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희범 Jun 16. 2024

메디아 루나 - 오쵸 1

오쵸(Ocho) - 벗어난 줄 알았지만, 결국 그 자리에 있었다. 무한히 반복되는 굴레에서 우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 흐름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각자의 마음에 따라 그 밀도와 속도가 달랐으니까. 피하고 싶은 일일수록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렇게 피하고만 싶던 날이 오고야 말았다. 


아침부터 날씨가 너무 쨍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오늘따라 더 추레하고 초라해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는 정돈되지 않았고, 기장이 애매해 답답했다. 피부 여기저기 난 트러블은 마치 관리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초라해 보였지만, 중요한 미팅이었기에 적어도 외적으로는 후져 보이고 싶지 않았다. 머리를 정리하고 얼굴에 패치를 붙이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원치 않았던 그 시간이 찾아왔다.


약속 장소인 안국역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자주 가는 곳이 있다며, 나를 북촌으로 안내했다. 익숙한 거리였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청와대가 나오고, 추억이 담긴 전시회도 있었다. 언젠가 추억이 상처로 남을 줄 알았다면 이렇게 걸었을까. 그들과 거리를 두고 맨 뒤에서 걸으며, 자연스레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걸으면서도 그들의 눈치가 보였다. 미어켓이 되어 걷다보니, 조용한 북촌의 카페에 도착했고, 자리에 앉아 인터뷰를 준비했다. 녹음기를 켜고 노트북을 꺼내는 내게 김수호 신부가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지냈어요?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네요.”

여전한 그의 인자한 미소에 순간 울컥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았다.


“저는 뭐...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죠.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가는 중이에요.”


“그래요?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하네요.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이것도 주님의 뜻이겠죠.”


“그러게요. 만날 사람은 만난다더니, 우리가 그랬나 봐요. 잠시만요, 몇 가지만 더 준비하고 이야기 나눠요.”

그의 사담을 일단 멈추게 하고, 본격적인 인터뷰를 준비했다. 

준비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 웃고 이야기를 나눴다. 무언가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 중인 것 같았다. 그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수호 신부 옆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얼른 시원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작가의 이전글 메디아 루나 - 살리다 1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