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지원 일을 하나 더 시작했다. 7시 반에 A씨를 만나 출근하는 곳까지 바래다 주고 나면 9시. A씨는 1시에 퇴근하는데 그 때까지 네 시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활동지원사는 이용인과 헤어지고 나면 반드시 카드를 찍고 업무 종료를 해야 한다. 이용인과 대면하지 않는 시간은 업무로 치지 않는다. 집에 왔다가 다시 A씨를 마중나가기에는 시간과 교통비가 들고, 집에 오지 않기에는 회사원들이 가득한 디지털단지에서 할 일이 없었다. 마음놓고 쉬는 것도 아니고 돈 받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네 시간.
활동지원사는 매달 일할 시간이 적힌 일정표를 위해 한달에 한 번 꼭 센터를 방문한다(물론 근무 외 시간에). 서류 제출을 위해 센터를 방문한 김에 이 애매한 시간이 고민이라 말했더니 코디네이터가 물었다.
“그러면 일을 하나 더 하실래요? 마침 나은 씨 집 근처에 활동지원을 신청한 분이 계신데.”
내 집 근처 걸어서 3분 거리. 활동지원 시간은 월 60시간. 주5일, 3시간 일할 수 있다.
B씨, 나이는 만 60세. 여성. 발달장애 경증.
“발달장애인 3명으로 이루어진 가정이에요. 이용인이 나이도 많고, 발달장애인만 있는 가정이라는 게 쉽지 않아서 굳이 얘기는 안 하고 있었는데, 3시간 정도 할 일은 찾는다면 딱 맞지 않을까 싶어요. 이분이 이용 시간이 적어서 사람이 계속 안 구해지고 있었거든요.”
A씨를 바래다주고 재빠르게 돌아와 세 시간 일하고 다시 재빠르게 A씨를 마중나간다면 해볼 만도 한 일 같았다. 월 90만원의 임금에 60만원 정도 더 하면 150만원 언저리는 벌 수 있을 것이다.
일하겠다고 말했다.
오후 10시 쯤 B씨를 만나러 가니, 이불을 덮고 불 꺼진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본래 어머니가 발달장애가 있는 3명의 자식(아들,딸 하나, 손자)을 돌보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크게 넘어진 후로 요양병원에 가게 되었다. 어머니의 부재로 집안은 점점 상태가 좋지 않아졌고, 주민센터가 이들의 사정을 알게 되어 여러 도움을 알아보고 있었다.
활동지원사를 신청한 건 구청의 사례관리사였다. 그는 B씨가 지원의 필요성에 비해 턱없이 적은 시간을 받았다며 아쉬워했다.
“처음에는 등급도 안 나왔어요. 말이 안 된다고 몇 번 재신청하니까 겨우 된 거에요.”
B씨의 상황은 월 60시간이라는 최저 기준의 활동지원 시간으로 턱 없이 부족해 보였다. 언어 소통이 잘 되지 않았고 오랜 칩거 생활로 위생 상태도 좋지 않았다. 방 안에 상당히 많은 물건들이 있어 청소도 시급했다.
B씨의 보호자는 B씨의 남동생이었고, B씨의 아들이 같이 살고 있었다. 대답없이 누워 있는 B씨를 빼면 거구의 남성들만 있는 집. 내가 할 일은 간단한 가사 지원과 위생 지원. 그 외 여러가지로 뭉뚱그려지는 사회 활동 지원. 할 수 있을까?
사례관리사는 벌써 내가 일할 것처럼 연신 감사해했다.
“기준은 B씨만 활동지원하는 것이지만, 가족분들이 다 어느정도 어려움이 있다보니 쉽지는 않을 거예요. 한 명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이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에요. 감사합니다.”
어영부영 떠밀리듯 B씨의 남동생과 근무 동의서와 계약서를 쓰고 나왔다.
코디네이터도 좋아하고 사례관리사도 좋아하고. 나만 떨떠름한 걱정을 하며 B씨의 집을 나와 A씨를 마중갔 다.
그래도 이 일을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어.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다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세를 내고, 적금도 들고, 생활비도 좀 더 여유가 생기겠지.
“그런데 제가 어떻게 일하면 되나요? 저는 발달장애인이나 나이드신 분들이랑 같이 지내본 적이 없어서.”
계약서를 쓰러 같이 간 코디네이터에게 물었다. 업무에 관해 물어볼 사람은 이 코디네이터밖에 없었다. 물론 관리자와 근무지가 제각각인 활동지원사의 특성상 그와 내가 만날 일은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냥 선생님이 잘 알아서 하시면 돼요. 적당히, 맞춰서.”
대체 그게 어떻게 하는 것이란 말일까. 아무도 이 일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가사 지원은 어디까지고, 사회 지원은 어디까지인가. 단어는 사무적이지만 내용은 두루뭉술하다. B씨의 집 안에서 있을 수 있는 복잡다난한 상황들에 매뉴얼 같은 건 왜 없는 걸까. 내 불안한 질문에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한 코디네이터의 표정을 생각하면서, 과연 그 태평한 표정만큼 이 일이 쉬울 것인가, 고민은 내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