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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른손 Apr 11. 2019

<상실의 시대, 견고함에 대한 찬사.>

06. 밀크 누가와 브랜디. 시대를 넘어선 당신들의 관계.

많은 세월을 견딘 브랜디가 우리에게 주는 맛과 향은 그 기간만큼이나 깊다. 각 얼음을 띄운 브랜디 한잔과 정성스레 만든 누가 한입이면 우리가 겪어온 그동안의 노고가 보상된다. 


법과 관습, 사회적 제도와 풍습은 시대를 걸쳐 상당히 '개인주의'에 입각해 변해왔다. 각 개인이 가질 권리와 편의에 집중하여 발전한 법과 관습은 인간관계의 또 다른 현상을 만들어냈다. 바로 '가볍고', '편리한' 인간관계. 


본래 인간은 무리를 짓거나 짝을 지어 생활해왔다. 굳이 나와 다른 미지의 누군가와 짝을 이루는 데에는 2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먹고사는 문제, 종족번식의 문제에 관한 물리적 생존. 교감과 공감을 통한 외로움의 탈피, 정서적 생존을 위해 짝을 짓는다. 우리는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 가정과 미래를 설계하며 외로움과 배고픔을 달래 왔다. 


'Trendy'


그러나 더 이상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이 집단을 이루는 행위, 상대방과의 파트너십을 맺는 행위에 대해서는 게의치 않는다. 오롯이 개인의 행복과 감정, 이윤에 최적화된 사회적 제도는 '단체'와 '배우자'에 대한 필요성을 상실하게 한다. 이혼의 절차는 간편해졌고, 이별과 격리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 역시 옛날과는 많이 다르다. 개인의 의지를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명목 하에 인간관계의 무게는 더욱 콤팩트해지고 경량화되었다. 


관계의 맺고 끊음이 빠르고, 전자적인 통보의 방식이 도입되면서 간편해졌다. 입사지원에 실패한 사람이 이메일로 불합격 통보를 받듯이, 그동안의 인간관계 역시 문서화되어 메시지와 이메일로 단 몇 초 만에 깔끔하게 정리된다. 관계의 시작과 끝은 모두 자판의 'Enter'키에 달려있다. 


'Old-fashioned'


구시대적 관계의 시작과 종결은 촌스럽다고 치부되곤 한다. 과거의 연인들은 연애를 시작할 때,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자했다. 또한 끝을 맺을 때 역시 공을 들여 직접 보고, 느끼고, 만지며 완성했다. 이러한 '구식'의 연애방식과 사회생활은 묵직하고 여운이 남았다. 


그 과정과 단계가 길고 복잡했기에 관계의 소중함 역시 남달랐다. 움직여 노력하고, 많은 시간 고민하며 상대를 배우고 터득하는 과정은 쉽사리 관계를 포기하고, 버리지 못하게끔 우리를 다잡아주었다. 손편지와 기사도 정신, 무릎 꿇은 고백은 용기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거운 의미를 지녔으며, 어떠한 외부적 유혹에도 끄떡없는 철옹성과 같은 관계를 형성한다. 그들에게 시간이란, 의미가 '있는 것'과 동시에 '없는 것'이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순간의 '기지'와 '용기'들, 변함없는 마음속 그들만의 '미래'는 너무도 투명하고 단단하다.  


상대방과 5년, 길게는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한다는 것, 그 끝에 다시 한번 평생을 약속하는 것. 장기 연애 및 결혼. 지금에 와서는 시대의 트렌드에 뒤처진, 유행에 맞는 방식의 연애는 아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시대를 역행하며 대세를 따르지 않고 묵묵히 그들만의 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 깊은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어느 날 '비혼'이 주류가 되고 '연애' 자체가 차선책이 되어버렸을 때, 우리는 그들을 우러러볼 것이다. 


희귀하고, 고결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숭고하기 때문에.

긴 시간 깊은 맛을 자아내는 브랜디처럼 세상 유일한 의미가 될 그들의 역사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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