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으론 도시락을 싸는 게 처음이었다. 37년 동안 딱히 도시락 쌀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아이가 생기면 예방접종이며 교육 관련 업무이며 여러가지로 머리 아플 일이 많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소풍 도시락 싸는 일 따위의 자질구레한 일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꽤나 골치가 아팠다. 도시락 통을 고르는 일부터 메뉴까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연나이로 3살. 만 나이로 고작 1살인 이 아이의 도시락을 어찌 싸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질 않는다. 도시락이라 하면 계란 입은 스팸이나 칼집난 소세지, 유부초밥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데 아이에게 아직 하나도 먹여보지 않은 음식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싸가는지 궁금해 인스타그램에 검색했다.
어린이집 도시락, 소풍 도시락, 유아 도시락...
어떻게 검색하든 나오는 이미지는 온갖 동물과 캐릭터들이 즐비한 휘황찬란한 도시락 사진들 뿐이었다.
적당히 영양도 있으면서 만들기 쉬워 보이는 도시락은 하나도 없었다. 이건 보여주기식 아닌가. 예쁜 도시락 선발대회도 아니고 굳이 이렇게까지? 나는 보이는 것에 연연하는 엄마는 아니라며 의기양양하게 주먹밥을 만들기로 했다. 소고기와 애호박, 양파를 볶아 투박한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리도 소풍 도시락이니 평소보다 소금도 더 치고 참기름도 듬뿍 뿌렸다. 다른 아이들과 나눠 먹을 수도 있으니 양은 넉넉하게.
혼자서 아이를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면서 도시락을 싸고, 그 와중에 나까지 준비를 한 다음 찡찡거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차에 태워 소풍 장소까지 가기란 철인 3종경기 못지않게 분주하고 고되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도시락을 싸기와 어린이집 행사 참여하기를 해보니 그동안 무심히도 먹어왔던 울 엄마의 도시락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이렇게 정성스레 길러진 귀한 사람이었구나.
"다들 아침에 도시락 싸신 거예요?"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도시락을 싸왔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른 아침부터 빡쎘던 '소풍 준비 여정'을 같이 공감하고 샆어 이야기를 꺼냈다. 대부분 처음 만난 사이라 대면대면 했는데 도시락 이야기에 다들 고개를 내저으며 자연스레 한탄을 나눴다. 그중 한 엄마가 도저히 아침에 싸기 힘들 것 같아 근처 가게에서 사 와서 도시락통에 담아왔다고 했다. 대부분 첫 아이의 첫 도시락일 테니 공들여 싸왔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쿨한 엄마가 있었다. 그 엄마의 대답에 나는 약간 안도했다. 안도하기 위해 물은 건 아니었지만.
더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다닌 아이의 엄마는 작년 소풍 때 열심히 도시락을 싸갔었지만, 아이가 먹지 않아서 올해는 대충 싸왔다고 했다. 야외에서 신나게 뛰놀면 입맛이 돌아 잘 먹을 것 같은데, 그 아이는 입이 짧은 것 같아 보였다. 우리 튼튼이는 잘 먹는 편이라 정말 다행이라며 다시 한번 안도했다.
두어 가지 행사를 마치고 식사시간이 되었다. 소박하지만 애정이 듬뿍 담긴 도시락을 꺼냈다. 간식으로 함께 싸 온 고구마와 과일까지 꺼내니 그래도 나쁘지 않은 비주얼이었다. 많이 먹으렴.
안타깝게도 그 애정들은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채 죄다 내 입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과일 몇 개만 집어먹더니 다른 친구의 알록달록한 도시락을 맛있게도 먹어치웠다.
예쁜 도시락은 쓸데없는 허세가 아니고 아이를 잘 먹게 하기 위함이었구나.
그랬구나. 오만했구나.
오늘도 하나 배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