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월
활동지원사 양성 교육 5일차. 전철은 별일 없이 도착했고 혜화역을 나올 때도 아무 일 없었다. 스크린도어에 붙은 노란색 투쟁 스티커만 눈에 띄었다. 강사가 이십분 늦었다. 삼각지역에서 한 출근길 시위가 예상보다 늦게 끝났기 때문에 허겁지겁 들어왔다. 활동지원사의 역할을 배우는 시간인데 이야기는 장애 이동권 시위에서, (정책 면담 장소였던) 여의도 신라 호텔, 지하철 리프트에서 흐르는 노래까지 정신없이 흘러간다. 그래서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어떤 일을 하는 건데? 나는 왜 여기서 이 교육을 받고 있고, 교육을 이수한 다음에 도통 무슨 일을 하게 된다는 건지 모르겠다. 좀이 쑤시고 하품이 나온다.
-이런 장애 인권 교육같은 이야기만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활동지원사 업무가 뭔지 알고 싶으시죠?
교육생이 다들 지루해하는 걸 알았는지 강사가 먼저 물었다. 드디어 원하는 답이 나오나! 3일 간 가슴아프고 감동적인 투쟁의 역사를 들은 보람이 이제 시작되는가 싶었다.
-정해진 게 없어요. 이 교육을 거의 십 년째 하고 있는데, 저희가 알려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사람이 사람을 지원하는 일에 정답이 있나요? 가서 직접 부딪혀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교육생들은 대부분 중노년 여성들이었다. 남성은 없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은 두 세명 정도. 내심 교육생 중 내가 제일 어린 걸까 궁금해 했는데, 점심 먹고 돌아와보니 어느새 친해진 사람들끼리 나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올해 수능 치고 교육을 들으러 온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다들 기특하다고, 어쩜 이런 좋은 일을 할 생각을 다 했냐고 감탄했다. 내가 제일 어린 게 아니라는 생각에 어쩐지 졌다는 기분이 들고, 유치하게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한심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몇 살이에요?
-스물 세 살이에요.
이쪽도 기특하다고, 사람들이 말해주었다. 나는 올해로 여든 살이야.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교육생 한 명이 수줍게 말을 꺼냈다. 어머, 절대 그렇게 안 보여. 수다의 중심은 여든 살 교육생으로 넘어갔다.
아무래도 이 일은 못 할 것 같아.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 휴학하고 시간이 생긴 겸 교육을 신청하기는 했지만, 누군가의 신변을 처리하고 휠체어를 미는 내 모습이 상상이 안 됐다. 살면서 장애인을 만난 적도 말을 나눠본 적도 없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고, 무엇보다 난 그렇게 좋은 일을 하고 싶은 사람도 아니었다.
집에 와 노트를 펴보니 온통 낙서 투성이다. 보조기기, 제도, 후천적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휘갈겨져있다. 길게 써 놓은 문장도 몇 개 있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한 세계를 만나는 거라고 하지요. 결국 활동지원사는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일이에요.'
빨리 집에 가서 남겨둔 와인이나 먹고 싶다.
'활동지원사 제도 도입을 위해서 정말 많은 투쟁을 했어요. '
이 강사들은 내가 활동가라도 되기를 원하는 걸까?
'이 일을 택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