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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onsoo Jan 16. 2021

불안과 이상한 나날

코로나 19, 조각조각의 일기


이상한 기분. 코로나 19가 사라지지 않은 채 처음 맞는 새해이다. 문자로 나누는 덕담에 건강하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적는다. 작년 1월 사진을 꺼내 보니 우린 운동장에서 연을 날리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다. 너른 하늘 아래 앞니 빠진 입으로 방긋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바람도 없던 찬 공기 속에 높이 연을 날려보겠다고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고, 코로 입으로 더운 숨을 몰아쉬며 소리 내 웃었다.

      

2020년 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게 되면서 나와 아이는 많은 시간 둘이서 집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낮에는 개천이나 뒷산으로 가 바깥바람을 쐬었고, 사람과 인사하고 싶어 문이 열려있는 작은 서점을 돌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 매일 출근하는 남편이 걱정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애써 사회에서의 자리를 지켜주고 있음에 그나마의 일상이 버텨지고 있는 것 같아 감사했다.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보는 것뿐이 할 수 없는 내가 초라하고 무능히 느껴지기도 했었다. 분명한 수고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나와 무척 싸웠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을 괴롭히지 말자고 다짐했다.


전진하는 감각을 찾으려 기록하기를 시작했다. 낮잠을 자지 않는 7살 외동아이와 종일 지낸다는 것은 개인의 영역과 시간이 크게 줄어드는 일이다. 지면에서라도 내 공간을 만들고자 틈틈 일기를 썼는데 그것마저 아이가 자주 침범을 해왔다. 그래서 ‘침범’이라는 단어를 밀어냈다. 아이의 마음은 그냥 나랑 같이 하고 싶었던 것이니까 ‘함께’ 쓰는 낙서 일기를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걸음걸음 쌓은 일기장이 지금 우리의 한 권 보물책이 되어있다.

 

‘불안’을 알게 되었다. 일상적 불안이 아니라 신체적 아픔을 동반하는 불안을 겪었다. 처음엔 그 감정이 우울함인 줄 알고 우울이 나아질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것이 우울과 다른 ‘불안’이라는 것을 알았다. ‘불안’이라는 이름을 찾은 것이 맞았는지 그때부터 조금씩 나아졌다. 느닷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는 일이 줄어들었다.     


엄마는 다시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집에 있으면 자꾸만 괴로웠던 옛 생각이 떠오른다고 하셨다. 전화 통화로 엄마의 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엄마의 이야기 속에 함께 겹쳐질 수밖에 없는 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엄마의 억울함과 하소연 속에는 내가 어릴 적엔 이해할 수 없었던 날들의 단서가 곳곳 숨어있다. 엄마가 그때 정말 많이 힘들었겠다고 위로하면서도 가슴 한켠 서늘하다. 마음에 박혀있던 가시가 새로 알게 되는 조각에 기다렸다는 듯 더 예리하고 날카롭게 다듬어진다. 엄마는 풀어내야 했고, 나는 모르는 것이 나았을 다 지난 이야기들. 마음이 까맣게 물드는 밤일지라도 나는 잠을 잘 수 있다. 엄마는 그날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셨겠지.


친구들이 늘 건강하기를 기도한다. 친구의 소중함을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나처럼 겁이 많은 성격이라 거의 만나지 못했었는데, 게릴라 작전처럼 약속을 잡았을 때 반가워서 멀리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걸어오던 귀여운 친구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많은 시간을 함께 쌓지 못해 멀어질 것 같다 생각했던 친구와도 여전히 따듯한 온기가 남아있음에 고맙다.     


거리 때문에 듣지 못했던 그림 수업을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린다는 것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었던 발걸음이었다. 음악으로 힘을 많이 얻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좋은 음악을 들으면 힘이 채워진다. 음악가에 대한 감사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만나서 함께 공연을 보고 싶었던 친구들에게 음반을 선물로 보냈다.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썼다.      


새해를 맞아 어디라도 나가고 싶어,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 같은 광장을 찾았다. 하지만 정말로 사람 없이 적막한 광장을 보고 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겪고 있어도 믿기 어렵고 익숙해지지 않는 날들이다.  들어오는 불안을 다시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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