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작가 온수와 교육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물꿈이 함께하는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입니다.
'엄마'와 '아빠'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가 만나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나눕니다. 멀고 깊은 이야기도, 가깝고 가벼운 이야기도 담습니다.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는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토요일에 공유됩니다.
대체로 소심하지만 의외로 종종 대범한 나는 학생 시절 늦잠을 잔 날엔 가방을 집에 두고 나왔다. 교문에서 지각생을 잡는 기준이 책가방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잔머리를 쓴 것이다. 잠시 학교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학생인 척 멀찍이서 천천히 걸어가면 잡히지 않았다. 교과서는 모두 사물함에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사실 이것이 대범한 것인지 겁이 너무 많은 것인지 판명하기는 어렵다. 잡히는 게 너무 무서워서 어떻게든 굴린 잔머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 피구 영웅이었는데, 그 이유 또한 공에 맞는 게 너무 무서워서 심하게 열심히 피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8살이 되어 처음 초등학교 입학을 한다. 입학식 전날 나는 쿨쿨 자는 아이 옆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준비물을 챙겨 넣은 아이의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잊어버릴까 문간에 기대어 두고도, 내일 입을 아이 옷가지와 내 옷가지도 가지런히 탁자에 올려두고도, 다시 일어나 남편의 셔츠도 문고리에 걸어두고도, 카메라에 배터리를 잘 충전해두었나 불빛을 확인해보고도 잠이 오지 않았다. 소풍 전 날 설레어 잠을 못 잔다거나, 시험 전 날 긴장되어 잠을 못 이룬다거나 하는 일은 내 생에 없었는데, 아이의 첫 등교날에 설레고 긴장되어 도무지 잠이 들지 못했다.
오전 6시 30분, 넋을 놓았다가 깨어난 듯 일어났다. 우리 집은 화장실이 하나라서 준비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는 내가 먼저 씻고, 그다음에 남편이 일어나 씻고, 그다음에 아이가 일어나 씻는 것으로 화장실 사용 순서를 정했다. 한번뿐인 초등학교 입학 사진을 예쁘게 남기기 위해서라도, 아이 담임 선생님과 단정히 첫인사를 나누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꼼꼼히 외출 준비를 했다. 아침밥을 간단히 차려두고 준비물 체크를 하고 나니 내 몫의 아침 채비를 다 한 것 같아 조용히 식탁에 앉아 주섬주섬 다나는 남편의 동선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조금 더 자게 두고 카메라 점검을 했다. 충전은 잘 되어있는데 고장이 나있었다. 며칠 전까지 잘 사용했던 것 같은데. 역시, 그럼 그렇지.
“왜 그렇게 긴장을 하고 있어요? 그냥 학교에 가면 되는 거지. 카메라는 미리 잘 체크해두지 그랬어요?” 남편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남편도 나름 먼지 털어 준비해둔 자동카메라 거치대가 고장이 난 모양이라 둘이 같이 허허 웃고 말았다. 필름 카메라엔 필름이 없었고, 결국 그냥 휴대폰 카메라로 단출히 찍기로 했다. 부스스 일어나 세수하고 나오는 새집 머리 아이의 머리를 빗기고 갈아입을 옷을 건네주고, 아침밥을 먹고 나니 첫 등교 준비가 모두 끝났다.
‘아버님, 요즘 코로나 시국이라 입학식을 진행하지 않는대요. 아이는 10시에 들어갔다가 11시에 나오고 교문 앞에서 사진 찍는 것은 오후 1시부터 허용한다고 해요. 1시에 오셔서 사진 찍고 늦은 점심 함께 먹어요. 지하철역 2번 출구로 오세요. ’
입학식에 오시는 시아버님께 전화로 다시금 일정을 알려드렸다. 어느새 아이는 직접 고른 파란색 새 책가방을 메고 빨리 나가자고 현관 앞에 서있다. 큰 학교에도 가고 새 친구들을 만난다고 기대가 되는 모양이다. 그 모습이 대견하고 귀여워 웃음이 났다. 마스크를 꼼꼼 잘 씌워서 우리는 드디어 집을 나섰다. 엄마 손, 아빠 손 잡고 뒷 산길을 걸어 학교로 가는 길. 그런 장면이 매 순간이 감사하다. 평범하지만 쉽거나 당연하지 않은 풍경임을 안다.
코로나 19로 인해 거리두기 수칙이 있어 학교마다 입학식 모습이 조금씩 다 다른 것 같다. 우리 학교는 등교 시에 어른들은 교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아이만 도움 선생님께서 인솔해주신다. 기념사진은 고학년 학생들도 모두 하교한 오후에 특별히 지정된 포토존에서만 찍을 수 있다. “잘 다녀와. 마스크 벗지 말고...” 아이와 긴 인사를 나누고 싶었는데 아이는 벌써 자기 반 깃발을 찾아 달려들어갔다.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찰칵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오랜만에 남편과 손을 잡고 걸었다. 많지 않은 시간이지만 집에 가긴 아쉬워 근처 작은 커피 가게에 들어갔다. 옆자리에는 입학한 아이들의 엄마 모임이 있는 것 같았다. ‘벌써 서로 친해 보이는데 같은 유치원 출신인가?’ 생각했다. 남편과 커피를 주문해두고 나는 궁금해하고 계실 양가 부모님께 등교 사진을 전송하고 전화를 드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편이 조금 서운해하는 눈치여서 얼른 마치고 살짝 다독다독 해주었다. 숨을 돌리고 아직 따듯한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우리는 ‘우리가 결혼해 학부모가 되다니’ 하는 소회를 나누었다.
아이가 하교할 시간이 다 되어 학교로 다시 갔더니, 다른 부모님들이 교문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서있었다. 우리는 오후에 다시 사진 찍으러 올 때 꽃다발을 사 오려고 했는데! 아이가 혼자 서운해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시간이 남아 우리는 겨를 없이 꽃집으로 뛰었다. “나 때는 입학식 날 학교 앞에서 꽃 파는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없나 봐!” 뛰면서 남편이 말했다. 꽃을 포장하는데 아이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아이랑 교문에 나왔다고 어디 계시냐고 하셔서 죄송한데 5분만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바쁘셔서 경비 아저씨께 아이를 맡기고 가시겠다고 하셨다. 후회가 밀려왔다. ‘꽃 사러 오지 말걸, 그냥 계획대로 할걸, 우리 둘 중 한 명은 교문에서 기다리고 한 명만 꽃집에 왔어야 했는데, 담임 선생님과의 첫 대화가 이 모양이라니.’
우리는 꽃다발을 들고 또 뛰었다. 교문 앞에서 아이가 울고 있었다. “미안해, 입학 축하해주려고 꽃다발 예쁜 거 사서 오느라 조금 늦었어. 많이 놀랐지?” 안쓰러워 달래주는데 우는 이유가 그게 아니라고 했다. 아이는 교실에서 자기만 혼자 퀴즈 사탕을 못 받아서 우는 거라고 했다. “그랬구나, 속상했겠다. 다음엔 꼭 받을 수 있을 거야!” 이야기해주면서, 속으로 우리가 늦어서 우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살짝이 다행스러워했다. 그리고 내심‘아니 왜, 선생님께서는우리 아이만 사탕을 안 주신 거야, 첫 등교날인데.’ 하고 서운해했다.
2021년 3월 2일, 한 명의 초등학생과 함께 이렇게 어설프고, 오만가지로 마음이 분주한 초보 학부모 하나가 세상에 탄생했다. 다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오늘 학교 어땠냐고 물어보면서 나는 또 '아이 점심이 늦을 텐데 간식으로 뭘 주지, 내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서류는 잘 챙겼나, 아버님 오시면 뭐 시켜먹지, 입학식 날 아이 이름표 스티커 주신다고 했는데 설마 오늘 다 붙여야 하는 건 아니겠지. 아차 실내화에 이름 안 적어 보냈다. 내일부터 등교시간 몇 시인지 다시 확인해야겠다. 첫날부터 숙제는 없겠지?' 하는 생각을 아이보다 겨우 몇 센티 더 큰 머리에 가득가득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