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ho 1
오쵸(Ocho) - 벗어난 줄 알았지만, 결국 그 자리에 있었다. 무한히 반복되는 굴레에서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하지만, 사실 그 흐름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각자의 마음에 따라 시간의 밀도와 속도가 달랐다. 특히 피하고 싶은 일일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흘렀다. 그렇게 피하고만 싶던 날이 결국 오고야 말았다.
아침부터 날씨가 지나치게 쨍했다. 그런 날씨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오늘따라 더 초라하고 어수선해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는 좀처럼 정돈되지 않았고, 어중간한 길이의 머리카락은 답답함을 더했다. 피부 여기저기 돋은 트러블은 마치 관리를 포기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중요한 미팅이었기에 적어도 겉모습만큼은 단정해야 했다. 간신히 머리를 정리하고, 트러블 패치를 붙이며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원치 않았던 그 시간이 다가왔다.
약속 장소인 안국역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자주 가는 곳이 있다며 나를 북촌으로 이끌었다. 익숙한 거리였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청와대가 나오고, 예전에 추억이 담긴 전시회도 열렸던 곳이었다. 어쩌면 그때 알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추억이 상처로 남을 줄 알았다면, 그 길을 이렇게 걸었을까.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거리를 두고 맨 뒤에서 걸으며 눈치를 살폈다. 걸으면서도 그들의 시선과 행동이 신경 쓰였다. 마치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조용한 북촌의 카페에 도착했다. 자리로 안내받고 인터뷰를 준비했다. 녹음기를 켜고 노트북을 펼치는 나를 보고 김수호 신부가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어떻게 지냈어요?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네요.”
여전한 그의 인자한 미소에 순간 울컥했지만, 감정을 억누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저는 뭐...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죠.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가는 중이에요.”
“그래요?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하네요.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이것도 주님의 뜻이겠죠.”
“그러게요. 만날 사람은 만난다더니, 우리가 그랬나 봐요. 잠시만요, 몇 가지만 더 준비하고 이야기 나눠요.”
나는 그의 사담을 잠시 멈추고 본격적인 인터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준비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었다. 무언가 새로운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수호 신부 옆에서 환히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얼른 시원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