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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Mar 19. 2023

고학년 가르치기.



돌봄1반이 1-2학년 위주로 놀이 돌봄을 많이 한다면, 방과후 연계형 교실은 사정이 다르다(첫 해에 나는 돌봄 1반과 방과후 연계형 담당 보조였다). 3학년에서 5학년까지 모여있는 방과후 연계형 교실의 주 업무는 학습이다. 아이들은 정해진 국어, 수학 문제집을 가지고 연계형 선생님이 시키는 만큼 풀어야 한다. 사실 이건 순전히 연계형 선생님의 주도로 이루어진 일이다. 방과후 연계형 교실은 학교가 끝나고 오갈 데 없는 고학년 아이들을 도맡기 위해 만들어진만큼 지원도 적고, 무엇을 하라고 직접적인 지시가 내려오지도 않는다. 강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다른 방과후 연게형 같은 경우에는 그냥 시간 때우게 하고 보내는 거예요’ 다. 방과후 연계형을 맡은 김 선생님은 다르게 생각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성도 기초학습 수준도 급격하게 떨어진 이 아이들을 이 귀중한 시간에 그저 시간 때우기만 하면서 보낼 수는 없다! 김 선생님은 고학년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었다. 


스무 명이 넘는 고학년 아이들을 김 선생님 혼자서 가르치는 건 불가능했다. 김 선생님은 강 선생님에게 여러 번 부탁했고, 지원을 위해 내가 투입됐다. 나와 다른 대학생 보조는 오전에는 돌봄 1(혹은2,3반)반에 있고 오후에는 고학년 국어, 수학 학습을 위해 방과후 연계형으로 간다. 

놀이 돌봄과 학습 돌봄은 비슷한 결에 있지만 다르다. 저학년을 위한 놀이 돌봄에는 높은 목소리톤과 과장된 리액션, 말도 안되는 규칙을 주장하는 아이들을 위한 자애로운 마음이 필요하다. 학습 돌봄에는 가장 중요한 게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수학/국어를 가르치는 능력. 내가 물에 물탄듯 사는 물렁한 선생님이라는 건 놀이 돌봄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학습 돌봄에는 문제가 된다. 나 자체가 가르치는 일에 별로 열의가 없다. 고학년 학습을 위해선 3-5학년 수준의 국어/수학 수준이 필요한 데 사실 그것도 없다. 난 수능을 치룬 후로 오지선다 문제를 푸는 능력을 전부 잊어버렸다. 정답 해설지가 없으면 나는 주유소 풍선인형마냥 별 쓸모가 없다. 

인생이 나이 먹을수록 고난이도의 사회적 기술과 눈치가 필요한 것처럼, 고학년을 다루는 일은 저학년과 전혀 다르다. 

1. 장점: 3학년이 되면 선생님들의 반어법과 미묘한 어투를 전부 눈치챈다. 말이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이때는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좀 사라진다. 상호 소통이 가능한 나이라고 할 수 있다. 

2. 단점: 아이들이 눈치와 사회적 기술을 탑재한 나머지 어떻게 하면 선생님을 홀딱 발라먹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기싸움이 시작되는 학년이라 할 수 있다. 위계가 분명한 상태에서 기싸움이 맞는 단어인지는 의문이 들지만, 사실 나는 보조 선생님이므로 아이들과의 사이에서 위계가 분명하지 않다. 고학년이 되면 그걸 알기 때문에 상당히 고도의 기술과 변주를 쓰기 때문에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이 말은 그만큼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에게 학습을 시키는 과정에서 논리가 타당해야 한다는 말이다. 많은 선생님들이 부족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시키는 이유에서 타당성이 떨어질수록 괜히 위계를 앞세워 아이들을 지도하는 경우가 많다(선생님이 하라고 하면 하는 거지 말이 많아! 라는 식의)


아이들이 영악하다거나, 머리를 쓴다, 이런 식으로는 표현하고 싶지 않다. 저학년을 지나 고학년으로 가면 그만큼 어린이가 자라는 것이다. 그 전까지 놀이 돌봄 등으로 쉽게 즐거워하던 아이들은 더 성숙해지고, 선생님이 무언가를 시킨다고 해서 그저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학년을 다루기가 더 어려운 건 그만큼 탄탄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삐를 잡았다 풀었다 다시 적당한 세기로 잡아당기는 기술이랄까. 난 아이들을 훈련해야 할 짐승처럼 다루는 이러한 비유가 한번도 달가운 적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선생님의 입장에서 스무 대여섯명의 고학년을 다뤄야 할 때 머릿속에 가장 떠오른 것도 이 비유였다. 내가 선생님이고, 아이들이 학생의 입장으로 내 앞에 있지 않았다면 전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내게는 아이들을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고학년 반에서의 돌봄은 그런 문제였다. 어디까지 통제하고 어디까지 내버려둘 것인가. 


어느새 나는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 절대 원하지 않던 어른으로서 아이들 사이에 있었다. 아이들이 하고싶은대로 정글처럼 뛰어다니게 둔다면 나는 무책임한 어른이었다. 아이들을 질서있고 차분하게 공부만 하게 둔다면 나는 자유로운 인격체들을 억압하는 교육제도의 하수인이었다. 김 선생님이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과 행정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느라 무척 바쁜 동안, 나는 어디까지 선을 긋고, 어디까지 아이들을 닦달해야 좋을 지 항상 고민했다. 이건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윤리의 문제였다. 돌봄교실에서 일하는 내내 무얼 어떻게 하는 게 잘하는 건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 선생님은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쓰라고 내게 긴 나무 막대기를 주었다. 그게 암묵적인 교육 방법이라면 방법이었다. 난 스물 세살이었고 청소년이었던 시절이 성인이 된 시절보다 길었다. 회초리로 때린 시간보다 맞은 시간이 더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들은 장난기와 호기심과 지루함이 섞인 눈으로 나를 보고, 아이들이 풀어야 할 문제집은 산처럼 쌓여있고, 난 실수로 다른 반에 잘못 들어온 학생처럼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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