. 포스터를 A1 사이즈로 출력해 액자를 맞췄다. A4만 출력하다가 A1을 출력하다니. 벽이 넓어지니 내가 구현할 수 있는 사이즈도 함께 넓어졌다. 드림노트에 붙인 인테리어 사진에 꼭 큰 액자가 벽 중앙에 걸려있었다. 큼직한 액자가 공간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진 속 공간처럼 내 공간에도 액자가 걸렸다. 심지어 A1 액자를 걸어도 벽이 광활하게 많이 남았다. 감격했다.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작은 액자를 몇 개 더 걸고, 내가 디자인한 서체를 출력해 붙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넓은 벽, 내가 그토록 꿈꾸던 벽이 선물처럼 나타났다. 제한 없는 무궁무진한 벽 하나면 이렇게나 신나는 거였다. 벽은 나의 꿈이 채워지는 작은 세계이다. 

내 방 책장에 두툼한 클리어 파일이 5개가 있었다. 대학생 때부터 수년간 전시와 카페에서 모든 리플렛과 명함, 제품 패키지 등 예쁜 인쇄물들을 모은 파일로 이 사진도 좋고, 이 디자인도 좋고, 이 글귀도 좋아서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은 파일들이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건 종이가 유일했다. 전시회에 가서 굿즈는 사지 못해도 리플렛과 티켓을 고이 들고 와 파일에 넣었다. 무엇이라도 손에 쥐고 싶었던 결핍이 종이를 향했다. 그 파일은 나의 욕망 그 자체였다. 파일에 가득한 종이들 중 몇 가지를 엄선하여 작업실 벽에 붙였다. 파일 안에 켜켜이 쌓여있던 종이들이 활짝 펼쳐져 벽에 붙었다. 


엄마는 옷장에 눌러 담은 안 입는 옷과 신발을 버리라고 항상 말했다. “언젠가 입을 거야. 추억이 있는 거야. 누가 선물해 준 거야.” 나는 버리지 못했다. 사주지도 않으면서 버리라고만 말하는 엄마가 애석했다. 집 베란다에 대학교 졸업 작품이 담긴 박스 4개를 두었었다. 베란다 한편을 떡하니 차지하여 엄마에게 묵은 체증 같았던 박스들이다. 딸의 시간과 노력이 담긴 작품이라 버리라고는 못하겠고, 좁은 집에 살게 한 자신의 탓으로 돌리던 그 박스들을 작업실로 옮겼다. 박스를 치우니 베란다의 빈벽이 드러나며 훤해졌다. 넓어진 베란다에 당신의 숨이 더 훤하게 나고 들어가길. 이제 그간 부모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의지해온 것들을 하나씩 치우는 나이가 되었다. 작업실에서 각자만의 자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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