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12
12월 23일
어느새 다시 12월이다. 그는 두 번째 임용 시험을 치렀다.
시험을 끝낸 것을 축하하고 얼굴도 볼 겸, 우리는 12월 23일에 다시 만났다.
우리는 독서실 근처의 파리바게뜨 안에서 조촐하게 파티를 했다. 먼저 파리바게뜨에 도착한 나는 안에 들어가서 먹음직스럽게 진열된 빵을 구경하고 있었다. 5분 정도 기다리자 문이 열리며 그가 들어왔다. 두 달여 만에 보는 얼굴은 여전히 그리웠던 그대로였다.
"자, 오빠가 케이크 골라봐요. 고구마? 생크림?"
"나? 고를 필요도 없어. 저거!"
그가 가리킨 케이크는 얇게 자른 화이트 초콜릿 데코가 산처럼 뿌려진 케이크였다.
"저 케이크는 너무 느끼하지 않아요? 나는 그렇던데."
라고 말했지만, 실은 전혀 싫지 않았다.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아재스러운 파란색 패딩을 입고는 케이크를 먹으며, 그동안 못했던 오만가지 이야기를 했다.
"들어 봐. 내가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데, 이게 영화화되면 아마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될 건데~"
그는 자신이 요즘 쓰고 있는 소설과 영화 아이디어 같은 이야기를 신이 나서 하고, 나는 신이 나서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은 흘러 흘러, 우리는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또 뭔가를 축하해 줄 날이 온다면, 그때도 화이트 초콜릿이 많이 많이 뿌려진 느끼한 케이크를 선물해야지.
12월 25일
며칠 전 미리 보내놓았던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은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카드에 비해 내용이 너무 없다며 그저 웃었다. 나도 웃었다.
1월
밤새 잠을 설치고 일어났더니, 그가 시험에 합격했다고 문자를 보내놓았다. 이제 남은 면접시험을 위해 응원해야지.
1월 11일
먼저 전화가 왔다는 사실 하나로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2월
우리는 2월에 다시 만났다.
그가 최종 시험에 드디어 합격했기 때문이다.
지난번 만났던 파리바게뜨에서 다시 만나 합격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케이크를 먹었다.(케이크는 당연하게도 화이트 초콜릿이다)
그가 공부하는 동안에도 접근해 온 여자들이 많았는지,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친하게 지내던 여동생이 최근에 갑자기 고백공격을 해서 결국 거절했고, 그렇게 멀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는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또 인연 하나를 잃는 거잖아. 나는 그게 너무 속상하다."
그렇게 떠나보낸 여자사람친구들이 꽤나 많았던 그는 이젠 제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혀를 찼다.
집에 오는 길.
눈물이 핑 돌고 토할 것 같았다.
방금 먹었던 케이크가 너무 느끼해서가 아니라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내 속의 이야기를 하지 못할 거라는, 해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2월 27일
친구와 경복궁에 가는 중이라며 문자가 왔다. 가 보고 경치가 예쁘면 사진 한 장 찍어 보내준다고 해서 기다렸더니, 사람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게 멀리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다.
3월 3일
꿈을 꿨다. 서울에 있는 그의 집에 놀러 가는 꿈이었다. 조촐하고 검소한 그의 방에 들어가 졸업사진을 보며 옛 모습을 구경했는데, 어쩐지 얼굴이 통통해서 돼지였다. 꿈에서 깨니 웃음이 나왔다.
3월 16일
메신저에 접속했더니 그에게서 쪽지가 와 있었다. 무려 새벽 4시에 보내진 쪽지에는, 오래간만에 여동생과 롯데월드에 갔다 왔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고 따뜻한 그의 말투가 생각나서 온종일 슬펐다.
그러고는 다시, 5시에 쪽지가 하나 더 와 있었다. 내가 그를 친오빠처럼 생각해 준다는 말을 사람들에게서 들으면 왠지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는 얘기. 세상이 때론 너무 빨리 움직이고 흉흉해지더라도, 우리는 천천히, 밝고, 아름답고, 곤고히 갈 수 있도록 하자는 말도 함께. 그 말이 이토록 고맙고 이토록 아플 줄이야.
3월 23일
오늘도 역시 꿈.
새벽에 꿈에 나와서 깼다가 다시 잤더니 다른 내용이 나왔다. 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처음으로 나의 마음이 꿈에서도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