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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른손 Apr 11. 2019

<회고록#2 - 안타까운 그대, S>

성숙의 시작. 홍시와 매실주.

그 무렵 미숙한 연애로 회의를 느낀 나는 진실되고 성숙한 연애를 갈망했다.

2학년에 진학하고, 2학기에 입대를 신청하면서 나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진실된 상대를 찾고 있었다.


대학 동기의 소개로 S를 만났다. 소개팅은 처음이었기에 익숙하지 않은 만남의 방식에 나름대로 고민하고, 공부하며 소개팅을 예습했었다. 아무 소용없는 짓이지만 말이다.


소개팅 당일날, 우리는 건대입구역 던킨도너츠에서 만났다. 마음대로 펄떡이는 심장을 부여잡고 저 유리문을 열고 들어올 '미지의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심상치 않은 공기의 흐름과 분위기의 전환을 감지했고 그녀가 문을 열고 옅은 미소와 함께 두리번거렸다.


"여기에요."

"아! 안녕.. 하세... 요."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고 서로에 대한 대략적 소개가 이어졌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모든 모습을 담기 위해 눈을 바삐 움직였다. 그녀는 김윤아를 닮은 눈웃음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직장인이었으며, 김연우의 음악을 좋아하는 가녀린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말과 행동은 털털했지만, 내면은 매우 여리고 고운, 안과 밖이 상반된 매력이 있는 그녀였다.


그 날은 정말 하루 종일 어버버거렸던 것 같다. 머리는 매 순간 주기적으로 공백을 갱신했고, 중간중간 바위보다 무거운 침묵 때문에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그녀를 바라보고는 수시로 뜨거워지는 내 빰과 얼굴에 어쩔 줄 몰라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통했다. 서로의 관심사와 취향, 가치관이 비슷했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동질감과 소속감이 무엇보다 따듯하게 다가왔다. 카페에서 자리를 옮겨 진부 하디 진부한 소개팅 남/녀들의 음식 '파스타'를 억지로 목구멍으로 쑤셔 넣으며 애써 대화를 이어갔다. 그 날 그 파스타가 무슨 맛이었는지, 어떠한 질감이었는지, 레스토랑의 분위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분위기였는지 지금에 와서는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다.


당시 나는 아직까지 초반에 돌직구를 내리꽂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소개팅 당일날 나는 그녀에게 청계천을 한번 걷자고 제안했고, 맥주 한 캔과 함께 시원한 물소리와 세련된 서울 중심부의 풍경을 감상하며 유유자적 걸었다. 우리는 잠시 근처에 앉아 주변의 어느 연인과 비슷한 모습으로 침착하게 대화했다.


" 음... 바로 당일에 얘기하기는 좀 이를 수도 있지만, OO 씨 마음에 들어요."

"네...?"

"계속 만나보고 싶어요. 그저 내 마음만 전달한 것뿐이에요."

"오해 말아요. 당장 답을 바라진 않아요. 나중에 답해줘요."

"좋아요."


솔직히 놀랐다. 나는 내가 그렇게 대담한지도, 처음 보는 자리에서 그런 무리한 돌직구를 받아줄 거라고는 눈곱만치도 생각하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한 직구에 그녀는 잠시 당황하는 듯 보였으나 이내 씩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마음속에서 한바탕 파티가 벌어졌다.


그렇게 한 달간 그녀와 꾸준히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바쁜 직장인의 생활에 기꺼이 나의 생활패턴을 맞춰 그녀를 보러 서울에 다녔다. 설레는 마음과 서로를 점점 더 알아간다는 기쁨. 그녀와 나의 마음의 간격이 좁아져간다는 것을 느끼며 고백을 다짐했다. 한 달 반 정도 지났을까, 나는 정식으로 다시 고백했고 S와 나는 연인이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여기저기 S를 자랑하고 다녔다. 이런 사람이다. 이쁘지 않냐. 그렇게 묻지도 않은 친구들과 주변인들에게 마음껏 나의 행복을 티 냈다. 그녀와 함께 손잡을 때의 찌릿함, 칵테일 한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역사와 깊은 감정을 공유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 했고 서로에게 부족함이 없는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변하려 했다.


서로의 내면을 공유한다는 기쁨과 연애의 또 다른 참의미를 그렇게 깨달아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또 다른 모습의 이별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삶의 차이'. '경험의 차이'. 아직 22살, 21살의 우리는 모두 경험해본 것이 적었기에 상대를 품어줄 아량과 배려가 크지 못했다. 하루를 숨 돌릴 틈 없이 꽉꽉 채우는 직장인의 삶과 아직은 여유로운 대학생의 삶은 충돌을 일으켰다. 나는 사회인으로서의 자신의 직업과 일의 무게를 알지 못했기에 일할 때 연락이 닿지 않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는 그날 하루 지친 마음을 나를 배출구로 삼아 쏟아내려 했다. 서로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다름은 우리의 갈등을 점점 더 키워갔고 싸우고, 호소하고, 이기적인 말들을 주고받았다. 감정의 골은 깊어져 갔고, 우리는 아직 대처법을 몰랐기에 상대방을 비난했었다.


그녀가 한바탕 회식자리가 끝나고 나에게 전화했다. 당시 나 역시 학교 수업이 끝나고 08학번 형들과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보세요? 응, 오빠~ 나 힘들어 죽겠어."

"왜 또, 누가 술 강요했어?"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짜증 나."

"에고... 뭐가 그렇게 짜증 나~"

"이러고... 저러고... 요로고..."


항상 이런 식. 나는 아직 이렇게 술자리가 즐거운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녀는 항상 괴롭고 짜증 나는 것일까. 당시 그녀가 하는 이야기와 감정들은 부정적으로 나의 마음에 밀려들어와 침전물처럼 계속 쌓여갔다. 또한 여자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법' 따위는 모르는 단순 무식한 놈이 바로 나였다. 따라서 그녀의 감정들은 계속해서 해소되지 못한 채 내 주위를 부유했다. 훗날 알고 지내던 누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야, 이런 답답한 놈아."

"왜요?"

"여자 마음은 왜 그럴까 분석하는 게 아니야."

"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그냥 들어주는 거야."

"맞장구는 가산점이고."


그때만큼 한심하고 부끄러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여자의 마음에 대해 무지했고, 공감이라고는 쥐뿔도 해주지 못했다. 우리는 서서히 멀어져 갔고, 자연스레 각자의 이별을 선택했다.


몇 달 후, 나는 입대를 했고 헌병으로써 고단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다. 일병 3호봉이었을까, 싸지방(싸이버 지식정보방)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세간의 소식과 나의 존재를 처량하게 알리고 있을 때쯤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빠. 잘 지내?"


쿵쾅쿵쾅. 심장은 아래, 위로 격하게 치솟았다가 내려앉았다. 맙소사, 더 이뻐졌네.


"어 잘 지내지ㅋㅋㅋ 진짜 반갑다."

"아ㅎㅎ 궁금했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렇게 연락을 이어가던 우리는 내가 상병으로 진급하기 직전 휴가에서 다시 재회했다.


"그때는 내가 정말 미안했어. 정말 지나고 보니깐 잘못한 게 많더라. 아쉬워"

"아냐 뭘~ 괜찮아. 다 지나간 이야긴 걸 뭐."


그동안 가끔 보고 싶었다고. 그리운 날들도 여럿 있었지만 용기가 없어 다시 다가가진 못했다고.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고, 다시 그녀와 나의 과오와 오류들을 바로잡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는 2시간쯤 맥주를 홀짝거리며 별 실속 없는 이야기에 웃고 떠들었다. 차마 그 말들을 내뱉을 수 없었다. 나의 처지가, 내가 속한 환경이 그녀에게는 떠안고 가야 할 크나큰 과제이자 짐이 될 수 있었기에.


"오빠, 이제 가봐야겠다. 나 친구들이 강남에서 기다린데."

"어.. 어.. 그래. 나 전역하고 또 한 번 보자. 그때는 좀 제대로 된 곳 가서 맛있는 거 사줄게."

"아이고, 됐어요. 전역이나 빨리 하셔."

"그때 다시 한번 또 보던가. 갈게, 오빠."

"그래. 고맙다. 잘 가~"


서로 약속했던 그날의 약속은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내가 다시 사회로 복귀하게 전에, 이미 그녀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였다. 안타깝고 정말 아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후련하게 그녀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못다 한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후 이별을 계기로 우리는 1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또 한 번 만났다. 그때는 서로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며 소주 한잔을 기울였다. 둘 다 최근의 이별에 힘들어하고 있었고, 연애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딱 거기까지. 정말 딱 거기까지였다. 깔끔하게 서로의 고민과 슬픔을 공유하고 이번에는 자연스레 정말 닿지 않는 곳으로 멀어져 갔다.


홍시와 매실주는 숙성이 잘된다면 그 풍미가 참 달달하다. 그러나 변화의 과정에서 잘못된 환경과 방법으로 숙성을 한다면 상해버리고 만다. 나와 S의 관계가 이렇지 않았나 싶다.


미련하고 후회 많은 연애와 만남 끝에 올바른 성숙과 대화의 방법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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