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의 빛깔, 우도 블루

빛과 수심이 만들어낸 바다의 색채

by 김유연

거의 네 편의 글에서 우도를 언급했다. 그만큼 우도는 제주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일정이 너무 무리스럽지만 않다면 꼭 가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이전 글에서는 우도에서 힘을 많이 써서 힘들고 피로한 것처럼 썼지만, 실은 그 이상으로 멋진 풍경이 잔뜩 있었다. 오로지 우도만을 위한 글 한 편을 따로 적어본다.




이전에 언급했듯 원래 우도를 가려던 날은 비바람 때문에 배가 뜨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다시 맑게 갠 날, 여행 4일 차, 성산항에서 우도로 향하는 페리에 올랐을 때는 마음이 한껏 들떠 있었다. 배가 조금씩 섬에 가까워질수록 바다 색이 달라졌다. 제주 본섬의 바다가 짙고 단단한 파란색이라면, 우도 앞바다는 더 맑고 투명한 빛을 띤다. 연한 민트와 에메랄드, 밝은 청록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빛이 바닷물을 넘어 바닥을 훤히 비춘다.


이전에 한번 본 광경인데도 잠시 멍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색이었다. 누군가 내게 우도의 매력을 묻는다면 무엇보다도 '색'이라 답할 테다.


IMG_9809.jpeg 우도행 페리에서 찍은 우도 앞바다. 코발트 블루(cobalt blue)에서 아주르(azure) 사이의 색으로 본섬 바다보다 살짝 밝다.


하우목동항에 도착해서는 자전거를 빌리느라 조금 애를 먹었다. 픽업이 어긋나고 기다리는 시간이 생겨 마음이 조급해졌다. 바로 앞에 저렇게 예쁜 바다가 있는데 움직일 수 없다는 건 생각보다 답답한 일이다. 그래도 결국 전기자전거를 빌리고 안장에 올라 첫 페달을 밟는 순간 초조함과 답답함은 금방 사라져 버렸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빈백사였다. 서빈백사는 홍조류가 퇴적되어 굳은 홍조단괴 해변으로, '산호 해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도에서는 '산호해수욕장'이라는 이름으로도 찾을 수 있다. 서빈백사는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지형이라 천연기념물 제438호로 등록되어 있다.

검은 현무암과 대비되는 새하얀 해변, 그 앞에 놓인 밝은 물빛. 제주도에서 익숙하게 보이는 검은 돌 해안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아름다운 풍경에 자전거에서 내려 잠시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 풍경만으로도 벌써 우도에 온 의미가 있었다.


서빈백사에서 해안가를 따라 섬의 북쪽으로 올라갔다. 바다 옆을 전기자전거로 달릴 때의 해방감이 매 순간을 짜릿하게 했다. 바닷바람이 얼굴과 목덜미, 팔을 시원하게 훑고 지나가고, 전기자전거는 힘을 조금만 주어도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차를 탈 때와는 또 다른 속도감이다. 더 느리지만, 더 자유롭다. 파도가 가까이서 철썩철썩 소리를 낸다. 그 속에서 온갖 근심걱정이 떨어져 나간다. 이 자유로움 앞에서는 걱정이 붙어있을 도리가 없다.


해안가를 달리다 보면 바다의 색이 시시각각 변한다. 우도 바다는 한 가지 색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얕은 곳은 투명한 터콰이즈 블루, 조금 더 멀어지면 살짝 짙은 청록, 그리고 더 깊은 곳은 짙은 파랑색으로 층층이 변화한다. 햇빛이 잘 드는 구간에서는 수면이 은박지처럼 반짝이고 바람이 잠잠해지면 유리판처럼 매끈해진다. 같은 해안도로를 쭉 달리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파도와 빛이 수면 위를 새로 칠하는 것 같았다.


IMG_9956.jpeg 서빈백사 앞바다는 아쿠아마린(aquamarine)에서 터콰이즈 블루(turquoise blue)로 짙어지는 그라데이션 빛깔을 띈다.


우도 바다가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섬 자체가 가진 성질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도는 약 7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섬으로, 응회구와 용암지대가 겹쳐 있는 이중화산 구조라고 한다. 섬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바다와 마그마가 부딪혀 남쪽의 가파른 화산 지형이 생겼다. 이것이 지금의 우도봉이다. 그리고 흘러나온 용암이 북쪽으로 퍼지며 넓고 완만한 지대를 만들었다. 이렇게 완만한 경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해안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도 급히 깊어지지 않고 얕은 물 구간이 이어진다.


또 우도와 성산 사이 바다는 실제로 수심이 낮은 좁은 수로로 되어 있다. 우도 수로는 평균 수심 약 15m이고,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10m 이내라고 한다. 물이 얕으면 햇빛이 바닥까지 잘 닿고 반사되는 빛도 많아진다. 그래서 짙은 남색보다는 민트, 청록, 에메랄드 빛을 띠게 되는 것이다.


불필요한 과학적 설명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뭐든 알고 보면 더 재밌지 않나. 우도의 색을 애정하기에 그 색의 이유도 알고 싶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변을 실컷 구경하며 자전거를 탔다. 점심은 북서쪽 식당에서 보말칼국수를 먹었다. 해녀가 운영하는 식당이라 그런지 새우, 전복, 보말 등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했다. 원산지 표기에 모두 '제주산'이라 쓰여 있어서 더 믿음이 갔다. 오전 내내 바닷바람을 맞고 달린 뒤라 그런지 더 맛있었다.


혼자 여행할 때의 식사는 더 또렷하게 남는다.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흩어지지 않아서일까. 음식과 공간, 그때의 몸 상태까지 한꺼번에 기억된다. 살짝 초록빛이 감도는 따듯한 국물을 한 숟갈 떠먹고 톳을 넣어 반죽한 칼국수의 감칠맛을 음미한다. 쫄깃쫄깃한 보말이 식감의 재미를 더해준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IMG_0101.jpeg 하고수동 해수욕장의 바다. 색채는 시안(cyan)과 아주르(azue), 혹은 우도 블루


밥을 먹고는 다시 해안선을 따라 돌았다. 또 다른 유명한 해안가인 하고수동 해수욕장에는 소품샵과 카페가 모여있었다. 특히 우도 땅콩과 땅콩을 이용한 각종 디저트, 잼 따위가 많았다. 우도는 화산 분출로 생긴 용암지대 위에 비옥한 토양이 쌓인 땅이라 땅콩이나 마늘을 재배하기 적합하다고 한다. 우도 땅콩은 비교적 알이 작고 맛이 진하다. 나도 한 번 맛보고 반해서 여기저기 나눠줄 소포장 땅콩을 몇 개 사 버렸다.


하고수동 해수욕장은 사람이 꽤 많았다. 커플들과 가족들이 느긋하게 해안을 산책하고 있었다. 서빈백사가 선명하고 낯선 아름다움이라면 하고수동은 좀 더 부드럽고 편안한 인상을 주었다. 얕은 물 위로 햇살이 잘게 흔들리고 파도가 밀려와 모래 위에 투명한 막을 깔아준다.


우도는 작은 섬인데도 해변마다 바다의 성격이 다르다. 자전거를 타고 섬 곳곳을 누비며 달라지는 바다의 인상을 구경하는 것도 우도 여행의 묘미다.




하고수동 해수욕장에서 해안선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비양도(飛陽島)라는 작은 섬이 나온다. 날 비에 볕 양 자를 쓰는데,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마치 새가 날아오르는 모양이라 비양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우도 본섬과는 100m 남짓한 다리로 이어져있어 자전거를 타고 섬 내부까지 들어갈 수 있다.


섬은 작아서 20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이름처럼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유명한데, 비양도의 일출은 우도 8경 중 하나라고 한다. 게다가 제주도에서 가장 먼저 해를 맞는 곳이기도 하다.


비양도는 작지만 둘러볼만한 가치가 있는 섬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해녀가 잡은 뿔소라를 구워주는 식당이 몇 군데 있다. 전복, 뿔소라, 해산물 모둠 등이 유명하다. 또 돌탑이 많고 쭉 이어지는 돌길로 섬 끝까지 걸어가 볼 수 있다.


내게 비양도는 우도를 달리는 여정 중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바다를 길게 걸을 수 있는 휴식 같은 장소였다. 배가 불러 먹어보지 못했지만 오래 우도에 머물 수 있다면 여기서 뿔소라를 먹어봐도 좋을 것 같았다.


IMG_0134.jpeg 돌이 많은 작은 섬, 비양도.
IMG_0141.jpeg 비양도에서 돌길을 따라 섬 끝까지 걸어갈 수 있다.


비양도에서의 짧은 산책을 끝내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여기서부턴 길의 갈림길마다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길을 정했다. 이곳저곳을 쏘다니다 보니 섬 안쪽으로 들어가 면사무소와 보건지소를 만나기도 했다. 관광지가 아닌 생활의 공간을 만나니 또 느낌이 신선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렇지만 외지인이 가득한 작은 섬에서 산다는 건 무슨 느낌일까. 만족스러울까, 답답할까.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 보건지소를 지날 때는 여기에 갇혀(?) 계실 공중보건의 선생님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누가 와 있을까? 나름 아름다운 곳에 배치받아 괜찮다고 생각할까? 얼굴 모를 의료인의 행복을 바라며 시내를 빠져나왔다.


슬슬 섬 한 바퀴를 다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은 우도봉뿐이기에 일단 그쪽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우도봉을 직접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세 시간째 자전거를 타니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게 됐다. 근처의 카페에서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휴식을 가졌다.


참, 그런데 여기 아이스크림이 바닐라맛에 땅콩 가루를 얹은 것이었다. 맛이 없진 않았지만, 미리 알았다면 진짜 땅콩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으로 갔을 텐데. 아쉬웠지만 핸드폰 충전도 하고 푹 쉴 수 있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우도에서의 여정을 달달한 맛으로 마무리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내리막길에서 고속 라이드를 짧게 즐기고 자전거를 반납했다. 네 시간의 여정이 과함도 모자람도 없이 딱 좋았다.


IMG_0188.jpeg 우도봉과 그 앞바다, 색상은 틸(Teal)과 인디고 블루(indigo blue).


자전거 업체 차를 타고 다시 하우목동항으로 돌아가 성산행 페리에 올랐을 때, 무엇보다 선명히 남아 있던 것은 풍경의 형태보다도 그 색이었다. 얕고 투명한 민트와 산뜻한 에메랄드 빛은, '우도 블루'라는 새로운 색으로 명명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정말 아름다운 섬이었다. 수많은 색을 오가며 빛나던 우도의 바다가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다. 네 시간 동안 내가 경험한 것은 햇빛과 수심과 바람이 함께 만들어낸 색(色)의 변주였다.


제주도에서의 다른 장면들이 시간이 지나 점점 흐려진다 해도 우도 앞바다의 물빛만큼은 꽤 오랫동안 또렷할 것이다. 우도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바다내음 가득한 보말칼국수도, 전기자전거의 시원한 질주감도 아닌, 형형색색으로 변하던 바다의 빛깔이라 답할 것이다.


이를테면, '우도 블루'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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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9877.jpeg 우도에 가까이 가면 군데군데 청록색이 섞이는 것을 볼 수 있다.
IMG_9905.jpeg 우도 일주를 함께한 전기 자전거. 바다와 대조되는 붉은 버건디(burgundy) 색이다.
IMG_0037.jpeg 우도 북쪽의 득생곶등대와 원담(물고기를 잡기 위한 그물 모양의 돌 구조물).
IMG_0111.jpeg 맑은 바다색에 계속해서 셔터를 누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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