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과 춤을 출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 그녀와 함께할 때는 뚜렷하게 다가왔다. 방금 전까지 긴장해서 발을 밟았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잠시 동안이라도 그 모든 생각을 떨쳐내고, 이 순간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다가올 일들이 두렵기만 했기에, 그것을 잊게 해주는 지금의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속으로 박자를 세며 살리다 스텝에 집중했다.
그러나 춤에 몰입하려 할수록 끝없이 떠오르는 잡념들이 나를 방해했다.
'다음 주 인터뷰와 미팅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조이 선생님은 왜 그렇게 내게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을까?'
'에밀리아는 도대체 왜 나에게 그리 다정한 걸까? 그리고 루크는 뭘 바라는 걸까?'
'내 삶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거지...'
생각들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멜로디 속에서 몰입과 혼란 사이를 오가며 번뇌했다. 점점 춤에 집중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 무렵, 갑자기 음악의 틈 사이로 그녀의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마치 베이스의 진동과 함께 나의 가슴에 닿는 듯했다. 그 순간부터 음악이 한층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베이스의 쿵쿵거림과 바이올린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심장을 울렸다.
음악에 온전히 몸을 맡기며 박자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빠르게 흐르다가도 어느새 느리게 변주되는 리듬에 오로지 살리다 스텝으로 맞춰 춤을 췄다.
'우노, 도스, 뜨레스, 콰뜨로, 씽코, 쎄이스...'
속으로 박자를 세며 그녀와 나의 발걸음에만 집중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오직 나와 그녀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끝없는 살리다 스텝이 이어졌다. 마치 출구를 찾지 못한 발걸음처럼 멈출 수 없는 스텝을 밟았다. 출구는 없었지만, 내 가슴속에서 탱고는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마도 한동안은 이 춤은 가슴속에서 계속될 것 같았다. 멈추지 못할 탱고가 가슴에 남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