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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onsoo Apr 17. 2021

[너를 통해 나를] 풀꽃 노래

2021년 4월 / 춤추는 풀, 춤추는 꽃

그림 작가 온수와 교육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물꿈이 함께하는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입니다.


'엄마'와 '아빠'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가 만나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나눕니다.  멀고 깊은 이야기도, 가깝고 가벼운 이야기도 담습니다.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는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토요일에 공유됩니다.



노트에 끄적여둔 쑥스러운 내 동시를 오늘도 다듬고 있는데, 아이가 오더니 무릎 위에 앉아 시를 주욱 읽었다. 아이의 인중이 쭉 길어지더니 웃으며 "엄마! 시가 너무 좋아요!" 하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혼자서는 재미있게 시를 쓰고도 내보이지도 못했던 조글조글한 부끄러움이 노란 봄 빛을 받아 천천히 피어지는 나뭇가지의 새 잎사귀 같아졌다. 네가 좋다고 해주었으니 이 시는 이제 부끄러운 시가 아니게 되었다. 세상에 소중한 한 명이 행복하게 웃으며 정말 좋다고 해주었으니까. 가족에게 응원받는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응원을 받아 여기 나의 처음 시를 보인다.



춤추는 풀,

춤추는 꽃          


#1

이야기하고 싶은데

참 좋은데, 말하고 싶은데

어느 순간에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     

자연스럽게 적당한 때를

찾을 수가 없어

느닷없이 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렇게 노래로 만들었어     

있잖아 저기 풀이 참 예쁘지 않니     


#2

어제는 주인아저씨가

나를 뽑아 버렸네

오늘은 길고양이가

나를 먹어버렸네      


내 이름은 잡초

좋은 말은 풀꽃      


할머니 옆에 오래 있고 싶네

예쁘게 보아주는 눈빛 앞에

일광욕하고 싶어     


춤을 추고 싶네

버스를 타고 싶네

친구를 만나고 싶네     

저기에도 여기에도

전봇대 아래에도

하수구 밑에도


도시 구석

작은 틈 사이     

안녕, 나 여기 있어           


#3     

바람 바람 바람꽃

바람을 만났네     


흔들흔들 흔들 꽃

춤을 춤을 춤을 추네     


#4     

이 꽃 어디서 났어요?     


예쁜 꽃을 보여주었더니

아이가 묻네     


이 꽃 어디서 났어요?     


너네 집 앞에 있어

우리 집 앞에 있어     


#5

쪼그려 앉아 보면 보이는 것들     


달팽이 공벌레 개미

실오라기 플라스틱 조각

돌멩이 솔방울 도토리

무당벌레 캔 뚜껑 매미 껍데기     


쪼그려 앉아 보면

이런 쪼가리 저런 쪼가리      


흐르는 물 물고기도 보고 싶네     


#6

아스팔트 도로에서

시멘트 틈에 빼꼼히 나온

풀이 보여도

예뻐도 귀여워도

대견해 보이더라도

땅바닥만 보면 안 돼


차조심해

조심해서 다니도록 해          


#7

풀을 그려야지

겨울엔 풀이 없으니

허전해 심심해

할 이야기가 없어

그러니까


풀을 그려 넣어야지     


골목에

계단에

주차장 벽에

굴다리에


모퉁이 돌면 보이는

저기 구석에

손 흔들 듯

반갑게    


#8

앵콜송     


앵콜송이 없어서 어떡하죠?

 이야기 더 듣고 싶으신가요     


그럴 리가

진짜

세상에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준비해 볼게요     


#9

안녕 내 아이들아

너는 풀의 자식으로 태어나

허공으로 날아가네

어디든 작은 틈 한 줌 흙덩이라도

만난다면 그곳이 네가 있을 곳이란다     

부디 좋은 곳에 내려앉아

세상의 틈을 숨 쉬게 하렴





'물꿈'님 다음 이야기는 2021년 5월 1일에 공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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