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내가 만날 이용인의 보호자인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중국인이에요?”
“아니에요. 한국인이에요.”
“한국 사람이 젊은데 왜 이 일을 하나. 아무튼 알겠어요. 면접 보러 오세요.”
이용인 A씨는 고관절 문제로 거동이 불편했다. 내가 할 일은 아침7시 반에 출근 시간 만원 전철을 같이 타서 출근한 뒤 퇴근했을 때 마중나가 다시 전철을 타고 같이 오는 것. 오는 길에 산책 겸 운동을 하고, 집에서 간단한 식사를 차려주기. 격주 토요일 출퇴근을 지원하고, 가끔 한의원에 같이 가기.
첫 날에 A씨와 같이 전철을 타니 사람들로 꽉 차서 정신이 없었다. 키가 나보다 머리 한 개 정도 작은 A씨를 잃어버릴 것 같았다. ‘괜찮으면 손 잡고 다녀주세요. 손 잡는 거 좋아해요.’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신 게 생각나 손을 잡으려 했다. 어머니 생각과 달리 A씨는 손 잡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일단 이십 분 정도 걸어 전철역에 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플랫폼 의자를 찾아 앉고, 전철이 오면 구겨지듯이 안으로 들어가 노약자석에 A씨를 앉힌다. 환승을 한 번 하고, 더욱 더 만원 전철인 7호선으로 갈아탄 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잠시 앉았다 두 정거장 뒤에 가산디지털단지역에 도착한다. 인파를 뚫고 에스컬레이터를 탄 뒤 인파를 뚫고 십오분 거리의 직장 건물까지 간다.
A씨의 집에서 가산디지털 단지까지 거리는 (환승 포함) 네 정거장이다. 갈 때 한 시간 반이 걸린다. 아홉시 도착을 하려면 7시 반에는 출발해야 한다. 출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내 발걸음으로는 이십 오분, 넉넉잡아 삼십분이면 도착한다. 왜 A씨의 출근은 이렇게 오래 걸릴까?
일한 지 한 달 정도 지나자 조금 알 것 같다. 일단 역에 엘리베이터가 하나밖에 없고 너무 멀다. 아침에는 어르신들이 줄을 길게 서 있어서 타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 A씨는 거동이 불편한 만큼 걸음이 느리고 자주 앉아서 쉬어줘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도 나면 계단을 이용하는 데 그 뒤에는 한참 앉아야 다시 걸을 수 있다. 별 것 아닌 차이 같은데 시간은 엿가락처럼 늘어나서 막상 도착하면 정말로 아홉 시가 간당간당하다.
A씨는 겉보기에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아니어도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꼭 필요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에게 이동 시간은 이렇게 길어지는구나. 좁은 엘리베이터가 젊은 내가 젊은 A씨와 같이 타 있으면 노인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한 사람이 출구로 가는 길을 물어서 내가 답해주었다. 내릴 때 인사도 했다.
“인사하지 마.”
“네?
“저 사람들한테 인사하지 마. 말 걸지도 마.”
“알겠어요.”
A씨의 퉁명스러운 말에 군말없이 알겠다고 했다. A씨는 엄연히 내 고용인이니까. 이 일을 하다보면 사람 안내견이 된 것 같은 기분이야. 성과를 내거나 내 주장을 할 필요가 없어 편하다. 내 의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활동지원사 교육에서 강사가 몇 번이나 강조했던 점이다. 선생님들의 의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요구하는 대로 맞춰주세요. 내 자아가 물처럼 사라지는 것 같다. 나쁘지 않아. 젊은 사람으로 사는 데 지쳤고 이십대의 내가 뭔가 새로운 트렌드를 훤히 알고 높은 자존감과 열정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세간의 시선도 지겹다.
너는 앞날이 창창하잖아. 뭐든지 할 수 있어, 같은.
지금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기분을 느끼며 일한다.
어쩌면 이게 내가 바란 걸지도 몰라. 포기하는 일. 노력하지 않기로 하는 일.
정장을 입고 빠르게 걸어가는 저 젊은 회사원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할까?
저 사람은 열심히 살아서, 재빠르게 일하러 가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걸까? 인파 속에 휩싸여서,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빠르고 정확하게 걷는 사람.
나는 A씨와 옆에 앉아 에스컬레이터를 빠르게 올라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고관절이 아픈 A씨와 디스크 환자인 나.
활동지원사 시급은 주휴수당 포함 11110원. 이렇게 한 달을 보내면 90만원 정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