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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Jul 31. 2023

성장이 원동력인 디자이너의 공예 강사 도전기

일단 그냥 하자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어느 날 문득 글을 쓰고 싶고 써야 할 것 같아서 쓰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열고 빈 화면을 켰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툭툭 적어갔다. 책상 위 굴러다니던 빈 공책 하나에 일기를 썼다. 책꽂이에 있던 아무 책이나 꺼내 읽었다. 뭐라도 읽고 쓰면 뭐라도 될 거 같아 지체 없이 행동했다. 막연한 짐작이 때론 가장 정확하다.

절박함에 키보드를 두드렸고 공허한 마음이 빼곡한 글을 빚었다. 복잡하고 괴롭던 생각들이 건조한 검정 글자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글로 직면하니 더 이상 도망칠 만한 중대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저 글자, 그저 문장, 그저 어느 날의 에피소드. 읽으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읽기 위해 썼다.


아침에 작업실에 출근하면 급한 일이 없는 이상 가장 먼저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책의 감명 깊은 구절과 감상을 쓰다 보면 짧은 문장은 어느새 문단이 되고 흰 지면을 가득 채운다. 글을 쓰기 위해 출근하는 아침은 통쾌하다. 나의 편협한 마음을 글로 부술 기대에 작렬하는 통쾌함이다. 오늘은 어떤 글을 읽을까. 글을 통해 내 생각이 어디로 흘러갈까. 출근길은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처럼 설렌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눈을 뜨는 설렘이 현존한다니! 기적 같은 기분으로 매일 아침을 살아간다.

글쓰기는 힘이 많이 든다. 문장을 짓기 위해 머리를 팡팡 돌리느라 뇌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오래 앉아 있는 만큼 많이 쓸 수 있기 때문에 척추가 튼튼해야 한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님에도 나는 굳이 시간을 내고 굳이 힘을 들여 글을 쓴다. 디자인 작업보다 글을 더 많이 쓴 주간도 있다. 바쁠 때는 글 쓰는 시간을 내기 위해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할 일을 다 마친 후 늦게까지 작업실에 남아 글을 쓰기도 한다. 쓰고 나서야 비로소 또렷해지기에, 잘 살아내려면 써야만 한다. 세상은 지나치게 혼란하고 험난하여 희뿌연 눈으로 보다간 다치기 일쑤니까.


글을 쓰며 책상에 앉아 소리 없이 싸웠다. 과거의 모난 모습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여 담백하게 작별하고 미래로 건너가기 위해 현재를 통과한다. 조용한 싸움을 이겨내야 했다. 그것을 글이 해주었다. 글을 쓴 구체적인 이유와 뚜렷한 목표는 없다. 그냥, 쓰고 싶어서, 써야 할 것 같아서 썼다.


"그냥 좋아요."라는 클라이언트의 말을 가장 확신한다. 여러 디자인 중 단박에 “이게 좋아요. 이거요.”라고 반응하는 시안이 있다. 찐이다. 고민하고 설명하려 한다면 좋은 시안이 아니다. 진짜 좋으면 이유를 밝힐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결정한다. 클라이언트의 그냥을 신뢰하면서 나의 그냥은 늘 묵살했다. 무언가를 그냥 할 여유가 어딨느냐고 핑계를 찾았다. “일단 그냥 하자.” 얼핏 무성의하게 들리는 그냥은 쉽지 않다. 그냥 하려면 용기과 믿음이 필요하다. 의미를 몰라도, 당장 노력과 시간을 감수하고서도 일단 시작하는 용기. 그냥 해도 끝까지 잘 해낼 거라는 스스로를 향한 믿음. 일단 하면 뭐든 된다. 그러니 일단 그냥 하자.




개인 작업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문득 잊었던 꿈 하나를 떠올렸다. 나는 섬유 공예를 전공한, 공예가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공예란 무엇인가. 실과 바늘과 원단을 잇는 섬유 공예는 한때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자 잘 한다고 자부하는 분야였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면서 공예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공예 하는 감각은 잠시 쉬고 있을 뿐 여전히 살아있었고 적절한 때를 만나 깨어났다. 작업실을 공방으로도 활용해 보자. 코바늘뜨기 클래스 열었고, 여러 기관에 출강을 나가고 있다. 공예를 잊었다고 손가락의 감각까지 잃진 않았다. 실과 바늘을 잡으니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공예 강사로 새로운 커리어의 시작. 독립 공간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작업실이 나를 성장시키려고 제 발로 찾아온 게 분명하다.


“그래서 너는 지금 무슨 일을 하는 거야?”


이 질문을 하도 자주 들어 이제는 여러 가지 답안이 마련되었다. 30초 버전, 1분 버전, 술 마실 때 인생 대서사 버전(눈치가 빨라 분위기를 흐리면서까지 풀버전을 말한 적은 없고 분량 조절 적당히 함). 자기소개도 자주 하다 보면 상대와 상황에 따라 말하는 센스가 는다. (그래서 소개팅을 많이 하길 추천합니다.)


주로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데 대뜸 공예 수업을 하고, 작업실을 사무실 이랬다가 디자인 스튜디오랬다가 공방이라 부르기도 하니 정체불명으로 보였을 테다.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하나로 정리할 수 없어 불분명해졌다. 불분명하다는 표현이 나는 참 좋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신비로운 이미지랄까. 다양함을 넘어 복잡한 세상에 직업을 꼭 한 가지로 정할 필요는 없다.


디자이너로서 연차가 쌓이며 어느 순간부터 디자인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되었다. 한 단계씩 지속적으로 성장하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성장이 더뎌지고 성장판이 닫힌다. 아는 게 하나도 없던 신입 디자이너는 도장 깨기 하듯 하나씩 성취했고 웬만한 걸 다 이루니 다음 스텝이 보이지 않았다. 도전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고 좋아할 무언가가 더 이상 없었다. 성장이 삶의 원동력 중 하나인 내게 슬슬 위기감이 몰려왔다. 새로운 도전을 통한 근육의 발달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 시기에 공예 강사는 새로운 국면이었다.


처음은 언제나 낯설고 혼란스럽다. 그냥 한번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연 코바늘 뜨기 원데이 클래스에서 초보 강사 티를 팍팍 풍겼다. 잔뜩 긴장한 채 수업을 진행했고 등으로 땀 한줄기 주륵 흘렀다. 어버버 말이 꼬여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넘어가 보려 했다. 수업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수업이 끝나자 긴장이 풀리고 피곤이 몰려왔다. 이 얼마 만에 느끼는 피로와 뿌듯함인가. 캔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진정했다.


이거 너무 재밌잖아!


공예 수업은 꿀잼과 보람을 선사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난 선생의 자질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살면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그런 내가 공예 선생님이라니…!

수업에서 기법 설명 보다 더 많이 하는 말은 응원이다. 처음 코바늘을 잡는 수강생분들은 지레 겁을 먹고 어려워한다. 그런 분들께 할 수 있다고, 걱정 말라고, 같이 만들면 완성할 수 있다고 계속 말한다. 내 입에서 무한 긍정과 격려의 말이 쏟아진다. 수업 끝에 모두가 공예품을 완성하면 나는 말한다. “그거 봐요. 할 수 있죠. 정말 잘하셨어요. 다음에 더 잘하실 거예요.” 내가 하는 말에 내가 힘을 받는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듣고 싶던 말. 이제야 나는 그 말들을 직접 말한다. ‘다움아, 할 수 있어. 정말 잘했어. 다음에 더 잘할 거야.’


눈앞의 어려움에 자신을 가두고 약간의 실망에도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처음은 늘 어색하고 서툴다. 한 땀 한 땀 조금씩 같이 만들면 완성할 수 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용기를 북돋는 일이다. 나는 용기를 주고 싶다.


지역아동센터에서 10명의 초등생에게 나만의 섬유 공예 브랜드 만들기를 주제로 로고 디자인과 섬유 공예를 가르친 적이 있다. 바느질을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의 처음을 함께 한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손가락의 소근육이 아직 덜 발달하여 바늘 잡기도 어려운 친구들이 오물오물 실을 엮어 자신만의 공예품을 완성하면 내가 다 뿌듯했다. 처음 해보는 공예가 아이들에게 어렵고 하기 싫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으면 해서 교육보다도 재미와 유대감에 더 중점을 두었다. 먼 훗날 어른이 되어 "어릴 때 했던 코바늘 뜨기가 재밌었었던 것 같은데”라고 문득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 공예가 어른으로서 지친 일상에 새로운 활력소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안타깝게도 공예는 좋아하지만 돈이 안되는 영역이다. 공예 하는 시간에 서체를 만들고, 디자인 외주를 하나라도 더 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섬유 공예를 전공하면서 늘 현타가 왔다.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든 뜨개질 소품은 다이소에서 천 원에 팔았고, 뜨개질 가방은 이마트에서 만원에 팔았다. 나 같아도 다이소나 이마트에서 싼값에 사야 편하고 이득이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어서 공예를 까맣게 잊은 건 잊을만 해서였다. 아무리 많은 정성을 들여도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공예.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사랑을 주지 않는 짝사랑 같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을 놓지 않고 기회가 될 때마다 클래스를 열고 플리마켓에 참여하는 이유는 오로지 좋아서다. 손으로 꼼지락꼼지락 만드는 시간이 그냥 좋다. 전공이어서 그런지 마치 내 근간 같다.


서체 디자인은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만들어가야 하는 공예의 속도와 닮았다. 공예는 손으로 한 땀 한 땀 빚고 서체는 한 획 한 획을 그려야 한다. 조금 삐끗하면 올이 나가 직물이 삐뚤어지듯 획의 각도가 약간이라도 어색하면 서체가 어수선하다. 공예와 서체 모두 정직하고 섬세하게 시간을 쌓아야 좋은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아 써 내려가야 한 장의 글이 완성된다. 인생도 그렇다. 빠르고 쉽게 가려고 휘뚜루 마뚜루로 하면 허무하게 금방 무너진다. 나만의 속도대로 천천히 올곧게.


당장 득 될 것 없는 일들에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이유는 그냥, 좋아서. 그냥이라 말하는 발그레한 얼굴과 수줍은 표정, 달달한 어투가 모든 것을 알려준다. 좋아하는데 이유가 무슨 필요인가요. 좋아하면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행동하고 있더군요.


나는 지금도 이 글을 굳이 써서 굳이 발행하고 있다. 요새는 내가 좋아서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굳이 사서 고생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니 앞으로도 굳이 해야지. 그냥 일단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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