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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제교류 TAN TAN RoDee May 18. 2019

다를 수 있는 힘의 뿌리는?   

용기가 아니라 연습이다

"홈스쿨링을 시작하게 된 그 용기는 어떻게 생겼나요?"라는 대화에서 내가 이 브런치에 담고 나누고자 하는 스토리에 대해 생각을 모으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홈스쿨링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용기는 어울리는 표현이 아니었다. 그럼, 뭐지? 

Free-Photos from Pixabay

다른 친구들이 긴 머리할 때 "난 커트해 보면 어떨까?" 라고 짱이가 물었다. 긴 머리를 무척 소중히 하던 초딩의 파격적인 발언에 흠짓 놀랐지만, 얼씨구나 하는 마음으로 "멋진대, 한번 해 보자." 커트 후 "뭐, 나쁘진 않네. 싫으면 다시 길르면 되지"라며 자평하길래, "그렇구나"며 에코만 쳐 주었다. 


여중으로 배정이 되고 "꼭 치마만 입어야 돼?"라며 고민했을 때 "바지가 편하긴 하지라고 공감해 주었다. "옷은 옷의 기능을 우선적으로 잘 해야지. 네 마음 가는대로 일단 해 보자"라며 치마 교복에 바지교복도 추가로 구입해 주었다. 그 것 뿐이었다. 본인이 편안히 여기니 짱이의 주변에도 바지 교복 입은 여중생 친구들이 우리 반을 초월해 모였다. 이들의 이름은 "2반에서 바지 입은 애," "1반에서 우리 같은 애"로 서로 불렸다. 바지교복은 옷 이상의 사회적 기능을 했다. 


남과 다른 것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가 들어가지 않기를 희망했다. 내가 나다운 것이 충만감을 주듯 다른 사람의 독창성도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크길 희망했다. 생활에서 아주 간단한 것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데, 이 사소한 것도 다른 사람이 정한 기준을 따라야만 한다면서 어떻게 색깔을 키워줄 수 있을 것인가를 늘 고민했고, 다르고자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Satynek from Pixabay 

“아무리 그래도 결국은 입시인데…..,” “아무리 그래도 대학은 남들 가는 만큼 웬만큼은 가고 나서야…,” “자기가 좋아하는 것도 좋지만 행여 그러다가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 찍힐 수도 있는데….,” “학교 졸업장은 평생 따라 다니는데?” “뭐 그렇게까지 뛰어난 것 같지도 않은데….,” “혹시 관종?” “부모가 별나나?” "애가 그런다고 어떻게 부모까지?" 이런 이유들도 물론 여러 차례 들었었다. 자주 "그렇게까지…." "애가 그런다고 어른까지...."로 마무리가 되었다. 우리 아이의, 아니, 한 사람의 개성을 보호하는데 역할을 했다고 평가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청소년기에 고등학교를 가고 안 가고는 어떻게 보면 결정적인 배움의 기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뭣이 중한가?” “남들이 믿고 있는 가치관 만큼 우리가 믿고 있는 가치관도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그렇담 우리의 교육관은 뭐지?”를 매일 매일 이야기하고, 몇 년을 조사하고 물어보고, 가족끼리 서로 다른 생각에 부딪히고, 서로에게 놀라고 실망하고, 다시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기를 반복했다. 적어도 6년에 걸친 고민과 연습을 한 결과 홈스쿨링이라는 선택을 했다. 


용기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단추처럼 느껴진다.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그닥 거창한 일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다. 

홈스쿨링은 용기라는 단어까지 가기 전에 "그냥" 가볍게 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선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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