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13

이번 생에는

by 에스

13



6월


평생 서울에 올라갈 일이 없었던 나였기에 대학가에서 연극을 한 번도 보러 간 적이 없다고 했더니, 그가 연극을 보여주겠다며 서울로 나를 초대했다.


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엄청난 인파가 나를 반겼다. 끔찍하게 많은 사람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하면서도 빠르고 정확하게 걷고 있었다. 하나같이 굳은 표정과 죽은 눈동자. 이게 과연 대한민국의 수도, 치열한 서울인가, 싶었다. 그가 알려준 지하철역으로 갔더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넓고 사람 많은 서울 시내 중 우리가 간 곳은 어딘지는 모르지만 아마 연극으로 유명한 대학로였던 것 같다. 쫄래쫄래 그를 따라 지하철을 이리저리 타고 내렸더니 어느새 젊은이들이 가득한 거리에 서 있었다.


우리는 상영시간보다 살짝 늦어서 겨우 입장한 후 조심조심 뒷자리에 앉았다. 장르는 로맨스코미디였는데, 연극을 처음 보는 나는 너무나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무대 뒤에 숨은 후 전혀 다른 인물로 다시 등장하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중간중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등장하는 소품과 배우들의 능수능란한 개그까지. 이 모든 것이 생생하게 눈앞에서 이루어진다니!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반면에 이런 연극은 질리도록 봤을 그에게는 그냥저냥인 것 같았다. 연극을 다 보고 우리는 전에 얘기했던 대로 그의 집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시내버스를 타고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거의 저녁 무렵이었다. 집 호수를 기억하고 있는 내게 그는 어떻게 그걸 기억하냐고 물었다. 지난 밸런타인데이에 그 주소로 초콜릿을 보낸 걸 또 까맣게 잊어버렸나 보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그 사람. 오늘의 기억도 얼마 가지 못해 그 사람의 기억에서 잊혀질 것이다. 당연한 건데, 내 머리도 인정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가슴만은 치졸하게 부인하려고 한다.


그의 부모님과 할머님은 정말로 따뜻한 분들이셨다. 그래서인지 처음 만났는데도 생각보다 서먹하지 않았다. 우리는 거실에 신문지를 크게 깔고 그 위에 버너와 온갖 야채를 놓고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보면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가끔씩 오가는 도란도란 이야기와 쾌활한 그의 웃음소리. 소소하고 일상적인 모습에 어쩐지 뭉클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집 구경을 했다. 그의 방에는 거의 쓰지 않은 침대와 낯익은 옷가지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책장에는 빛바랜 옛날 책들이 쌓여 있었다. 고요하고 정겹다. 이런 방에서 자랐구나, 하나도 화려할 것 없는 수수한 방. 이 방에 누워 매일매일 그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밤이 늦어 부모님은 주무시러 방에 들어가시고, 그는 거실 TV 앞에 이불을 깔고 드러누워 TV를 봤다. 나도 씻고 나와서 소파 위에 드러누워 같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늘 그랬듯이, 그의 이상형 얘기를, 그를 좋아하는 여자들 얘기를, 그가 좋아하는 여자들 얘기를, 그의 결혼 얘기를 한다. 그는 빨리 결혼을 해서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다.


거의 새벽 세 시가 되어서야 거실에 잠든 그를 두고 그의 방 침대로 돌아왔다. 아마도 그가 많은 밤들을 보냈을 그 침대에 조용히 누워서, 처음부터 나 따위는 포함되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이번 생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는 걸 새삼 깨닫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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