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나 8시간전

불꽃놀이

아이의 시선이 닿는 순간

  원래도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한다. 그동안엔 남들 일하는 평일에 쉬느라 더 그랬을 수도 있었다. 불꽃놀이 축제들은 보통 주말에 하다 보니 더 참여하기 어려웠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사람이 많은 축제 같은 곳에 갈 생각을 잘 안 하게 됐다. 여의도에서 불꽃놀이 축제를 한다고 해서 아이들과 유튜브로 한번 봤지만 생각보다 그렇고 그래서 흥미도 떨어졌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지인의 초대도 지역 불꽃놀이 축제 구경을 가게 되었다. 사실 크게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겸사겸사 구경가 보자 했던 것 같다. 작은 축제였지만 지역사람들이 다 구경이 온 듯 사람들이 빼곡하다. 동네사람이 아닌 우리는 명당자리를 찾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떠밀려 그래도 적당히 잘 보이는 자리에 서있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본 불꽃놀이는 참 예뻤다. 아이들에게도 너무 예쁘다며 말을 걸며 보는데. 이럴 수가 아이들은 보이지가 않는단다. 중간쯤 사람키가 낮은 곳을 잘 자리 잡았다고 했는데 그래도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나 보다. 내 키를 아이들의 눈높이로 낮추고 나서야 어느 자리가 불꽃놀이가 잘 보일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잘 보이는 건 아이들에게도 같이 잘 보일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그러고 보면 전에도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낮게 나는 비행기를 가리키며 말을 할 때도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산 뒤로, 빌딩 뒤로 넘어가는 해가 예뻐서 이야기할 때도 아이는 쉽게 못 찾거나 못 보고 있었다. 앞자리와 뒷자리는 그리 멀지도 않은데도 보이는 풍경이 차이가 난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그 후로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보면서 이야기할 때는 그 옆에 서서 아이의 키로 숙인 채, 그 눈높이에서도 정말 보이는지 직접 확인해 보곤 한다.


 내게 자연스러운 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러운 게 아닌데. 


  우리 팀 신입이 다른 부서 신입과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는데 우리 부서의 일을 우리 부서 사람들만 아는 단어로 다른 부서 신입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끼리는 다 아는 내용과 고객사지만 상대방은 그런 고객사 이름 자체를 처음 들어봤을 텐데. 우리 업무내용은 약간 회사 내 고립된 부분이라 전혀 모를 텐데 자기가 안다고 다른 사람들도 다 알 거라고 생각하다니.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특히 한 곳에 오래 고여 있다 보면 정도가 더 심해진다. 나는 내가 고인 물이 라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어쩔 수 없이 고여지게 된 순간이 오게 된다. 열심히 헤엄치지 않았다면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었겠지. 나는 열심히 헤엄치고 있었나. 아니면 같은 물에 있는 사람이 아닌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려고 노력했었나.

  

  그런 점에서 나는 고객과 소통을 많이 해야 하는 업무여서 다행이었다. 내가 아무리 10년 20년 고여있었던들 내가 아는 대로 마구잡이로 이야기하다 보면 상대방은 거의 대부분 못 알아듣기 때문이다. 이걸 모를 수 있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은 모를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다. 또 상대방이 전혀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개인의 언어로 문의를 해도 고인 물의 입장에서 알아서 해석을 해서 이해하고 답변해야 상황도 빈번했다. 


  종종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걸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정말 잘 알고 있는 거라고. 사실 어려운 단어들은 그것을 대체할만한 설명이나 쉬운 단어를 모르니 가져다 쓰는 거고 오직 그렇게 밖에 쓸 수 없는 용어가 아니라면 내 앎의 깊이가 얕은 게 아닌가. 독자의 입장에서, 매장직원의 입장에서, 출판사 편집자와 마케터의 입장에서 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고 다른 분야를 곁눈질로 따라가 본들 직접 해보지 않은 이상 한계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런 당연한 걸 이해 못 한다고?


  아이들의 공부를 집에서 봐주고 있다. 엄청난 선행도 아니고 몇 시간 앞에 배울 내용을 예습을 하는 정도인데도 설명할 때 꽤나 난감하다. 내가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뜻을 궁금해한다. 방정식으로 풀면 간단한 것을 양변에 같은 더하거나 빼는 것도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예전에 과외할 때도 느꼈던 거지만,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것보다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게 너무나 직관적인 부분에서 막힌다. 천재가 보통사람들을 보면서 이게 이해 안 돼?라는 수준의 의문이런 기분일까.


  전혀 생소한 곳으로 부서이동을 하게 되었을 때 기존 직원들이 쓰던 말이 거의 이해되지 않았다. 과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단어는 정의 먼저 내려주고 쓰는 게 이해하기가 편하다. 그곳에서 나는 모든 게 처음인데 이미 있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이것도 모르나 싶은 반응으로 고인 말들을 쓰고 있었다. 배려받지 못하는 기분. 하지만 막상 의미를 물어봐도 정확히 나오는 게 없다. 뭔가 두리뭉실한. 돌이켜 보면 업무량이 많고 인원이 적어 소수를 갈아서 진행되던 팀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정리될 틈도 없긴 했던 것 같다. 지치고 힘든 나날들. 원래 지치고 힘들수록 배려에 보낼 수 있는 의지는 먼지 한 톨만큼도 남아있지 못하니까.


  가깝지 않을수록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단어 선택을 신중하게 한다. 가까운 사람이야 자주 쓰는 말들로 자주 소통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오랜만에 만나거나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혹시 내가 하는 말들이 고인 물의 말들이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본다.  특히 줄임말일수록 그 정도가 심한데. 무엇을 줄였는지 알고 쓰면 그걸 모를 수가 없는 데 분명 처음 접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조금 더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면 어떨까. 네 글자 단어를 두 글자로 줄여서 말한다고 크게 이득을 보는 게 아닌데. 


  물론 약간의 신경을 더 써야 하지만 그 정도 체력은 유지하도록 하자. 나이들 수록 줄어드는 체력이 눈에 띄게 보이지만 떠난다고 마냥 보낼 수만은 없으니 어떻게든 방법을 써서 붙잡아 봐야지. 결국 다른 사람의 시선에 눈높이를 맞추고, 배려하는 것도 우선 내게 힘이 남아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내 보여주려는 마음의 어느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다. 



2024.11.14/22

금요일 연재
이전 10화 수면 교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