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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범 Jun 08. 2024

메디아 루나 - 살리다 14

춤에만 집중하려 애쓰고 있었는데, 마치 내가 색욕에 끌려 탱고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노력하는 모습은 보지 않고 이성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단정 짓고 있는 듯한 조이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신경이 쓰였다. 조이로 인해 얼마 남지 않은 수업시간 동안 상대에게 집중할 수 없었다. 엉거주춤한 태도로 춤인듯한 움직임을 흉내 냈다. 앞에 있는 파트너가 바뀔 때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조이의 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헤매는 동안 엘리아나는 신나는 표정으로 새로운 상대들과 춤을 배우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젓다가 한 번씩 엘리아나 쪽을 보게 됐는데, 그녀는 즐거운 표정으로 로든과 동작을 따라 했다.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리드가 좋은 모양이었다. 그런 그들과 아직도 리드는커녕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고 있는 자신이 너무도 비교가 됐다.


"많이 어려우시죠? 탱고가 원래 좀 어려워요."

잡생각을 하며 집중을 못 하고 있는데,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같이 연습하던 라가 말을 걸었다. 누구였더라, 생각하다가 수업 시작 때 소개하기를 에밀리아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에밀리아 님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죠. 이렇게 움직이는 게 맞을까요?"

서둘러 정신을 부여잡고 남들이 하는 동작을 따라 했다. 급하게 따라 하느라 동작이 부자연스러웠다. 동작들이 이어지는 게 매끄럽지 못하니 자연스레 상대에게 전해지는 움직임도 매끄럽지 못하고 부산스러웠다. 에밀리아의 어깨가 들썩였고 마치 밀리는 듯한 모양으로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실수로 에밀리아의 발을 밟고 말았다. 순간 에밀리아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나는 당황해서 동작을 멈추고 자세를 낮추고 밟힌 발을 살폈다.


"괜찮으세요? 어떻게요? 많이 아파요?"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탱고를 하다 보면 밟을 밟히는 일은 다반사예요. 흔한 일이니까 괜찮아요. 그런데 오늘 밟힌 발은 좀 많이 아팠어요."

웃으며 대답하는 에밀리아를 보면서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집중하지 못해서 그녀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았다. 별일 아닌 척 넘겨주는 그녀의 배려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여 살짝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창피한 마음에 빠르게 눈물을 훔치고 상체를 일으켰다.


"미안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다음에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할게요. 죄송하니 다음에 제가 차라도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뭐 이런 걸로 차까지 대접해요. 괜찮은데, 뭐 그래도 거절은 하지 않을게요. 그나저나 데이빗님은 괜찮나요? 발을 디딜 때 발목이 다친 거 아니에요?"

눈가에 묻어 있는 작은 물기를 보았는지 눈가를 살짝 닦아주며 물어오는 에밀리아의 행동에 당황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내 공간을 침범한 그녀의 손길이었기에 어떻게 반응하지 못한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가운데서 밀러의 소리가 들려왔다.


"자, 마지막으로 살리다 스텝을 노래에 맞춰 보고 이 시간 마무리하겠습니다. 다른 동작들은 참아주시고 오직 살리다 스텝을 계속 이어서 해주세요. 그리고 파트너 바꿔주세요."

밀러의 말에 다시 한번 사과를 하고 에밀리아에게 인사했다. 그녀를 두고 자리를 옮기며 정신을 차려야겠다, 다짐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를 옮겨 인사를 했다. 마지막 같이 춤을 출 상대의 얼굴이 보였다. 엘리아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좋은 춤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며 아브라소를 만들었다. 노래가 시작됐고, 멜로디를 들으며 박자를 찾았다. 어쩐지 그녀의 심장박동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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