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이자 수업이 시작됐다.
"자, 오늘은 이번 기수 마지막 시간이에요.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서 한 달 반이 훌쩍 지나갔네요. 마지막 시간인만큼 다들 집중해 주시길 바라요. 모두 파이팅입니다"
밀러가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조이가 약간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답들은 안 하시기로 한 건가요. 대답을 해주셔야 저희도 여러분들과 소통을 할 수 있어요. 아시겠죠?"
조이의 말이 있자 사람들은 그제야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대답을 하는 게 쑥스러웠던 모양이었다. 나도 괜히 큰 소리로 대답해서 튀기가 싫었기 때문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조이의 말에 뜨끔했다. 사람들의 대답을 듣자 조이가 이어서 말했다.
"탱고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나 한 분 대답해 보시겠어요? 어, 그래 데이빗님 뭐가 제일 중요할까요?"
갑작스러운 조이의 질문에 당황해서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조이는 긴장해 있는 내게 시선을 돌리고는 내가 대답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이내 포기하고 수업을 진행할 줄 알았는데, 내가 대답할 때까지 기다릴 모양이었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떠오르는 아무 말이나 대답했다.
"춤을 잘 추는 거 아닐까요? 아니면 정확한 동작인가...?"
"그런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틀렸어요. 정말 중요한 건 상대방을 느끼는 거예요. 상대방의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상대방이 어떻게 노래를 느끼고 있는지, 어떤 동작을 하려 하는지 그걸 느낄 수 있어야 탱고를 잘 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일 잘 나타나는 게 걷기입니다. 걷기는 탱고의 A이자 Z예요. 그래서 오늘은 걷기를 할 겁니다."
조이의 말이 계속되는 동안 얼굴이 빨개지고, 귀가 붉어져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답을 틀렸다는 것과 기본도 몰랐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창피하게 만들었다.
"자, 집중하세요. 오늘은 그냥 걷기가 아니라 세라도 아브라소(Cerrado Abrazo)를 하고 걷는 연습을 해볼 겁니다. 그 후에 배웠던 걸 한 번 세라도 아브라소 형태로 해보는 시간 갖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조이와 밀러는 시범을 보였다. 평소에 우리가 했던 아브라소는 일정 거리를 두고 모양을 만드는 형태였다면, 지금의 아브라소는 상체가 서로 밀착되어 둘 사이의 공간이 아예 없는 형태였다.
"자, 보이시죠. 이렇게 하셔야 해요. 주의할 점은 남자도 여자도 상대에게 너무 기대면 안 된다는 겁니다. 탱고를 출 때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 바로 상대의 축을 건드는 일이에요. 서로 맞닿아 기대어 있지만 절대로 상대의 축을 건드시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체를 숙여서 기대거나 무게를 완전히 상대방에게 넘겨서 의지하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대답!"
조이는 수강생들을 둘러보며 이야기하다 사람들이 대답이 없자, 대답하라는 말을 하며 설명을 마무리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대답을 했다. 수강생들은 서로 짝지어진 사람들과 상체를 포개어 안으며 조이와 밀러가 보여준 형태를 따라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동작은 어딘가 어설펐고 불편했다.
"익숙하신 분들도 있고, 아닌 분들도 있네요. 일단 걷기부터 해 보세요. 걷기가 제일 중요해요. 걷는 걸 할 수 있어야 춤을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안은 상태에서 걷는 것부터 예요."
조이의 안내가 끝나기 무섭게 모두가 서로 포개어진 상태로 걷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로 들은 밀착된 상태에서 걷는 것이 익숙한 듯 거침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와 반대로 나는 혹여나 상대의 발을 밟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엉덩이는 뒤로 빠졌고, 자연스레 상체가 숙여져 엉거주춤하는 모습이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조이가 곁을 지나며 한마디 했다.
"탱고에 집중하세요. 잿밥에 관심 가지다가 중요한 걸 놓치고 맙니다. 그렇게 만만한 춤이 아니에요. 정신 차리세요."
조이는 오직, 나만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나만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과 그녀의 말이 겹쳐지며 귀가 빨개졌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