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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티 Yaaatii Mar 28. 2022

자기'본위'적인 생각의 오류와 폭력성에 대하여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의 세번째 이야기, "육지것들"이라는 언어로부터.

 장면 1.      


 “육지것들”    

 

 최근에 들은 말이다. 이 4음절 단어의 존재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그 음절이 내게 발해졌을 때의 느낌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랐다. 모욕적으로 들렸다. 나 자신에 대해서보다는 제주도민들을 싸잡아서 억지로 피해자 집단으로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     


 장면 2.     


 “제주도에도 이런 게 있네!”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면서 들린 관광객의 말이었다. 우리는 수시로 우리 공동체 외부의 환경에 대해 타자화하는 경향이 있다. 제주도에 그 상품이 있다는 것이 순식간에 제주도를 외부의 존재로 인식할 만한 것이었던가?          


 최근에 어느 유튜버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제주도민 출신인 그는 제주도 외부의 사람들이 제주도를 교묘하게 표상화한 여러 관념들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희화화한다. 그의 영상 콘텐츠는 외부인들이 가진 제주도에 대한 환상이 실은 고정관념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반대급부로 제주도의 문화를 콘텐츠의 흥행을 위해 희화화함으로 외부인들의 인식을 더욱 편견에 고착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했다. 웃자고 하는게 고정관념을 더욱 세게 만든다고 할까. 마치 이런 생각, ‘제주도는 그렇다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며?’     


 제주도에서 오래 산 도민들에게 나는 “육지것”이 된다. 나는 그들이 오래전부터 육지 사람들에 의해 수탈당하고 희생당한 사실을 자신들의 피해자 의식이 담긴 언어로 표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육지것들 이라고 뱉음으로 자신들의 공동체 문화를 위협한 사람으로 구분 짓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니, 화가 나기 이전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외부인의 위협에 대비한 구분짓기가 아니라 피해자 의식을 갖게 된 열등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함부로 제주도민들이 열등감이 있다고 추측하고 분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주도는 예로부터 육지의 중앙권력에 의해 변방 취급을 받아왔다. 육지의 중앙권력은 항상 육지 중심의 통치체제를 발동해왔다. 제주도는 특산물을 조공하거나 영험한 자연환경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척박한 자연환경으로의 정치적 유배 같은 것으로 회자되고는 했다. 민란이 발생했을 때 육지의 군인들이 처참하게 말살한 기록도 불과 2세기 안의 일이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스러져가는 제국주의적 열망의 전진기지였으며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 대립의 불똥이 엉뚱하게 튀어 섬 전체가 불타오르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과거가 아직 살아있기도 하다.      


  그들이 “육지것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슬픈 문화가 그들의 유전자에 새겨진 역사적 DNA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4음절의 투박한 그 단어는 실은 그들 고유의 언어이다. 그들만이 그 언어를 말할 수 있다. 육지 본위로 생각하는 외부인들에 저항하는 그들 고유의 언어.    

  

 아쉽게도 언어라는 것은 말하는 순간, 언어의 대상을 표상화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인간은 표상화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각자의 관념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사회가 부여한 공통된 의미체계 외에 각자의 기호 체계까지 부여한다. 그것을 보통 대상화, 타자화, 일반화 등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사실, 그 단어들이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은 아니다. 글줄이나 읽고 쓸 줄 아는 이들이 일반적 관념의 폭력성에 대해 고찰할 때 종종 쓰이는 말이다. 그럼에도 알아야만 한다.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폭력성에 대해서 사유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본위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이외에 것에 대한 폭력성을 띄기 마련이다. 편의점에서 상품을 고르던 관광객의 기준에, ‘이 상품이 제주도 시골의 편의점에도 있다’는 건, 그의 평상심에서 특별한 의미로 남았을 것이다. 그 상품은 그의 ‘본위’ 속에서 세련된 도시에서나 볼 법한 상품이었기 때문에. 반대로 그의 정신세계 속에서 이 곳 제주도는 낙후되고 촌스러울 거라는 기본적인 편견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했다. 최근에 장애인단체에서 출퇴근 시간을 겨냥하여 이동권 시위를 한 모양이다. 어느 젊은 연예인이 지하철 이동을 하다가 시위 덕분에 시간을 허비한 것 같다. 그는 자신의 SNS에 그 내용을 게시하면서 불편함을 호소했다.      


 장애인이 아닌 사람에게 장애인은 변방의 영역이다. 그들은 ‘비정상’성을 가진 존재들로 규정되고 그들의 인격적 권리에 대한 권리주장은 용납되지 않거나 약간의 시혜만 있을 뿐이다. 이토록 무섭다. 정상성을 가진 우리 공동체에 대한 우리의 고정된 관념은 타인의 존재를 손쉽게 우리 너머로 밀어낸다. 장애인에 대한 태도는 차라리 가면을 쓰고 정치적인 입장을 취할 수는 있다. 하지만 버젓이 우리 주변에 살아가는 타인에 대한 표상화 대상화 일반화 타자화는 얼마나 손쉽게 인식의 폭력성을 띄는가.   

    

 나는 이 글이 제주도를 변호하는 글로 읽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좀 더 나아가 우리가 손쉽게 ‘누구’ 또는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우리가 빠지기 쉬운 인식의 함정에 대해 고찰하는 글로 읽히길 바란다. “육지것들”이란 단어에 대해 나름의 언어학적 이론을 붙여 그들만의 고유언어라고 말한 것은 순전한 나의 해석이다. 필자의 해석에 대해 독자는 분별력있게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제주도에도 없을 것은 없다. 아울러 제주도에도 겨울이 있고 눈도 많이 내리며 롱패딩이 유효한 겨울나기 아이템이라는 것도 말한다.      


 이 글을 마무리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타인을 우리 본위적으로 바라보는 것의 경향이 폭력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다고 말은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상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 분석할 줄 아는 시선과 지적 태도도 필요하다. 역시 이 문단의 글을 분별력있게 읽기를 바란다. 그 교묘한 줄타기는 그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다. 자신의 지적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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