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2
하루 종일 이삿짐을 날랐다. 허리보호대를 차고 작은 것만 들었는데도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렸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빌라. 옥상이 가까운 건 좋았다. 빨래를 널 수도 있고 식물도 조금 키울 수 있을지도. 밥솥을 가장 먼저 들여보내고 집을 치웠다. 전 세입자가 청소비 대신 직접 청소를 하고 나갔다고 하는데 영 지저분했다. 싱크대 하부장을 열어보니 칼꽂이에 커다란 식칼이 세 개나 꽂혀 있었다. 다 갖다 버리고 칼꽂이를 박박 닦았다. 액운이 끼어 있다 해도 지금 집이 학교 앞에 살던 자취방보다 훨씬 좋다. 불법 증축한 건물이라 벽 틈새가 벌어져 있었고 거기서 가을까지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기어들어왔다. 같이 사는 고양이의 수염인 줄 알고 쓰다듬었는데 사실 얼굴 옆의 바퀴벌레였던 적도 여러번이었다. 보증금 이백만원에 월세 사십만 원짜리 집이었다. 이사온 집은 두 배 더 큰데 월세는 오십만 원이다. 보증금이 오천 만원이었지만 사천 오백만 원 대출을 받아 들어올 수 있었다. 빚이라 해도 이렇게 큰 액수가 내 통장에 찍힌 적이 있었던가. 이정도면 주거 상향을 한단계 이룬 것일까. 현관을 닦고 있는데 옆집 문이 열리더니 아주머니가 나와 이사왔냐고 물었다.
“한국 사람이에요?”
“네.”
“난 또, 맨날 중국 사람들이 이사를 와가지고. 한국인이 왔다니까 좋네.”
내 집의 지난 세입자가 중국인 가족이었다.
내일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출근하기로 했다. 실습까지 마쳐야 이수증을 줄 수 있다길래 다섯 군데에 전화했는데 두 달만에 한 곳에서 전화가 왔다. 실습만 받는 곳은 없단다. 일할 걸 전제로 이용인을 매칭한 뒤 실습 겸 일을 시작하게 된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취업 제안이었지만 하겠다고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사 후 첫번째로 해야 할 건 전입신고, 두번째는 일자리 구하기다.
센터는 가까웠다. 나와 매칭된 이용자는 A씨, 나이는 30대, 인근 거주, 다운증후군, 월 활동지원 바우처 시간은 90시간, 출퇴근 지원이 주된 업무.
센터 코디네이터라는 직원이 여러 정보를 설명해줬지만 사실 무슨 소린지 잘 모른 채 알겠다는 말만 했다. 내일 면접을 보고 보호자가 승낙하면 바로 일하게 될 것이다.
이삿짐으로 어질러진 바닥에 언니랑 같이 잘 이불만 펼쳐 놓았다.
월 90시간이면 돈은 얼마를 받게 될까? 그걸로 언니랑 월세 25만원을 나눠 내고 생활도 할 수 있을까? 허리가 아파서 한달 정도는 쉬고 싶었는데 막상 일하게 되니 아쉽다. 어느 병원을 가나 디스크가 심하게 파열되었다는 소리만 한다. 쉰다. 휴식. 요양. 안정...그런 생각은 내 몫이 아니지. 중요한 건 내일 일하러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