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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범 Mar 23. 2024

메디아 루나 - 살리다 4

밀러는 지긋이 나를 바라봤다. 짙은 갈색의 눈동자가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의 눈을 바라보다 문득 너무 오랫동안 그를 응시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황급히 시선을 커피잔으로 돌렸다. 무안한 마음에 커피를 마셨다. 입술에 닿는 커피가 뜨거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밀러는 잠시 미소를 짓더니 티슈를 건넸다. 테이블에 커피가 튀었기에 우선적으로 테이블을 닦았다. 테이블을 닦고 있는데 밀러가 말했다.


"탱고는 재미가 있나요?"

갑작스러운 밀러의 말에 급하게 테이블을 닦아내고는 답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한 번쯤 춤이란 걸 배워보고 싶었는데, 그게 꼭 탱고는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지금 배우고 있는 건 탱고네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웃음에서 무언가 확신에 찬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 그렇죠?"


"거기다가 입문반까지 등록하셨잖아요. 두 번째 만에 말이죠. 운명 같네요."


그의 확신에 찬 듯한 말투가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무엇하나 확실하지 않은 인생에서 무엇을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 본지 얼마 되지 않은 내게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밀러의 영업기술은 참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밀러를 보며 그런가요 하며 어물쩍 대답하며 넘어갔다. 그리고는 침묵이 이어졌다. 밀러는 내게서 무언가를 살피는 듯했다.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한 것은 밀러였기에 밀러가 할 말을 기다렸다.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제가 잡아먹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말해주고 싶었어요. 젊은 사람들이 흔하지 않은 곳이니까 말이죠."


밀러가 보기에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던 모양이었다. 경계하고 있는 내게 밀러는 말했다. 밀러의 말을 듣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밀러는 이어서 말했다.


"탱고는 배우고 싶다고 배우는 그런 춤은 아니에요. 운명처럼 다가오는 춤이죠. 제가 처음 탱고를 배울 때도 운명처럼 탱고는 제게 다가왔습니다. 데이빗 님에게도 그런 것 같아서요. 반가워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하신 거죠?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가만히 밀러의 말을 듣다가 자리를 뜰 생각이었는데, 운명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반응하고 말았다. 


밀너는 조금 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운명은 말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운명이겠죠? 운명은 지금에서는 알 수 없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야 알 수 있는 것이죠. 홍대라는 곳에서 여러 춤 중 탱고를 만나 배우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 것 같으세요? 재밌지 않나요? 벌써부터 론다를 휘저을 데이빗 님을 상상하니 기대가 되네요. 앞으로 잘해봐요. 기대할게요."


"배우기로 했으면 최선을 다해야죠. 다만, 운명인지는 모르겠네요.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그거면 됐죠. 그거 알아요. 탱고를 설명할 때 가장 시적인 표현으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네 개의 다리 하나의 심장, 아마 데이빗 님은 이 탱고라는 타일에서 벗어나실 수 없을 것 같네요. 답을 구하는 것 같거든요. 열심히 답을 구해보세요. 그 답이 탱고 안에 있기를 빕니다."


밀러는 그 말을 뒤로 내게 포옹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이 인사는 탱고 스타일이에요. 다음에 만나도 이렇게 인사해요."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다른 수강생들을 향해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그의 뒤통수에 꾸벅 인사를 했다. 조이는 휴게 공간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쉬는 그녀를 방해하기 싫어 조용히 문을 열고 아카데미를 빠져나왔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며 밀러의 말을 떠올렸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예의를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말은 어쩐지 머릿속을 맴돌았다. 계단을 지나 지상에 도착했을 때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가시지 않은 거부감이 있었다. 고개를 몇 번 흔들고는 정신을 차렸다. 남의 말 몇 마디에 흔들릴 정도로 나약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의 말을 머릿속에서 지우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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