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싫어하는 상황을 아는 것
예전에는 적성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뭐지?’ ‘어떤 특성의 업무가 나와 잘 맞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주로 던졌다. 지극히 ‘일의 종류’에만 신경을 썼던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똑같은 일이라도 즐겁게 할 때가 있는 반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도대체 그 차이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곰곰이 따져보니, 나는 업무 자체의 특성만큼이나 어떤 업무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령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나는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원인은 아마 내가 돌발적인 대처에 약한 성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평소에 익숙하게 해왔던 일이라도, 시간이 급박하다는 인식이 생기게 되면 어딘가 모르게 버벅거리게 된다. 반면 충분한 재량과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어떤 일이든 차근차근 해나갈 수 있다. 조금 선호하지 않는 일이더라도 그런 시간적 자율성이 있다면, 내 식대로 즐겁게 계획을 세워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마감이 늘 존재한다. 어쨌든 기한 안에 일을 끝내야 하며, 개인의 특성을 고려해서 기한을 무작정 다 늘려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직장에서 개인에게 시간적 자율성을 줄 수 없다면, 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첫째는, 출근 시간의 자율적인 조정(이라 쓰고 일찍 출근하기라고 읽는다ㅜㅜ)이다. 나는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출근을 한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30분~1시간 정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찍부터 부지런히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보통 일찍 출근해서 하는 일은 휴식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흐르는 정적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나서, 오늘 해야 할 일 목록을 살펴보고 하루의 계획을 짠다. 사실 아침에 일찍 와서 일을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아침의 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처리가 좀 더 잘 된다. 나는 임박하게 출근해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면 늘 무언가를 빠뜨리거나 하는 식이다.
시간적 자율성을 스스로 보장하기 위해 내가 하는 두 번째 일은 주말에도 일을 조금 해놓는 것이다. 이걸 누군가에게 말하면 ‘일에 미쳤어?’ 내지는 ‘금쪽같은 주말에 쉬기나 하지’라는 말을 듣겠다. 하지만 내 선에서는 주말에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남는 시간에 한두 가지 일만 더 처리해놓는 정도라서 부담은 없다.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한 주치 일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그것을 평일에 몰아서 하게 되면 n/5이 된다. 하지만 나는 좀 더 여유를 느끼기 위해 n/6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이다. 워커홀릭이 되고자 함이 아닌, 내가 일을 하는 속도감을 스스로 조절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일 처리가 굉장히 여유로워졌고, 훨씬 더 만족감을 느끼며 지내고 있다. 물론 나의 방식을 타인에게 권유하고자 함은 아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싫어하는 업무 상황이 따로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지만, 어떤 이는 일과 생활이 분리가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평일에 압축해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일을 잊고 온전히 쉬는 게 필요하다. 요지는, 자신이 싫어하는 업무 상황을 알고 그에 맞게 환경을 조정하면 업무 만족도를 늘릴 수 있다는 점이다.
적성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에는 어떤 일을 할 때,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를 무척이나 따졌다. 지금도 물론 ‘사람마다 적성이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어떤 일을 하는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 자체만큼이나 업무를 처리하는 상황도 직업 만족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자기가 하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다면(그리고 당장에 이직을 할 수도 없다면), 자신이 주로 스트레스를 느끼는 상황을 파악하길 제안하는 바이다. 그것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길 바란다. 어쩌면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다소 불만스러운 일도 상황이 바뀌면 잘 맞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